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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이종학 평론가
요즘 리뷰나 이벤트를 위해 오디오와 관련된 공간에 가면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제품 자체의 퀄리티도 무척 좋아졌지만, 전체적인 디자인 컨셉이 확실히 수려해지고 멋지게 변했다. 오로지 음질만 따지는 시대에서 보기에도 또 만지기에도 좋은 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전시 공간 역시 달라지고 있다. 숱한 스피커와 앰프의 숲 사이에 숨어있는 제품을 찾는다는 일종의 ‘보물찾기’식이 아니라, 제대로 스피커와 앰프가 숨 쉴 공간을 주고 적절한 포커싱을 처리하는 등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듣기만 하면 되는 식의 일종의 '원 스톱(One-stop)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얼마 전에 읽은 하루키의 보스턴에 관한 수필을 보면, 이 도시를 관통하는 찰스 강을 따라 조깅하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쓴 부분이 있다.
“생각건데, 풍족한 물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행위란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하긴 인간에게라는 표현은 조금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도시의 혼잡함과 각박함 속에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근처 한강에 나가 강변을 거닐거나, 전망이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할 여유조차 없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디자인의 숲에, 강에, 공기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것이다. 절대 어디로 벗어날 여지가 없다. 한강을 옆에 두고 가지 않을 수는 있지만, 디자인의 영역에서는 어림도 없다.
“모든 인간은 디자이너다. 인간이 행하는 거의 모든 행위는 다 디자인과 관계되어 있다.”
빅터 파파넥이라는 학자가 한 이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그럼 오디오에선 특히 뭐가 가장 디자인으로 어필해올까? 아마도 존재감이 가장 강한 스피커가 아닐까 싶다.
그 중 포칼의 스피커는 항상 내게 무엇인가 꼭 해야 할 숙제와 같은 존재였다. 다시 말해, 언젠가 한번은 꼭 써봐야 하는 제품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당연히 음질. 위 아래로 시원스럽게 쭉 뻗은 대역에 플랫 리스폰스, 그리고 높은 감도.
둘째로 디자인을 따지면, 함부로 손을 뻗어 만질 엄두조차 나지 않을 정도의 청결함과 고고함을 갖고 있다. 무척이나 모던한 컨셉이면서 마치 현대 미술의 오브제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오디오갤러리의 압구정 플래그십 스토어에 갈 때마다 나는 오디오 스토어가 아닌 미술관에 가는 느낌을 받는다. 순백의 미려한 화이트 톤으로 치장된 실내엔 여러 제품이 가지런히 시야에 무리 없이 다가오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이 하나하나를 점검하는 사이, 마치 미술관에 진열된 조각이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기분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유럽에 갈 때마다 끝도 없이 미술관이며 박물관 순례를 했었다. 일례로 루브르만 해도 열 번이 넘게 방문했으며, 오르세 미술관도 그쯤 된다. 피렌체의 우피치, 마드리드의 프라도,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뉴욕의 MOMA 등은 기본이고 그 밖에 작고 흥미로운 미술관을 숱하게 다녔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동선이 바뀌었다. 알게 모르게 명품 백화점이나 쇼핑 몰을 향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안목이나 높이자 내지는 정보나 얻자.’ 라는 생각에 두리번거렸지만, 조금씩 빨려 들어가서 굳이 사지는 않더라도 꼭 확인해보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또 따지고 보면 이런 명품들 중 일부는 미래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될 것이라 생각한다. 루이 16세가 쓴 왕관이나 서태후가 쓴 도자기 같지는 않겠지만, 우리 시대의 디자인과 문화의 종합으로 따지고 든다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만든 명품들이 절대로 도외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포칼의 제품들을 항상 나중에 전시될 만한 가치가 있는 산업 디자인의 명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소프라나 스칼라를 접할 때마다, 그 뛰어난 만듦새와 퍼포먼스에 매료되면서도 정작 이 제품을 내 집에 들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약간 절망감이 들곤 했다. 무엇보다 디자인 컨셉이 현재 내가 사는 환경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방마다 가득 채워진 책장과 CD 랙 등은 도저히 처분이 불가능하고, 거기에 침대며 옷장이며 생활에 필요한 것들도 버릴 수 없다. 솔직히 혼자서 방 3개와 거실 1개로 구성된 꽤 넓은 공간에 살면서도, 어느 방 하나를 싹 비워서 오로지 포칼만의 공간으로 꾸미기엔 무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내와 아이가 함께 하는 좀 더 ‘정상적인’ 환경에 거주하는 분들이라면, 더욱 상황은 심각할 것이다.
그런데 왜 포칼의 스피커를 언급하면서 공간 문제를 짚고 넘어가냐 하면, 사실 포칼의 디자인 컨셉은 정확히 오디오갤러리의 전시장처럼 어느 정도 미니멀한 느낌과 통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스피커 사이의 공간이나 토 인에 관계된 것만은 아니다. 전체적인 룸의 톤, 조명의 처리, 랙과 앰프의 위치 등 여러 부분을 ‘채우는 쪽이 아니라 비우는 쪽으로’ 조정해야만 그때야 포칼의 미적인 감각이 멋지게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이사를 하면서 책은 약 5백권, CD는 약 1천장 정도를 처분했지만 여전히 포칼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가 여의치 않다. 그런 가운데 이번에 만난 칸타 N.2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쉽게 말하면, 포칼답지 않으면서 또 한편으로 포칼다운 제품이다. 이렇게 쓰니 오히려 헷갈릴 수도 있는데, 이를 정리하면 이렇다. ‘포칼의 전통적인 디자인 컨셉과는 좀 차별화되지만, 음질이나 전체적인 만듦새는 포칼의 전통 하에 있다.’ 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꼭 미니멀한 공간을 꾸미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우리 주거 환경과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심지어 책장이 빼곡하거나 CD가 산만하게 흩어진 내 집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자체의 존재감이 워낙 빼어나서, 어느 곳이든 세팅만 해두면 집안 인테리어 수준이 확 올라갈 수 있는 장점도 갖고 있다. 만일 오랜만에 누가 집을 방문하고, 칸타 N.2를 본다면 눈이 휘둥그레 해 질 것 같다. “이상하네요? 뭔가 바뀐 것 같은데, 딱히 바뀐 것 같지 않고. 그런데 훨씬 고급스러워 보여요. 조명을 바꿨나요 아니면 벽지를 새로 발랐나요?” 라는 반응이 나올 것 같다. 그나저나 대체 포칼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리즈를 새롭게 런칭했을까?
아마도 기술적인 내용은 이미 여러 리뷰를 통해 충분히 파악했으리라 본다. 여기서는 주로 디자인적인 측면을 살피고 싶은데, 본 기 칸타 N.2의 테마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모노코크 디자인(Monocoque Design)’이라 하겠다. 여기서 모노코크란, 어떤 제품을 만들 때 여러 부분으로 나누지 않고, 한 덩어리로 꾸미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쓰면 대부분의 스피커가 한 덩어리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일반적인 박스형 스피커를 보자. 앞판, 뒷판, 옆판 등 여러 개의 판을 짜맞추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또 프런트 패널엔 드라이버를 담을 동그란 구멍을 뚫어 나사로 일일이 조립해야 한다. 즉, 전통적인 스피커는 여러 개의 구성품을 조립해서 하나의 박스에 담는 형태로 된 것이다.
그에 반해, 본 기는 일체 나사를 찾을 수도 없고, 이음새를 추적할 수도 없다. 마치 어느 마법의 상자에서 펑 하고 튀어나온 듯, 하나의 일체화된 구조를 자랑하고 있다. 특히, 프런트 패널은 미끈하게 위 아래로 빠진 형태로, 중간이 조금 들어가고 위 아래가 조금 나온 듯한, 일종의 구부린 형상을 갖고 있다. 솔직히 이것은 밋밋한 평판보다 더 멋지게 다가온다. 물론 전 대역의 시간 축을 통일성 있게 구축한다는 음향학적인 배려가 숨어 있기는 하지만, 이런 것을 따지지 않더라도 당연히 보기에도 좋다.
이렇게 전면만 보면 기존의 포칼 제품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옆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깜짝 놀랄 컨셉이 기다리고 있다. 과감하게 원목 마감을 한 것이다. 종래의 포칼과 원목은 상치된 개념이지, 절대로 한 테이블에 올려놓을 소재는 아니다. 그러나 그 라인을 넘어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본 기는 어떤 환경에서도 어우러질 수 있다는 범용성을 획득하고 있다. ‘짜잔~!’하며 마법사가 커튼을 올리고, 수려한 미녀가 등장하는 순간과 같다.
물론 이 인클로저 내부엔 일종의 격벽을 쳐서, 각 대역간의 상호 간섭을 극력 억제하고, 철저한 리조넌스 방지책도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원목을 도입했다고 해서 기존의 포칼과 음질적으로 달라진 부분은 없는 것이다. 거기에 네 개의 발로 구성된 스파이크는 튼실하게 본 체를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어느 공간에 갖다 둬도, 공진이라는 부분에서 상당히 자유로운 셈이다.
참고로 본 기는 총 8개의 컬러 옵션을 제공한다. 일단 인클로저는 원목과 검정 래커 마감 중에 선택할 수 있고, 그 각각의 프런트 패널이 네 가지 색으로 제공된다. 그 중에는 노란색도 있고, 블루도 있다. 만일 8개의 제품이 앞에 쭉 나열되어 있다면, 그 중에 하나를 고르기가 쉽진 않을 것 같다.
이런 디자인 컨셉도 흥미롭지만, 음질도 역시 내 귀를 사로잡았다. 기존의 포칼이 가진 강점을 유지하면서, 보다 온기가 있고, 음악적인 내용을 풍부하게 갖춘 제품으로 진화한 것이다. 거기엔 새롭게 개발된 베릴륨 트위터며, 플랙스 소재의 미드 및 우퍼 드라이버가 관여하지만, 이 부분 역시 많은 리뷰에서 언급된 바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단, 개인적으로 보면, 약간 중역대가 풍부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따라서 보컬이나 바이올린, 기타 등 음악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 좀 더 강력하게 어필해오고 있는데, 이 점은 크게 환영하는 바다. 와이드 레인지 & 플랫 리스폰스도 좋지만, 역시 음악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좀 더 밀도감이 높고, 에너지가 풍부한 쪽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약간의 과장이 들어가면 또 어떤가? 그러나 본 기는 일체의 과장이 없이 전 대역을 밸런스 좋게 처리하면서 중역대를 솜씨 좋게 다듬고 있다. 아마도 이 부분은 새롭게 R&D 팀의 수장이 된 호소이 신타로씨의 영향력이 발휘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나중에 만나서 확인해보고 싶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원래는 마음속에 찍어둔 스피커가 하나 있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듣고, 조사하고 또 검증하면서 선택한 제품이다. 밤에 잘 때 꿈에 나오는 여인이라 해도 좋다. 그런데 갑자기 칸타 N.2가 등장한 것이다. 이래저래 고민거리가 또 생겼다. 모종의 삼각관계가 형성된 셈이다. 뭐, 즐거운 삼각관계지만.
이 부분을 디지털 카메라로 설명하면, 그간 숱한 바꿈질을 하면서 얻은 게 많았으므로 간단하게 소개해보겠다. 말하자면 화질을 위해 크고 무거운 DSLR 풀 프레임을 쓴 적도 있고,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하이엔드 디카를 쓴 적도 있다. 그 각각이 장단점이 있는데, 결국 이런 결론을 얻었다. 휴대성과 화질을 적절히 만족시킬 것.
뭐,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캐리어와 배낭으로 무장하고, 낯선 거리를 때론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하는 입장에서 부피와 무게의 압력에 어떻게 하든 버텨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성능은 포기할 수 없다. 일견 모순처럼 보이는 상황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선에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오디오 역시 마찬가지다. 일단 전원 버튼 하나 정도 누르고, 플레이 마크를 찍으면 음이 나온다. 그것도 하이 퀄리티한 수준으로. 뭐, 그렇다면 굳이 분리형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아직까지 디지털 카메라에선 무릎을 칠 만한 제품이 없지만, 오디오로 말하면 이번의 매칭 정도면 훌륭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첫 곡으로 들은 것은 앙세르메 지휘의 차이코프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행진’>이다. RCA 마크를 달고 나온 음반이지만, 실제 녹음은 영국의 데카 팀이 했다. 바로 그 장점이 잘 발휘된 음반이다. 사실 나는 CD를 걸었지만, SACD쪽이 상당히 음질이 좋은 모양이다. 일본에서는 이 음반을 들을 때 눈앞의 스페이스가 좌우로 팽창되어 옆 벽에 닿을 정도로 말하자면 완전히 공간을 뒤덮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듣는 음에 큰 불만은 없다. 숱한 관악기의 포효, 미끈한 바이올린군의 전진, 바닥을 두드리는 퍼커션의 연타 등 약 60년 전의 녹음이라고 믿기 힘든 리얼리티와 공간감이 압권이다. 게다가 단순히 오디오적인 쾌감만 추구하지 않고, 각 악기의 음색과 어쿠스틱한 느낌이 잘 살아 있어서 듣는 데 큰 부담이 없다. 생각해보면, 이 정도 음은 억대의 투자가 아니면 안 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이 시스템의 가격은 약 20% 정도에 불과하다. 참, 대단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어서 크리스티안 치메르만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1악장>. 초반에 타건을 두드릴 때, 그 강도가 점차 거세지고, 이후 물밀듯이 오케스트라가 압박해온다. 다소 구슬프로, 서정적인 멜로디는 가슴 어딘가를 자극해서 멜랑콜리한 느낌을 갖게 하는데, 그 흐름을 타고 마치 서퍼가 파도를 타듯, 피아노가 유려하고 아름답게 돌출된다. 여기서 피아노의 영롱하고, 투명한 음엔 확실히 사람의 마음을 끄는 뭔가가 있다. 일체 강요하지 않고, 물길을 따라 흐르듯 여유롭고 또 자연스럽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그 선율이 주는 우아함과 슬픔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또 음에 약간의 온기와 인간적인 체취도 담겨져 있어서, 너무 재생에만 연연해하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머라이어 캐리의 <My All>을 오랜만에 들어본다. 확실히 보다 강력해진 중역대의 장점이 잘 살아나고 있다. 캐리 특유의, 약간 허스키하면서, 거친 듯한 맛이 시원시원하게 펼쳐진다. 뱃심을 단단히 주고, 있는 힘을 다해 내지를 때의 에너지는 시청실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다. 또 단단한 베이스 라인과 강력한 킥 드럼의 어택 사이사이, 멜랑콜리한 스트링스의 백 업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즉, 해상도와 다이내믹스가 출중하면서도, 보컬 그 자체의 박력과 매력은 절대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의 <Babe, I'm Gonna Leave You>. 사실 이런 록은 잘못 걸면 고역이 쨍쨍거리거나 밸런스가 흐트러져 제멋대로의 음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선 일단 전체적인 짜임새가 좋고, 곡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쫓고 있다. 또 각 악기의 배치도 명료해서 마치 스튜디오의 믹싱 룸에 들어간 듯한 느낌도 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플랜트의 보컬. 야성을 적절히 숨기면서, 때론 속삭이고 때론 터트린다. 박력 만점이면서도 또 디테일한 묘사를 잊지 않는다. 그 주변을 화려하게 감싸는 어쿠스틱 기타의 핑거링! 굳이 킥 드럼까지 등장하지 않더라도, 에너지 만점이다.
따지고 보면 본 기는 특정 장르를 가리지 않고, 주축이 되는 보컬과 악기의 묘사가 탁월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다. 처음에는 디자인에 반해서 구입하더라도, 나중엔 음악을 듣는 맛에 시간가는 줄 모를 것 같다. 그간 많은 회사들이 신제품을 발표하고 새로운 시리즈를 런칭하지만, 이번에 만난 칸타 N.2의 출현은 매우 신선하고 또 흥분이 된다. 향후 나올 제품군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