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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컨버전스(convergence)가 대세다. 이종제품간, 비즈니스 모델간, 산업간 합종되고 연횡되는 이 컨버전스가 오디오에서도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DAC가 네트워크플레이어나 앰프에 통합되는 것은 이미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고품질 음원 스트리밍 시대에 맞춰 유무선 네트워크 플레이어와 DAC, 앰프를 한 몸체에 담은 제품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일부 브랜드에서는 여기에 아예 스피커까지 담아 진정한 ‘올인원’의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 뮤지컬 피델리티(Musical Fidelity)의 ‘M6 Encore 225’는 거의 컨버전스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이 제품 하나에 스트리머, 인터넷라디오, CDP, CD리퍼, DAC, USB플레이어, 헤드폰앰프, 앰프, 뮤직서버가 모두 담겼다. 그렇다고 생색만 낸 게 아니다. DAC은 32비트/384kHz 음원까지 지원하며, 앰프는 클래스AB 225W(8옴) 출력인데다, 뮤직서버는 1TB 저장용량을 자랑한다. 스마트폰 앱으로 제어할 수 있으며 실제 테스트를 해보니 타이달(TIDAL)도 척척, USB 외장하드도 착착 잘도 붙는다.
“뮤지컬 피델리티와 앤토니 마이클슨”
뮤지컬 피델리티는 1982년 설립된 관록의 영국 오디오 제작사. 한정 수량으로 제작되는 인티앰프 ‘Nu-Vista 800’(300W)을 비롯해 프리앰프 ‘M8PRE’, 모노블럭 파워앰프 ‘M8700m’(700W), 스테레오 파워앰프 ‘M8500s’(500W)가 최상위 라인을 이루고 있다. 이어 인티앰프 ‘M6 500i’(500W) ‘M6si’(220W), ‘M5si’(150W) 등이 뒤를 잇는다. 이밖에 CD플레이어(‘M6scd’ ‘M3scd’), DAC(’MX-DAC’ ‘V90-DAC’), 포노스테이지(‘MX-VYNL’ ‘LX-LPS’ ‘V90-LPS’)도 만든다.
어쨌든 이 ‘뮤피’를 한번쯤은 거쳐갔거나 지금도 애용중인 오디오애호가들이 주변에 꽤 많다. 대출력 앰프나 고스펙 DAC를 가성비가 꽤 좋은 상태에서 구매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음질이 받쳐준다. 블랙 섀시에 조그만 흰색 버튼들이 가지런히 모여있는 모습은 ‘뮤피’의 강렬한 상징이기도 했다. 현재 뮤지컬 피델리티의 본사는 영국 북런던 웸블리에 있다. 제품 디자인은 모두 웸블리에서, 메인 라인 제작은 대만에서 이뤄진다.
필자는 지난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던 2017 멜론 서울국제오디오쇼에서 뮤지컬 피델리티의 설립자 앤토니 마이클슨(Antony Michaelon)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는 수도없이 왔다고 한다. ‘M6 Encore 225’와 관련해서 그때 나눈 인터뷰를 요약하면 이렇다. 오디오쇼에서는 포칼(Focal)의 플로어 스탠딩형 스피커 ‘Sopra No.2’와 매칭됐었다.
- 올인원으로서 ‘M6 Encore 225’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나를 위해 만들었다. 집에서 굉장히 환상적인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것도 기기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오디오파일들은 분리형을 좋아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많은 박스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일반 사람들이 오디오파일들보다 음악을 더 좋아한다(웃음).”
- 왜 하필 225W 출력인가.
“정확히는 모른다(웃음). 하이파이(Hi-fi)나 원음에 충실하기 위해서는(High Truthfulness) 기본적으로 200W 출력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충실한 다이내믹 레인지를 확보할 수 있다.”
- 왜 ‘M6 Encore’라고 이름을 지었나.
“뮤지컬 피델리티의 베스트셀러 모델 ‘M6si’(220W 출력)와 동일한 서킷 모듈을 적용했다. 그래서 앙코르다.”
- 포칼 ‘Sopra No.2’와 매칭은 어땠나.
“‘M6 Encore 225’는 어떠한 스피커도 구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스피커는 문제없이 구동할 것이다. 포칼의 스피커는 잘 디자인됐고 디자인도 뛰어나다. 고급 앰프와 음색이 탁월한 스피커 조합이면 엄청난 결과가 나온다. (더 큰 스피커인) ’Sopra No.3’도 충분히 구동할 수 있다.”
“M6 Encore 225의 설계디자인”
뮤지컬 피델리티에서는 ‘M6 Encore 225’를 ‘스트리밍 뮤직 시스템’으로 명명했다. 1) 아날로그 오디오 입력(테이프 레코더, 카세드 테이프 덱), 2) 디지털 오디오 입력(스마트TV, 블루레이, 게임콘솔), 3) USB A 입력(USB메모리, USB외장하드)을 갖춘데다, 4) CDP, 5) CD리퍼, 6) 1TB 내장 하드디스크, 심지어 7) 225W 출력의 앰프와 9) 헤드폰 앰프까지 있어, 한마디로 모든 음악소스를 기기 한 대로 즐길 수 있다. 이 ‘M6 Encore 225’에서 앰프 기능을 빼내 순수 뮤직 소스기기에만 충실코자 한 제품이 같은 ‘Encore’ 시리즈의 ‘M6 Encore Connect’다.
우선 ‘M6 Encore 225’의 심장부는 2GB 램(RAM)을 거느린 듀얼 코어 64비트 인텔 CPU(Atom E3800)다. 인터넷으로부터 각종 음원 메타 데이터를 갖고오거나 내장 스토리지를 제어하고, 스트리밍 및 인터넷 라디오를 진두지휘하기 위해서는 명민한 사령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M6 Encore 225’를 네트워크와 서버를 갖춘 일종의 컴퓨터로 보면 된다. 물론 USB입력단자를 통한 향후 업그레이드 과정도 이 CPU가 담당한다.
앰프쪽은 앤토니 마이클슨의 인터뷰 내용처럼 인티앰프 ‘M6si’의 증폭회로 모듈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래서 출력이 220W에서 225W(이상 8옴 기준)로 약간 늘어난 것을 빼면 스펙이 대동소이하다. 왜율(THD+N) 0.007% 이하, 신호대잡음비(SNR) 107dB 이상, 주파수응답특성 10Hz~20kHz(-0.1dB) 등등. 댐핑팩터는 180을 넘는다. 한편 인터넷에 공개된 ‘M6 Encore 225’ 내부 사진을 보면, 가운데 토로이달 트랜스를 중심으로 양 사이드 방열판쪽에 파워단을 1개씩 미러형으로 배치한 구조가 눈길을 끈다. 한 채널에 4개 트랜지스터를 동원한 것도 ‘M6si’ 때와 동일하다.
DAC 성능은 광과 동축입력시 24비트/192kHz까지, USB입력시 32비트/384kHz까지 지원한다. DAC 설계와 관련, 뮤지컬 피델리티는 전통적으로 버브라운 칩을 써왔지만, 이번 ‘M6 Encore 225’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공식 스펙도 없고 인터넷 사진도 없어 확인되지 않았다. 내장 스토리지는 2.5인치 1TB SATA2 하드디스크가 기본 장착돼 있고, SSD로 교체할 수도 있다.
“실전 테스트”
사실 필자는 이 모든 게 제대로 되는지 처음부터 궁금했다. 특히 요즘 개인적으로 집중 활용하고 있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타이달(TIDAL)이 잘 되는지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다음은 필자가 직접 해본 것들만 요약한 것이다.
CD리핑 = 글렌 굴드의 ‘바흐 피아노 협주곡’ CD를 전면 패널의 슬릿에 집어넣으니 디스플레이에 ‘Ripping CD’라는 문구가 뜨며 자동 리핑을 시작한다. 리핑하는 과정은 가끔 ‘끽끽’ CD 돌아가는 소리가 났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했다. 5분 정도 후에 CD가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이후 인터넷을 통해 음원에 대한 메타 데이터를 갖고 오는데 이게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20~30분 정도? 앨범 재킷사진과 아티스트 이름, 트랙 이름 등 리핑한 정보는 태블릿PC 앱의 ‘New Music’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내장 하드디스크의 ‘New Music’이라는 폴더에 저장된 것이다. 리핑하는 중에도 타이달이나 USB메모리 같은 다른 음원 플레이가 가능했다.
CD 재생 = CD를 직접 듣고 싶을 때는 전면 페널의 ‘HOME’ 버튼을 누른 후 셀렉터를 ‘CD PLAYER’로 놓고 ‘ENTER’버튼을 누른 후에 CD를 삽입시켜야 한다. 만약 이 과정 없이 CD를 그냥 집어넣으면 위에서 말한 그대로 자동 리핑단계에 들어간다.
USB메모리 = 미리 준비해놓은 USB메모리에 터틀크릭 합창단이 부른 ‘루터의 레퀴엠’ 중 ‘Pie Jesu’와 ‘Agnus Dei’를 집어넣었다. 이 USB메모리를 전면의 USB입력단자에 꽂으니 자동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이 상태에서 직접 플레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음원을 내장 하드디스크로 영구 복사해놓는다는 것. 따라서 이 ‘복사’하는 시간 동안에는 음원을 재생할 수가 없다. 복사가 끝난 후에는 셀렉터로 ‘MY MUSIC’을 선택하면 된다.
인터넷 라디오 = 셀렉터로 ‘RADIO’를 선택하니 여러 채널이 뜨는데, 이중 필자가 평소 가끔 듣는 ’Classic FM 100.9’ 채널을 선택하니 여지없이 잘 나온다. 디스플레이 창에 방송중인 곡 제목과 앨범재킷, 아티스트 이름 등이 컬러풀하게 뜨는 점도 마음에 든다.
“본격 시청”
과연 음질은 어떨까. 포칼의 마운트스탠드형 ‘Sopra No.1’에 물렸다. ‘Sopra No.1’은 포칼이 자랑하는 1인치 베릴륨 역돔형 트위터와 6.5인치 W콘 미드베이스 유닛을 단 2웨이 베이스 리플렉스 스피커. 주파수응답특성은 45Hz~40kHz(-3dB), 감도는 89dB, 크로스오버는 2.2kHz, 공칭 임피던스는 8옴, 최저 임피던스는 3.9옴이다. ‘M6 Encore 225’와 ‘Sopra No.1’을 체르노프 스피커케이블로 연결한 초간단 시스템이다.
Little French Songs
포커싱과 현장감, 이미징이 좋다. 발성의 세세한 아티큘레이션이 잘 전해진다. 첼로와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대체적으로 묵직하게 들리는 게 특징. 음들이 가볍거나 흩날리지 않는다. 스피드감 역시 만족스럽다. 이어 들은 ‘Chez Keith Et Anita’에서는 그녀가 상당히 앞으로 포워딩해온다. 허스키한 보이스 칼러의 질감이 생생하다. 손가락과 기타줄의 온갖 마찰음이 그대로 포착된다.
The Turtle Creek Chorale
첫 인상은 음수가 매우 풍부하다는 것. 소프라노가 약간 오른쪽 뒤에 위치한 느낌이 잘 드러난다. 이를 둘러싼 남녀 합창단의 도열 풍경도 제법 잘 그려진다. 전체적으로 깨끗한 사운드다. 파이프 오르간의 저역, 홀톤과 잔향도 잘 느껴진다. 이어 들은 ‘Agnus Dei’에서는 스테이징과 정위감이 도드라진다. 내장 DAC과 프리단의 분해능이 일정 수준 이상에 올랐다는 반증일 것이다. 팀파니는 비록 살살 울리는데도 그 에너지가 제법 묵직하게 전해진다.
The Glenn Gould Edition
글렌 굴드 ‘바흐 피아노 협주곡 D Minor’(CDP & CD리핑) = 글렌 굴드의 허밍이 생생하게 들린다. 앰프와 스피커의 노이즈 관리가 잘 된 덕분에 시스템의 SNR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곡에서 놀란 것은 그랜드 피아노가 실물 사이즈로 등장했다는 것. 그만큼 포커싱과 스테이징 능력이 탁월하다. 귀를 바싹대고 들어봐도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어 같은 곡을 리핑한 후에도 들어봤는데, CD를 직접 재생했을 때와 별 차이를 못느꼈다. 오히려 SNR이 조금 더 늘어난 것 아닌가 싶지만, 이는 CD용 모터가 꺼진 데 대한 선입견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총평”
‘M6 Encore 225’를 포칼 ‘Sopra No.1’에 물려 들으면서 다기능에도 놀랐지만 음질에는 더 놀랐다. 전체적으로 스트레스 없이 음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재생하고 있다는 인상. 북쉘프 정도야 너무나 쉽게 재생할 수 있다는 앰프의 자신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만큼 225W 출력은 생각 이상으로 넉넉했다. 저역에서 허둥지둥대지 않는 것을 보면 저임피던스 대책, 즉 튼실한 전원부가 밑바탕돼 있음이 분명하다.
내장 DAC과 프리단의 성능도 어디 흠잡을 데가 없다. 32비트/384kHz까지 지원한다는 스펙도 스펙이지만, 실제 리뷰를 통해 귀로 느낀 분해능과 스테이징 재현능력은 단품 DAC과 프리앰프에 못지 않았다. 물론 퓨어 베릴륨 트위터를 채택, 고역에서의 에어리감을 달성한 포컬 스피커 덕도 봤겠지만 예전 ‘M1 DAC’으로 강호의 고수들을 제압했던 뮤지컬 피델리티의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 ‘M6 Encore 225’의 가장 큰 매력은 비교적 착한 가격에 CD를 즐길 수 있다는 점. CD 리핑 기능과 헤드폰앰프 기능, USB 디바이스 활용성도 각 해당 유저 입장에서는 정말 막강한 툴이다. 전면 디스플레이창은 사진에서 보는 것 이상으로 컬러풀하며 시인성이 뛰어나다. 한마디로, 딱 하나, 스피커만 없을 뿐인 진정한 올인원 오디오 끝판왕의 출현이다.
- 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