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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컬 이슈의 극한에서 만난 여유로운 낭만
포칼 SOPRA N°3
포칼에 대한 편견
포칼은 무언가 하이테크 한, 기술 본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드라이버 유닛을 직접 생산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브랜드이며, 불분명한 감성에 호소하는 마케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보니 더더욱 그러하다. 얼마 전 리뉴얼 되기 전의 포칼 웹사이트에서는 제품 소개 여기저기에 복잡한 계측치 비교 그래프가 잔뜩 보이기도 했으며 자사의 특허 기술에 대한 설명에 상당히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포칼의 마케팅 담당자인 쿠엔틴 모리외(Quentin Morieux)가 방한하여 진행한 컨퍼런스 등에서 이야기할 때에도 브랜드 및 제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강조된 것이 바로 이 기술적 부분이었다. 신예 소프라 시리즈의 소개에 있어서도 포칼은 온/오프라인 분야를 막론하고 자사 스피커가 얼마나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소개하는데 매우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스피커라는 물건은 매우 과학적이기도 하며 매우 감성적이기도 하다. 현대의 하이엔드 스피커라 칭해지는 브랜드 중에서 사람의 최종 청감 튜닝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거의 없으며 또한 그 이전에 자사의 고유 기술을 업그레이드 시키는 데 시간과 비용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단순히 투입된 물량만 가지고 그 비싼 값어치를 계산할 수 없는 이유에 다름없다.
▲ 포칼의 마케팅 담당자인 쿠엔틴 모리외(Quentin Morieux)
때문에 포칼의 브랜드 이미지가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감이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모든 과목에서 무난하게 좋은 성적을 거두는 학생이 특별히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면 나머지 과목은 상대적으로 잘 하지 못한다는 선입관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 마치 그런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포칼은 각종 산술에 능한 이과 특기생 만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오디오 시장에서 이른바 “포칼 사운드”라는 레퍼런스를 만들어 낼 만큼 그 정체성이 뚜렷하며 어느 누구도 포칼의 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즐기는 데 있어서 팔짱을 끼고 앉아 분석적인 자세로 임하지는 않는다. 음악에의 몰입도를 무시할 브랜드는 아니라는 뜻이다.
또한 공부만 잘 하고 외모 꾸미기에 관심이 없는 범생이 스타일의 스피커도 아니다. 디자인의 스타일리쉬함에 있어서는 Made in France라는 타이틀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수준. 그리고 이러한 스타일리쉬한 컨셉은 포칼 신예의 소프라 시리즈에 이르러 절정에 다다른 것 같다.
스타일리쉬한 비주얼 안에 숨겨진 하이엔드 DNA
본 리뷰의 주인공인 소프라 No.3 플로어스탠더는 넘버3라는 모델명과는 달리 소프라 시리즈 최상급의 스피커다. 약 70kg에 달하는 상당히 육중한 몸매를 지닌 대형기. 적용된 드라이버 유닛만 하더라도 8인치를 넘기는 W샌드위치 콘 우퍼 유닛 2기와 6반 사이즈 미드레인지, 그리고 포칼 고유의 베릴륨 역돔 트위터를 탑재한 구성을 자랑한다.
스피커의 본질인 소리를 논하기 앞서 그 디자인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을 만큼 소프라 No.3는 매우 스타일리쉬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컬러만 해도 무려 6가지나 되며 그 중에는 오렌지, 레드와 같은 원색도 있다. 대형기에 이토록 화려한 컬러를 무난하게 소화시키려면 디자인적 감각이 얼마나 뛰어나야 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프라 No.3 역시 여타의 소프라 시리즈와 동일하게 고밀도 MDF를 CNC 선반으로 마치 조각하듯 파내어 만든 인클로저를 사용한다. 고급 스포츠카의 피니시와도 같은 하이글로스 마감의 유선형 디자인을 보고 있노라면 소프라 No.3의 인클로저가 MDF라는 상상을 하기 힘들 정도이다. 프랑스 생 떼 띠엔의 본사 공장과는 별개로, 인클로저를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이 따로 존재하는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는 퀄리티.
아마도 다소 보수적인 오디오 파일이 소프라 No.3를 처음 접한다면 선입관이 생길 만도 하다. 화려하고 생생한 고음역이나 다소 진중하지 못한 가벼운 사운드를 상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금발의 마릴린 먼로가 백치미의 상징이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마릴린 먼로는 사실 매우 지적인 사람이었다. 항간에 떠돌던 아인슈타인과의 염문설에서는 마릴린 먼로의 지성에 대한 선망이 잘 나타나고 있으며, 그녀와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었던 이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것이 바로 마릴린 먼로의 풍부한 지식과 깊이 있는 철학적 사색이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지성이 배우로서의 장식품이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소프라 No.3의 스타일리쉬한 외모는 마릴린 먼로와 비슷한 선입관을 만듦직 하다. 더군다나 이토록 화려한 모습의 대형기 스피커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하다. 그렇지만 소프라 No.3는 알면 알수록 반전의 매력이 넘쳐나는 재미있는 스피커이다.
열거한 이 세 가지 핵심 기술들은 소프라 No.3를 비롯한 모든 소프라 스피커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들이다. 한없이 예쁘장하기만 할 것 같은 소프라 패밀리들은 포칼의 유토피아 시리즈에도 적용되지 않는 이러한 독특한 테크놀로지를 잔뜩 품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스피커들을 오랫동안 들어온 바에 의하면, 스피커는 음악적인 스피커와 분석적인 스피커로 나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스펙적으로는 양자 모두 훌륭하지만 지향하는 뉘앙스 자체가 다른 것이다. 후자의 분석적인 스피커의 경우 음악을 감상하면서도 무언가 계속 평가를 진행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해상력, 스테이징의 심도와 넓이, 착색의 정도, 악 악기 별 대역 표현 및 질감의 뉘앙스, 백그라운드의 정숙한 정도 등등. 물론 이러한 것들이 오디오를 즐기는 재미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소프라 No.3정도 가격대의 스피커에서 기대하는 것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터.
빠르고 정확함 이라는 덕목은 분명 포칼 고유의 것이며 소프라 No.3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기민하다는 것이 음악적 표현력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된다는 생각은 적어도 소프라 No.3에 있어서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브랜드와 스피커의 백그라운드적 지식과 이미지를 내려놓고 차분하게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이 스피커가 가진 자연스러운 매력과 섬세한 디테일 표현이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포칼 스피커들의 위 아래 등급 차이를 짓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이러한 음악 표현의 능숙함이 아닐까 한다. 소프라 시리즈가 포칼의 일렉트라 급 이하의 라인업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점도 바로 이러한 음악성에 다름없다. 물론 일렉트라나 코러스 등의 하위 라인업들도 플래그쉽인 유토피아의 기술적 혜택까지는 분명히 공유하는 바 있다.
아무튼 소프라 No.3는 대형기가 자칫 놓치기 쉬운 음악적 섬세함 표현에 있어서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주는 스피커다. 물론 대형기 고유의 방대한 스케일 표현, 깊고 심도 있는 저음역의 실제감 등은 부족하지 않게 표현해주고 있다.
본격 시청
소프라 No.3를 메인 스피커로, 매칭 앰프는 골드문트의 프리미엄 급 인티앰프인 TELOS 590을 사용하였다. 동사의 EIDOS 17 유니버셜 플레이어를 소스기기로 하여 코엑시얼 출력을 통해 590의 DAC를 사용하는 구성을 취하였다.
- Mahler Symphony No.2 in C minor “Resurrection”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by GEORG SOLTI
대규모의 코러스가 가미된 스케일 큰 오케스트라 넘버의 대표라고 한다면 역시나 말러의 Resurrection을 빼놓을 수 없다. 하이엔드 오디오 제품을 가혹 테스트 하는 데에도 악명 높게 이용되는 곡이다. 합창까지 가세하는 오케스트라 총주의 절정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스피커들이 소리의 분해능을 끝까지 끌어올리지 못하고 뻗어 버리기가 다반사. 하지만 소프라 No.3와 골드문트 TELOS 590으로 구성된 시스템에서는 오히려 무언가 좀 더 뻗어 나가도 괜찮겠다 싶은 여유마저 느껴진다. 앞서서 필자는 소프라 No.3의 음악적 디테일 표현에 대해 언급한 바 있는데, 특히나 말러의 곡에서는 악기 하나하나의 표정이 살아 숨쉬는 듯 각자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전체의 유니즌 특성을 고르게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디테일을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터. 스피커와 앰프 모두 하이 스피드 특성에다가 분석적이라는 선입관을 받긴 하지만 정작 음악을 듣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테크니컬한 이슈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음악 재생에 있어 충분한 몰입도를 느낄 수 있고 1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 타임은 비현실적으로 축약되기에 이른다. - Duke Jordan “Flight to Denmark” 中 1번째 트랙 “No Problem”
마치 별도의 퍼커션 주자가 따로 있는 듯한 소소한 비트의 곡 인트로, 그리고 차례 얹어지는 베이스 리프와 조던의 피아노 선율은 피아노 트리오 연주중에서도 최고의 백미를 보여준다. 각 세션들이 어우러지며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초반의 베이스 리프 도입부는 시스템 특성을 상당히 많이 타는 부분이다. 저음의 타이밍이 정확하지 않고 스피드가 느린 스피커에서는 필연적으로 부밍을 야기하며 중 고음에서 탁월한 실력을 발휘하는 스피커라고 할 지라도 우퍼 크로스오버의 정교한 밸런싱이 없다면 음악은 각 악기별로 따로 겉돌 수 있는, 재생이 은근히 까다로운 곡이다. 드럼/베이스 세션의 탄탄한 기초 위에 피아노는 마치 흐르는 물에 검붉은 잉크가 번져 나가듯 귓가에 아른거려야 한다. 소프라 No.3로 듣는 조던의 이 곡은 정확히 이렇게 들린다. 한없이 단단하기만 한 저음은 이러한 곡에서 미묘한 베이스의 손놀림을 감지하지 못하지만 소프라 No.3의 듀얼 8인치 우퍼 섹션은 저음의 감미로움과 여유로움을 한껏 끌어올려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 Charlotte Church “Enchantment” 中 6번째 트랙 “The Flower Duet”
능숙하게 훈련된 소프라노가 아닌 시절의 Charlotte Church는 분명 성악적 기교 측면에서 볼 때 만족스럽지는 않다. 다만 그 나이대에서만 가능한 풋풋하고 생기 어린 보이스 톤은 중음역의 순도를 평가할 때 자주 사용될 만큼 그 투명도가 우수하며 때문에 많은 오디오파일들이 이 앨범을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곱디 고운 비주얼의 앨범 재킷 또한 이 앨범 구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은 든다. 이 앨범이 나온 것이 2001년도이니 16년이 지난 지금의 Charlotte Church의 목소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튼 여성 2중창 구성의 본 곡에 있어서는 소프라 No.3의 감성적 표현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나 홀 톤이 가미된 녹음에 있어서의 잔향 처리, 두 목소리가 합쳐질 때의 풍부한 배음 발생 등에 있어서는 그 자체가 마치 독립된 악기의 표현으로 들릴 만큼 극적으로 들린다. 목소리의 톤 뿐 아니라 발성에 필요한 모든 인체 기관의 떨림이 빠짐없이 전달되는 만큼 생생한 실제감과 음악적 뉘앙스는 듣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Type | Three-way bass-reflex floor standing loudspeak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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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kers | 2 x 81/4" (21cm) “W” cone woofers with NIC 61/2" (16.5cm) “W” cone midrange with NIC and “TMD” suspension 11/16" (27mm) pure Beryllium IHL inverted dome tweeter |
Frequency response (+/- 3dB) | 33Hz - 40kHz |
Low frequency point -6dB | 26Hz |
Sensitivity (2.83V/1m) | 91.5dB |
Nominal impedance | 8 Ohms |
Minimum impedance | 3.1 Ohms |
Crossover frequency | 250Hz / 2200Hz |
Recommanded amplifier power | 40 - 400W |
Dimensions (HxWxD) | 1264x402x595mm |
Weight (unit) | 154.32lbs (70kg) |
수입원 | 오디오갤러리 (02-926-9084) |
가격 | 2,400만원 |
하이파이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사운드의 컨트롤, 혹자는 댐핑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앰프의 구동력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고민거리를 마치 공대생이 계산하듯 파헤치려고만 한다면 하이파이는 더 이상 즐거운 취미가 아니게 된다. 포칼은 소프라 No.3를 통해 음악을 음악답게 전달하고자 하는 명백한 목표의식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화려한 테크놀러지 퍼레이드를 현재진행형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청자는 그것들을 굳이 머릿속에 떠올려가며 오디오를 공부할 필요는 없다.
테크놀러지, 이 스피커에 대한 신뢰를 위해서 필요한 컨텐츠일 수는 있지만 소프라 No.3를 듣고자 하는 이들은 이 스피커의 첫 비주얼을 접했을 때의 설레임만 준비하면 될 듯 하다. 적어도 소프라 No.3를 통해 포칼은 충분히 낭만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낭만적이라는 것은 기술적으로 충분한 성과를 달성하고 있는 동사의 여유로운 일면으로도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