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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디지털 파일 음원이나 네트워크 스트리밍 음원에 대한 피로도가 쌓이기 시작했다. 룬과 타이달, 코부즈를 이용하면서 광활하고 풍성하며 편리한 스트리밍 음원의 세계에 풍덩 빠진 것은 좋았지만, 뭔가 뜬구름을 잡고 있다는 느낌을 벗어날 수 없었다. 형체를 직접 보고 만질 수 없기도 하지만, 사운드 자체가 가볍고 색깔이 옅은 느낌이 점점 강해진 것이다. 이러다 CD를 재생해보면 확실히 무겁고 두툼하며 진한 음이 나왔다. 정숙도가 높은 데다 표면이 아주 매끄러운 그런 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언제부턴가 필자는 ‘CD는 죽었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게 됐다. 집에 있는 CD도 기회가 되면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듣게 됐다. 관건은 CD플레이어의 재생 품질인데, 필자가 몇 년 째 쓰고 있는 오포(Oppo)의 BDP-105D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음이 둔하고 애매했다. 동축으로 디지털 아웃시켜 마이텍(Mytek)의 Manhattan II DAC에 연결해야 비로소 들을 만한 음이 나왔다. 그리고 어느새 네트워크 렌더러 + DAC 조합보다 디스크 트랜스포트 + DAC 조합을 더 선호하게 됐다.
일본 TAD의 디스크 플레이어 겸 DAC D600은 이런 맥락에서 필자가 예전부터 주목했던 기기다. 처음 접했던 것은 2017년 말 TAD의 최상위 레퍼런스(Reference Series) 풀 시스템을 리뷰했을 때였다. 스피커는 3웨이 4유닛 동축 스피커인 R1 MK2, 파워앰프는 600W(4옴) 모노블럭 M600, 프리앰프는 전원부 분리형 C600이었고, 소스기기로 디스크 플레이어인 D600이 포진한 환경이었다. 이들 조합이 내어준 사운드는 그야말로 궁극의 사운드라 할 만했다. 그리고 당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장 돋보인 기기가 D600이었다.
D600은 이후 2018년 2월에 한 번 더 들었고, 최근, 정확히는 5월 7일에 하이파이클럽 메인 시청실에서 세 번째로 들었다. 매칭 기기는 더할 나위없이 화려했다. 프리앰프는 매킨토시(McIntosh)의 C1100, 파워앰프는 역시 매킨토시의 모노블럭 MC611, 스피커는 아방가르드 어쿠스틱(Avantgarde Acoustic)의 혼 스피커 Trio LE 26과 베이스 모듈 Basshorn XD 조합이었다. 1년여만에 들은 D600에 다시 무릎을 치고 말았다. 무엇보다 강력 탈수기로 기름기와 노이즈를 싹 빼버린 듯한 조용한 배경과 부드럽고 촉촉한 음의 감촉이 그야말로 감칠맛, 바로 그 자체였다.
TAD와 D600
TAD(Technical Audio Devices Laboratories)는 1937년 설립된 일본 파이오니어(Pioneer)의 자회사로 하이엔드 오디오 업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제작사다. 파이오니어가 1975년 JBL의 개발 엔지니어였던 바트 로칸시(Bart Locanthi)를 기술 고문으로 초빙해 미국 현지에서 고급 스피커 개발에 착수한 것이 모태가 됐다. 1978년 ‘TAD’라는 이름의 드라이버 유닛이 탄생했고 2007년 일본 도쿄 신주쿠에 본사, 사이타마 현 가와고에 시에 생산기지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메이드 인 재팬’ 시스템을 갖췄다.
TAD의 설계이념은 바트 로칸시의 좌우명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기본에 충실한 기술이야말로 진짜 기술이며, 기술 지향으로 치우치지 않고 언제나 음질을 최고로 중시하는 기술이야말로 진짜 기술이다.” TAD는 공식 출범한 2007년 플로어스탠딩 스피커 R1(R은 Reference의 약자)을 처음 출시한 이후, 2009년 모노 블럭 파워앰프 M600, 2010년 이번 시청기인 D600, 2011년 프리앰프 C600을 내놓으며 플래그십인 레퍼런스 시리즈를 완성시켰다. M600은 2009년 일본 스테레오사운드의 골든 사운드 어워드(1등 상)를 수상했다.
이어 2010년에는 스탠드마운트 스피커 CR1(C는 Compact의 약자)이 나왔고, 오리지널 R1과 CR1은 2012년에 각각 드라이버 유닛 등을 혁신한 MK2 버전으로 진화했다. 현재 레퍼런스 시리즈의 스피커는 이렇게 R1 MK2와 CR1 MK2 2종이다.
이들 레퍼런스 시리즈 밑에는 에볼루션(Evolution) 시리즈가 있다. D1000 MK2(디스크 플레이어)를 비롯해 DA1000(DAC), C2000(프리앰프), M4300(300W 파워앰프), M2500 MK2(500W 파워앰프), CE1(스탠드마운트 스피커), ME1(스탠드마운트 스피커. M은 Micro의 약자)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D600 본격 탐구
시청기인 D600은 파이오니어의 SACD/CD 메커니즘을 채택한 디스크 플레이어이자 텍사스 인스투르먼트(TI)의 PCM1794 DAC칩을 채널당 1개씩 사용, 최대 24비트/192kHz까지 지원하는 DAC이다. 전원부가 별도로 독립된 점이 외관상 가장 두드러진다. 다만 디지털 입력단자로 동축(RCA)과 AES/EBU(XLR)만 지원, USB 입력을 통해 DAC 기능을 활용할 수 없는 점은 크게 아쉽다. DSD 재생도 안 된다.
이처럼 오디오파일들이 즐겨 사용하는 USB-B 타입 입력단이 없는 것은 D600 제작 당시 USB 전송기술이 완전히 정착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 지난해 방한한 준 나카하타 TAD 대표이사에게 이 점에 대해 물어봤는데, “검증도 안 된 상태에서 USB 입력단을 장착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외관을 본다. 본체의 경우 특이하게 전면 패널 가운데 부분이 삼각형 모양으로 앞으로 살짝 튀어나온 모습이다. 밑에는 디스크 트레이, 위에는 디스플레이가 있으며 그 좌우로 전원 온오프 및 각종 컨트롤을 위한 터치 버튼이 마련됐다. SACD와 DAC 버튼이 눈길을 끈다. 두툼하고 묵직한 리모컨도 제공된다. 후면은 왼쪽부터 동축 입력(D2), AES/EBU 입력(D1), AES/EBU 출력, 전원 인렛(DC2, DC1), 아날로그 출력(RCA, XLR) 순이다. 본체는 26.5kg, 전원부는 13kg.
이제 하나하나 따져보자. D600에는 TAD가 30여 년 동안 축적한 기술력과 음질향상을 위한 갖가지 설계디자인이 농축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D/SACD 메커니즘의 경우 단단한 알루미늄 재질의 트레이와 절삭가공한 고정밀 로터를 조합, 하이엔드를 꾀했다. 또한 고정밀 브러시리스(brushless) DC 서보모터를 사용, 반영구적인 사용과 함께 노이즈도 줄였다. 실제로 사용해보면 트레이가 나오고 들어가는 과정이 매끄럽고 정숙하기 짝이 없다. 눈길을 끄는 것은 튀어나온 트레이에 얇고 검은 패브릭이 붙어있는데, TAD에 따르면 CD나 SACD 밑면의 난반사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지터(시간축 오차)를 극도로 낮춘 11.2896MHz 사양의 크리스털 제너레이터(수정발진자)를 마스터 클럭으로 채택한 점도 눈길을 끈다. TAD에서는 이 마스터 클럭을 ‘UPCG(Ultra-high-Precision Crystal Generator)’로 명명했는데, 지터를 확연히 줄여 디스크나 외장 소스에 담긴 디지털 음원을 고순도, 고정밀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케 한 일등공신이다. 이 UPCG 덕분에 D600은 기존 플레이어들에 비해 50dB 이상의 노이즈 레벨 개선 효과를 가진다고 한다.
DAC 칩은 PCM1794를 채널당 1개씩 썼다. PCM1794은 기본적으로 8배 오버 샘플링(최대 200kHz)과 디지털 필터(FIR. Finite Impulse Response)를 내장한 델타 시그마 칩. 결국,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생긴 양자화 노이즈를 오버 샘플링과 디지털 로우패스 필터를 통해 최대한 줄이려는 설계다. PCM1794는 또한 칩 하나가 2채널 스테레오 채널을 컨버팅하기 때문에 이를 채널당 1개씩 쓸 경우 밸런스 구성이 가능하다. 잘 아시는 대로, DAC 칩셋 역시 밸런스로 구성할 경우 SNR과 선형성, 다이내믹 레인지가 좋아지고 왜율은 낮아진다.
DA 컨버팅 이후의 전류/전압 변환회로도 주목할 만하다. 통상 DA 컨버팅 이후의 신호는 전류형태로 출력되는데, 뒷 단에서 이를 활용하려면 전압 형태로 변환시켜줘야 한다. 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I/V 변환회로’이며, 이곳에서 사실상 제작사의 내공과 실력이 드러난다. D600은 디스크리트 방식으로 I/V 변환회로를 설계, 초저노이즈와 극한의 슬루레이트를 구현했다. 시청 내내 ‘맑고 깨끗한 음과 빠른 스피드, 정숙한 배경’이 두드러졌던 것도 이처럼 초저노이즈 및 트랜지언트 능력에 포커싱을 맞춘 I/V 변환회로 설계 덕분이었던 셈이다.
TAD 특유의 꼼꼼한 제진 대책 역시 어김없이 마련됐다. 높은 진동흡수 성능을 추가한 주조 알루미늄이 베이스를 이루고, 이 베이스 내부 바닥 위에는 동(copper)으로 도금된 두께 6mm의 철제 플레이트가 다시 투입됐다. 동 도금 처리는 그라운드 임피던스를 한층 낮춰 SNR 개선 효과도 이끌어냈다고 한다. 26.5kg에 달하는 육중한 플레이어 유닛을 3점 지지 스파이크로 지지하는 것 역시 철저한 제진대책의 일환. 13kg의 전원부 역시 주조 알루미늄 케이스에 담겼다. 전원부에는 대출력 파워앰프에 사용할 법한 400W 전원트랜스를 아날로그 전원용으로, 100W 전원트랜스를 디지털 전원용으로 마련, 2개의 전용 케이블로 본체에 공급한다.
시청
Nikolaus Harnoncourt, Concentus Musicus Wien, Wiener Philharmoniker Mozart Requiem-Tuba mirum
(Mozart/Verdi Requiem Experience)
첫 곡으로 ‘Tuba mirum’을 고른 이유가 특별히 있다. 4명의 성악가가 베이스, 테너, 알토, 소프라노 순으로 등장하는데 그 정위감을 체크해보면 특히 소스기기의 실력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보통 수준의 소스기기에서는 횡으로 선 4명의 거리감이 제대로 안 느껴지거나 심하면 가운데 뭉치는 경우가 많다. 3분 41초 동안 이 곡을 듣고나서 거의 ‘만세’를 외칠 뻔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착착 남성 둘, 여성 둘이 정확한 거리를 두고 등장해 노래를 불렀기 때문이다. 음악을 오디오로 재생한다는 것은 결국 ‘실제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좌우 거리감과 음색 구분뿐이 아니었다. 이들의 미세한 입 위치마저 파악됐다. 막판 이들이 함께 합창할 때는 이들을 둘러싼 공기감 마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여기에 필자의 귀에 와 닿는 음의 감촉은 부드럽고 배경은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단언컨대, 거의 역대급 재생이었다.
Janis Ian - Breaking Silence
Breaking Silence
역시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가운데, 생생하고 싱싱한 음들이 솟구쳐 나온다. 무엇보다 무대의 좌우 스케일이 무척 넓다. 기타는 왼쪽에 있던 아방가르드 혼 스피커 바깥에서 연주하고 있고, 보컬은 무대 정중앙에서 실물 사이즈로 노래를 한다. 드럼은 통통, 그 탄력감이 예술이다. 한마디로 별의별 소리가 다 들린다. 소스기기, 특히 디지털 소스기기는 이처럼 ‘평소 안 들리던 소리가 들리는가?’ 그리고 ‘평소 들리던 소리가 얼마나 고급스러운가?’가 관건이다. D600이 비교적 오래된 DAC 칩셋을 가지고서 이런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것이 놀랍다. 여기에 무대까지 현기증이 날 정도로 입체적으로 펼쳐지고 음의 윤곽선은 선명하니 더 바랄 게 없다. 참으로 심도(depth)가 깊은 재생음이다. 고운 입자감과 폭발하는 음수에도 감탄했다.
Anne-Sophie Mutter, James Levine, Wiener Philharmoniker - Carmen Fantasie
Zigeunerweisen
리뷰용으로 수십 번은 들었을 이 곡이 이날따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대의 좌우 폭과 안길이가 긴 것은 기본이고 안네 소피 무터의 바이올린과 빈필 오케스트라의 위아래 위치마저 생생하게 잡힌다. 결국, 디스크에 담긴 스테레오 정보를 모조리, 그것도 상처나 왜곡 하나 없이 긁어왔다는 반증이다. 이밖에 여린 음의 표현력. 연주자들을 둘러싼 공기감, 바이올린의 깊고 진한 통 울림, 총주에서의 해상력도 돋보인다. 아방가르드의 커다란 혼 스피커는 진작에 사라졌다. 하지만 이 곡에서 가장 놀란 것은 마치 참기름이 위에서 아래로 가늘게 떨어지듯이 음이 일체의 끊김 없이 매끈하게 이어진다는 것. 이 느낌은 사실 평소 LP를 재생하면서 은밀하게 즐기던 감촉인데 이를 CD에서 끄집어낸 것은 에소테릭이나 오르페우스 등 하이엔드 플레이어 몇 기종에 불과하다.
Oscar Peterson Trio - You Look Good To Me
We Get Requests
이 곡 도입부는 무조건 소란스러워야 한다. 접시에 포크 부딪히는 소리, 무대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뭐라 떠드는 소리가 이곳 저곳에서 정신없이 들려야 정답이다. 기대했던 대로 아주 소란스럽다. 이런 현장음이 잘 들린다는 것은 결국 D600을 포함한 현재 오디오 시스템 전체의 플로어 노이즈가 워낙 낮다는 이야기다. 이어 피아노, 베이스, 드럼 순으로 등장한 세 악기만으로 무대가 꽉 찼다. 무대가 넓게 펼쳐지는데도 휑한 구석이 전혀 없다. 그만큼 음수가 많고 음의 밀도가 빽빽하다는 증거다. 베이스 현의 거의 올 풀린 듯한 소리, 피아노의 청명한 현 울림에 가세한 인클로저의 굵고 힘찬 통 울림 등 악기들의 질감 또한 생생하기 짝이 없다. 이 곡에 이렇게나 복잡다단한 음들이 숨어있었나 싶다.
총평
간만에 친숙한 곡들을 아주 집중해서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정리해본다. TAD D600은 USB케이블로 간편하게 PC파이나 맥파이, 혹은 네트워크 플레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기기가 아니다. 또한, 이더넷 입력단을 갖춰서 언제든 네트워크 렌더러로 변신할 수 있는 제품도 아니다. DSD도 안된다. 필자가 보기에 D600은 수십 년간 CD와 SACD를 사모은 음악애호가와, 피지컬 디스크의 매력과 진가에 뒤늦게 눈을 뜬 오디오파일을 위한 디스크 플레이어다. 디스크 덕후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정숙한 음, 매끄러운 음, 정보량이 넘쳐나는 음에 깜짝 놀라실 것이다.
by 김편 오디오 칼럼니스트
Specification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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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og Audio Output | Output Connectors / Balanced Output: XLR stereo x 1, Unbalanced Output: RCA stereo x 1 Audio Output level / Balanced Output: 450mVrms (1kHz, -20dB), Unbalanced Output: 220mVrms (1kHz, -20dB) |
S/N Ratio | 115dB |
ADigital Audio Input | Balanced Input: XLR connector x 1 Coaxial Input: RCA Connector x 1 Balanced Output: XLR Connector x 1 Input sampling frequency: 32kHz to 192kHz Output sampling frequency: 44.1kHz, 88.2kHz(CD) |
Power Source | AC120V,60Hz (USA), AC230V,50Hz/60Hz (Europe) |
Power Consumption During Standby | 0.5W |
Power Consumption | 32W |
DIMENSIONS | Main unit: H440 × W185 × D450mm Powr unit: H430 x W185 x D220mm |
WEIGHT | Main unit: 26.5kg Power unit: 13kg |
TAD D6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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