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와 진공관의 역습”

300B가 건네는 따스한 포옹 

Fezz Audio Mira Ceti Integrated Amplifier

CD 포맷이 저물어가며 그를 대신해 같은 디지털 포맷 진영에서는 스튜디오 마스터 음원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같은 고음질의 대안으로 디지털 포맷이 아닌 아날로그 포맷이 다시 조명 받고 있다. 이는 단지 단순간의 붐이 아니라 2천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흐름으로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커다랗고 무거운 LP, 보관과 정리 그리고 먼지 등에 대비한 운용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시 우리는 만지고 소유할 수 있는 실물, 피지컬 포맷의 세계로 이동 중이다.

다른 한편 오디오에서도 유독 진공관 앰프들의 강세가 눈에 띈다. 강력한 전류 공급 능력과 드라이브 유닛 핸들링 능력 때문에 약세를 보이다가 기술의 발전으로 다시 현대적인 진공관 메이커가 약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 델타 시그마 칩셋에 질린 마니아들이 채산성과 상업성 때문에 메인스트림에서 물러났던 R2R 래더 DAC에 열광하고 있다. 모두 고속으로 진화한 테크놀로지에 대한 반동적 현상으로 해석된다.

알고 보면 동부 유럽의 아날로그 소스와 하드웨어와 관련해 전초기지 같은 역할을 해왔다. LP 생산 공장 중 가장 커다란 규모의 공장이 체코에 위치해있는 것은 유명하다. 프로젝트 오디오 턴테이블 등 여러 턴테이블이 체코에 위치한 공장에서 생산된다. 공산 국가였던 당시 인수해 지금은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최근 동부 유럽 국가들에서 다수의 독보적이며 신선한 하이엔드 오디오가 소개되고 있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구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동부 유럽 국가들은 축적된 기술 및 저렴한 인건비와 부지 여건 등을 토대로 양질의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가장 영향력 있는 하이엔드 DAC 메이커로 급부상한 램피제이터가 폴란드의 대표적인 브랜드다. 불가리아 출신 엔지니어가 운영하는 트락스는 독창적인 설계의 하이브리드 진공관 앰프 메이커로 골수 하이엔드 마니아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날아온 체르노프 케이블은 이미 동부 유럽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고 국내에도 소개되어 많은 오디오파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폴란드 진공관의 신성 - FEZZ Audio”

동부 유럽 국가 중에서 유독 폴란드 메이커들이 눈에 많이 띄는 요즘이다. 독일 뮌헨 오디오 쇼가 전 세계 하이엔드 오디오의 최대 격전지가 된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폴란드는 동부 유럽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규모의 오디오 쇼를 개최하고 있다. 매년 개최되면서 이제 20여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폴란드 오디오 쇼. 동부 유럽은 이제 동부 유럽 오디오를 넘어 유럽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의 새로운 중심지 중 하나로 거듭나고 있다.

그 중 FEZZ 는 준비된 하이파이 진공관 메이커였다. 그들은 일종의 패밀리 비즈니스 그룹으로 그 중심엔 ‘Toroidy.pl’이라는 회사가 존재한다. 이들은 무려 20년 넘게 여러 메이커들에게 제품 제작에 필요한 부품을 공급해왔으며 특히 까다롭게 제작된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는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인터 알리아, 마이텍, 램피제이터, 아마레 뮤지커, 오디오 밸브는 물론 에인션트 오디오 등이 그들의 파트너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부터인가 자사의 제품을 개발하기로 작정하고 연구, 개발에 돌입했다. 그 결과물들이 바로 지금 소개하는 Mira Ceti를 비롯 Silver Luna 등의 진공관 인티앰프들이다.

“300B 진공관의 매력 속으로 - Mira Ceti”

FEZZ 는 진공관 앰프 제작에 있어서 자신들이 직접 제조한 트랜스포머를 사용한다. 그런데 그것이 EI 타입 트랜스가 아니라 토로이달 타입이다. FEZZ 는 토로이달 출력 트랜스가 다이내믹스과 더 뛰어난 중역 표현 그리고 더 단단한 저역을 만들어내는 등 음질적인 장점이 크다고 주장한다. Toridy.pl 의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비롯해 Mira Ceti 내부에 장착되는 부품들 또한 모두 미플렉스, 니치콘, 비샤이, 알프스 등 평균 이상의 고급 부품들만을 사용하고 있다.

 

 

 

상단엔 총 네 개의 진공관이 탑재된다. 우선 출력관으로 러시아산 일렉트로 하모닉스의 300B 진공관을 좌/우 채널 당 한 개씩 사용되었다. 밖으로 훌렁 옷을 벗고 드러나 있는 노출형 타입에서 300B는 투명하고 우아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양 쪽 300B 를 사이로 그 사이엔 6N8S 드라이브관이 장착되어 총 네 개의 진공관으로 싱글 엔디드 삼극관 인티앰프로 완성되었다. 증폭 방식은 A클래스로서 채널당 단 8와트라는 소출력을 만들어낸다. 아마도 여러 삼극관 앰프처럼 능률이 높은 풀레인지나 평판 스피커 또는 탄노이 등 고능률 동축 스피커 등을 짝지어 주어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진공관 후면으로는 두 개의 출력 트랜스포머가 반짝이는 금속 섀시로 밀봉되어 있다. 아마도 Mira Ceti 의 음색 등 전체적인 음질 특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트랜스로 주목된다. 후면으로는 초 세 개의 RCA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으며 스피커 출력단은 8옴은 물론 4옴 등 두 가지 스피커 임피던스에 대응하고 있다. 참고로 번인 시간은 40에서 60시간 정도를 권장하고 있다. Mira Ceti 는 하위 제품인 Silver Luna 와 달리 바이어스 조정이 별도로 필요 없다. 자동 바이어스 모듈이 내부에 적용되어 있기 때문이며 덕분에 바이어스 조정에 대한 의무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Mira Ceti를 테스트하기 위해 사용한 시스템은 아발론 Transcendent 스피커와 오렌더 W20 뮤직 서버 그리고 웨이버사 시스템즈 DAC3T다. 정직한 고해상도 디지털 소스기기와 입체적인 음장에 시원하고 호쾌한 중, 고역이 매력적인 아발론 스피커. 하지만 단 8와트 출력을 내주는 싱글 300B 로 제어하기엔 매우 힘든 상대라고 생각되었다. 대게 300B를 활용한 인티앰프의 경우 전체적인 대역이 좁고 고역 롤오프와 저역 감쇄가 꽤 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김윤아 - 유리

 

타인의 고통

 

그러나 그 대신 300B 는 어떤 여타 진공관 앰프나 트랜지스터가 흉내 내기 힘든 독보적인 음색 표현력을 가진다. 김윤아의 ‘유리’를 재생하자 투명하게 내부 그리드와 필라멘트가 보이는 300B의 모습처럼 발가벗겨진 듯 투명한 중, 고역이 펼쳐진다. 중, 고역의 음색은 마치 어느 봄날 오후 따스하게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살처럼 화사하다. 타이트하고 명징한 포커싱 등 오디오적 평가는 제쳐놓고 음색적인 매력에 머리가 아닌 가슴을 허락하게 만든다. 음상은 약간 높고 특히 보컬 등 중역과 고역의 중간 구간에서는 컬러풀하며 싱싱한 음색을 가감 없이 펼쳐 보인다.

 

Alice Sara Ott, Francesco Tristano - Soft shell Groove

 

Scandale

 

아발론 스피커의 아큐톤 세라믹 트위터가 펼쳐내는 높은 고역은 약간 롤오프되며 달콤한 소리를 내준다. 더불어 스피커의 음압 덕분인지 300B 앰프에서 자주 발견되는 포닉노이즈가 거의 전무해 조용한 배경을 선사한다. 음색만큼은 방울방울 떨어지는 샘물처럼 깨끗하고 생생하다. 절대 왜소하거나 어둡고 희미한 느낌은 크지 않다. 예를 들어 앨리스 사라 오트의 ‘Soft shell groove’ 같은 곡에서 피아노 타건은 냉정하거나 딱딱하지 않고 벨벳처럼 부드러우며 온화한 촉감이 음의 표면을 적신다. 더불어 300B치고는 기음이 뚜렷해 번지지 않고 중심이 뚜렷해 당당한 느낌이 지배적이다.

 

David Benoit - Barcelona Night

 

2 in love

 

리듬이 강조되고 조금은 빠른 타이밍, 페이스 감각이 요구되는 재즈나 팝 음악에서도 질척이거나 딜레이되는 느낌은 없다. 속도감은 뛰어난 편으로 데이빗 베누아의 ‘Barcelona night’에서 더블 베이스는 꽤 당당한 표현력에 술술 넘어가는 와인처럼 이물감이 없다. 예각을 그리는 정교함보다는 풋풋하며 둥글둥글한 모습이다. 대게 이 스피커는 매칭에 따라 중역대가 촘촘하고 단단하되 슬림하게 표현되곤 한다. Mira Ceti의 경우 광대역의 홀로그램을 구사하는 아발론의 장점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중역의 음색적 약점을 보완해준다. 시간축에서는 약간의 여유를, 중역엔 부드러운 촉감을, 고역엔 싱그러운 음색을 선사한다.

 

Gustav Dudamel - Pictures at the Exhibition 'The Great Gate of Kiev'

 

Wiener Philharmoniker

 

7인치 노멕스 케블라 콘 우퍼를 사용하고 4옴 임피던스에 88dB 능률을 가진 광대역 스피커 Transcendent를 Mira Ceti가 완전히 장악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여러 부분에서 정석적인 매칭은 아니다. 아발론의 장점을 극대화하고자 했다면 스펙트랄 같은 앰프를 매칭했을 것이다. 두다멜 지휘, VPO 연주로 전람회의 그림 중 ‘The great gate of kiev’를 들어보면 해상력이나 광활한 음장 재현은 부족하다. 그러나 300B로서는 싱싱하고 혈기 넘치는 스타일로 단 10시 볼륨에서도 풍부한 음압 레벨과 따스한 배음으로 하이파이클럽 시청실을 짙게 물들였다.

“총평”

 

Mira Ceti 는 어여쁜 외관만큼이나 예쁜 중고역을 가졌으나 더불어 삼극관 치고는 힘찬 반응 속도와 다이내믹스 표현력을 지닌 앰프다. 아발론 같은 하이엔드 광대역 스피커보다는 최근 리뷰한 스피커 중에서는 보자티브나 쿠르베 풀레인지 스피커 등과 잘 어울릴 법하다. 300B의 영롱한 고역과 맑은 중역, 살집이 충분히 붙어 푸근하고 동시에 힘찬 저역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최대 여덟시에서 열시까지 볼륨에서 북셀프와 함께 서재 시스템을 꾸린다면 제격이다. 폴란드 자국 오디오쇼에서 파일런(Pylon)이나 큐브오디오의 Bliss 같은 풀레인지 스피커와 어울려 시연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제 뜨거운 여름이고 진공관에 전원을 켜기 어려워지는 시기지만 이 또한 지나가고 언젠가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올 테다. 기어코 가을이 다가오면 Mira Ceti 의 소리가 나도 몰래 생각날지도 모른다. Mira Ceti는 디지털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건네는 300B의 따스한 포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