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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연주회 현장으로의 초대, FM Acoustics XS-2B, FM 711MK2, FM 233, FM 266MK2
글 : 김편
분석이고 뭐고 필요없었다. 그냥 연주하고 노래하는 현장이었다. 까마득히 안쪽으로 쑥 들어간 팀파니에게서 느닷없이 전해지는 그 거대한 타격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광활한 사운드스테이지? 이런 표현, 절대 함부로 써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넓이와 안길이는 물론 높낮이까지 제대로 구현된, 그야말로 초대형 UHD TV였다. 그 가상의 화면에 음상은 핀포인트로 맺혀 있었고, 음의 윤곽은 눈이 아릴 정도로 선명하고 또렷했다. 지구별 최강 하이엔드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FM어쿠스틱스(FM Acoustics)의 레코드 연주 현장은 이처럼 필자를 처음부터 압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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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기는 FM어쿠스틱스의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시리즈의 중간모델인 ‘XS-2B’ 스피커와 레졸루션(Resolution) 시리즈의 프리앰프 ‘FM 266mk2’, 하모닉 리니어라이저 ‘FM 233’, 파워앰프 ‘FM 711mk2’. FM어쿠스틱스의 인스피레이션 시리즈 스피커는 무조건 자사 레졸루션 시리즈 앰프와만 매칭되게끔 설계됐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 매칭이다. 어쨌든 이날 직접 플레이는 못했지만 포노앰프 ‘FM 222mk2’까지 포함시킬 경우 거의 6억원에 육박하는 초고가 하이엔드 시스템이다.
그런데 스피커와 파워앰프, 프리앰프와 파워앰프가 각각 어떻게 연결됐나 유심히 살펴보니 뭔가 이상했다. 기기간 연결 방식과 파워앰프 활용방식 등이 여느 오디오 제품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XS-2B’ 풀 시스템을 처음 봤을 때 필자가 당황했던 몇가지는 이렇다.
1) 스피커 뒷면에 통상 쌍으로 있는 바인딩 포스트 대신 단 한 개의 인터커넥터 체결단자만이 있다.
2) 이 체결단자에는 파워앰프에서 나온 스피커케이블이 아니라 작은 외장 크로스오버에서 나온 굵은 케이블이 연결돼 있다.
3) 일종의 음악신호 보정 시스템인 하모닉 리니어라이저에서 나온 XLR 인터케이블이 파워앰프가 아니라 외장 크로스오버로 들어간다.
4) 두 덩이 파워앰프 구성인데도 각 파워앰프의 스피커 출력단자는 2조다. 즉 스테레오 파워앰프를 2대 동원한 것이다.
5) 이 파워앰프에서 나온 2조의 스피커케이블은 스피커가 아니라 외장 크로스오버에 연결돼 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본격 시청이 이뤄지기 전 1시간 동안이나 이 케이블 저 케이블을 당겨보고, 인터넷을 뒤적인 끝에야 이번 시스템의 케이블 및 기기간 연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XS-2B’ 풀 시스템은 한마디로 ‘외장 크로스오버와 스테레오 파워앰프를 통한 바이앰핑’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1) 프리앰프 ‘FM 266mk2’에서 좌우채널 음악신호(빨간색이 오른쪽 채널)가 XLR 인터케이블을 타고 하모닉 리니어라이저 ‘FM 233’으로 들어간다.
2) 하모닉 리니어라이저 ‘FM 233’은 오른쪽 채널 음악신호는 단자 끝에 빨간 띠를 두른 인터케이블을 통해 오른쪽 외장 크로스오버로, 왼쪽 채널 음악신호는 검은 띠를 두른 인터케이블을 통해 왼쪽 외장 크로스오버로 들어간다.
3) 외장 크로스오버는 파워앰프 ‘FM 711mk2’에 두 신호를 보내는데 이때부터는 당연히 좌우 채널 구분이 아니다. ‘채널1 인풋’에는 저역대 주파수(Low)가 들어가고, ‘채널2 인풋’에는 중고역대 주파수(Mid/High) 음악신호가 나뉘어 들어간다.
4) ‘FM 711mk2’는 이 두 주파수를 각각 증폭해 역시 ‘채널1 아웃풋’을 통해서는 저역대 증폭 신호를, ‘채널2 아웃풋’을 통해서는 중고역대 증폭신호를 ‘포스라인’(Forceline)이라는 전용 스피커케이블을 통해 외장 크로스오버로 보내준다.
5) 이 2개의 저역대, 중고역대 증폭신호는 외장 크로스오버와 전용 멀티코어(Multi-core) 케이블을 거쳐 스피커 각 유닛들을 바이앰핑한다.
FM어쿠스틱스는...
도대체 FM어쿠스틱스는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복잡하게 시스템 구성을 짠 것일까. 또 왜 인스피레이션 스피커는 자사 레졸루션 시리즈 앰프와만 매칭이 되게끔 설계를 한 것일까. 그리고 가격은 왜 그리 비싼 것이며, 재생 사운드는 왜 이처럼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생생했던 것일까. FM어쿠스틱스의 설립 과정과 설계 철학, 제작 공정, 그리고 설립자 마누엘 후버(Manuel Huber)의 이력을 필자가 여느 리뷰 때보다 더욱 꼼꼼히 살펴보게 된 이유다.
FM어쿠스틱스는 마누엘 후버(Manuel Huber)가 1973년에 설립했다. 사명은 ‘For Music and Acoustics’의 줄임말이다. 마누엘 후버는 할아버지가 스위스의 유명한 테너, 아버지가 피아니스트라 어렸을 때부터 많은 음악을 접했다. 특히 콘서트장을 자주 다녔는데, 콘서트의 감동을 받고 이를 재현하기 위해 직접 앰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가 불과 14세 때였다. 이후 스튜디오에서 PA 시스템 제작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본격적인 오디오 공부를 시작했고, 하이파이 앰프를 만들면서 회로 보호 시스템까지 착안하게 됐다.
FM어쿠스틱스 초창기에는 주로 스튜디오용 앰프만 제작했다. 랙에 들어가도록 제작된 검은색 앰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해상력과 디테일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 런던, 뉴욕, 내슈빌, LA 등 스튜디오에서 FM어쿠스틱스 앰프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도 일본 도쿄의 NHK와 워너-파이오니어, 프랑스 몽트뢰의 마운틴 스튜디오, 미국 내슈빌의 사운드 스테이지 스튜디오, 러시아 모스크바의 멜로디아 같은 유명 스튜디오에서 FM어쿠스틱스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 들어 스튜디오용 앰프를 집에서도 쓰고 싶다는 요청이 특히 미국쪽에서부터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에서 사용하려면 실내장식과도 어울려야 하고, 특히 부인들이 보아도 만족할 수 있도록 예쁜 디자인이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1989년에 탄생한 것이 샴페인 골드 색상의 홈용 레졸루션(Resolution) 시리즈 앰프다. 레이 찰스, 롤링 스톤즈, 스팅, U2, 올리비아 뉴튼-존, 레너드 번스타인, 예후디 메뉴힌, 허비 행콕, 키스 자렛, 마일즈 데이비스 같은 유명 아티스트와 지휘자들이 FM어쿠스틱스 제품을 썼거나 사용중이다.
설계철학 1. 모든 제품은 마누엘 후버가 직접 귀로 듣고 튜닝한다
FM어쿠스틱스는 마누엘 후버가 모든 제품을 일일이 귀로 직접 듣고 튜닝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스튜디오용 앰프를 만들던 1975년 무렵, 마누엘 후버의 음악 하는 친구가 자기네 스튜디오에 있는 앰프가 고장났다며 고쳐달라고 부탁했다. 마침 스페어 부품이 없어 자신이 만든 앰프를 빌려주고 일주일이 흘렀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앰프 소리가 너무 좋아 절대 돌려줄 수 없다”고 하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은 곧바로 두 앰프를 비교 청취했다. 마누엘 후버가 만든 앰프의 소리가 월등히 좋았는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측정치는 두 앰프가 똑같았다는 것. 이때부터 마누엘 후버는 기계적인 스펙으로는 똑같지만 내어주는 소리가 다르다는 것에 주안점을 갖고 지속적인 연구를 했다. 측정장비는 단순한 시그널로 측정을 하기 때문에 복잡한 음악을 연주해야 하는 앰프는 결코 측정기로는 측정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고, 그 이후 FM어쿠스틱스의 모든 제품은 마누엘 후버가 직접 귀로 들으면서 튜닝을 해오고 있다.
그러면 올해 71세인 마누엘 후버에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 걸까. FM어쿠스틱스 국내 수입사인 오디오갤러리의 나상준 대표가 이를 염려하자 마누엘 후버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가 장수집안이라 걱정 안해도 된다. 아버지가 110세에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109세인데 아직 정정하시다. 그래도 혹시 몰라 딸에게 튜닝과 관련된 교육을 시키고 있다. 현재는 딸이 유닛을 귀로 듣고 선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설계철학 2. 풀시스템을 써야 하는 이유 = 좌우 밸런스 & 룸 어쿠스틱스
FM어쿠스틱스의 스피커와 앰프는 모두 철저하게 완벽한 좌우 밸런스를 추구한다. 좌우가 완벽히 밸런스가 맞아야 포커싱, 이미징, 사운드스테이징 모든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원음의 완벽한 재생을 위해서다. 연주회장이나 녹음 스튜디오에서 나는 아주 작은 소리, 예를 들어 연주자의 옷깃이 스치는 소리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재생하는 것이 FM어쿠스틱스의 목표다.
이같은 좌우 밸런스를 위해 제품 제작시 부품 선별과 모듈 제작에 공이 많이 들어가며 그 과정에서 불량품도 엄청 나온다. 정해진 스펙대로 만든 것들이 아니면 모두 처분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제품 가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스펙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비셰이(Vishay) 저항은 일반 저항보다 100배 정도 비싼데, FM어쿠스틱스에서는 이 비셰이 저항을 대량 구매해서 또다시 선별하는 과정을 거친다. 스피커 인클로저도 마찬가지. 통마다 소리가 차이가 나기 마련인데, 그 소리의 좌우 밸런스가 안맞는 인클로저는 무조건 폐기 처분한다.
이런 좌우 밸런스 개념은 단지 제품 제작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FM어쿠스틱스에서는 실제 유저가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할 때도 시청공간에 따라 좌우 밸런스를 최우선시해 세팅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는 결국 룸 어쿠스틱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집마다 시청환경이 전부 다 다르고, 좌우 공간이 비대칭인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또한 프리앰프부터 파워앰프, 스피커(+외장 크로스오버)까지 모든 기기를 FM어쿠스틱스 풀(full) 시스템으로 구성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좌우 밸런스가 완벽히 맞는 기기는 자사 제품밖에 없으며, 룸 어쿠스틱스에 이처럼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음의 입구인 프리앰프부터 출구인 스피커까지 전부 자사 제품이어야 한다는 것. 단지 기기간 임피던스 매칭이나 위상 일치만을 위해 ‘원(one) 브랜드’를 추천하는 여느 제작사와는 완전 다른 개념의 ‘풀 시스템’인 셈이다.
설계철학 3. 모노+모노보다는 스테레오가 유리하다
이번 시청에 동원된 2대의 파워앰프는 모노+모노 구성이 아니다. 스테레오 앰프를 2대 동원해 한 대가 한 스피커를 철저하게 바이앰핑(저역+중고역)하는 구조다. 이와 관련한 마누엘 후버의 생각을 들어보자.
“‘모노+모노’보다는 스트레오가 더 유리하다. 예를 들어 100의 용량을 가진 앰프라면 경우에 따라 왼쪽이나 오른쪽 채널에 더 큰 음성신호가 들어올 수가 있다. 스테레오 앰프라면 이럴 경우 30 대 70, 혹은 20 대 80, 이런 식으로 한쪽 채널에 더 큰 힘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모노+모노 구성이라면 이미 50 대 50으로 나눠놨으니 어느 한쪽도 50 이상의 힘을 낼 수 없게 된다.”
라인 스테이지 프리앰프 FM 266mk2의 설계디자인
이제 본격적으로 개별 기기를 살펴보자. 우선 외장 크로스오버를 제외하면 FM어쿠스틱스의 프리앰프, 하모닉 리니어라이저, 파워앰프 모두 노브와 스위치까지 ‘황금빛’을 두른 패밀리 룩이다. 인스피레이션 시리즈의 스피커들도 같은 계열이라 할 유광 샴페인 골드다. 고급스러운 외모뿐만이 아니다. 섀시 자체도 항공등급의 알루미늄을 일일이 레이저로 절삭해 손으로 광택을 냈으며, 음각으로 새긴 글자와 눈금 모두 시인성과 내구성을 위해 아노다이징 처리했다. 역시 ‘메이드 인 스위스’답다.
‘FM 266mk2’를 통상의 프리앰프 기준 스펙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입출력단에 모듈형 증폭회로를 탑재한 클래스A 퓨어 밸런스 노피드백 프리앰프’. 입출력단자는 따라서 모두 XLR 단자를 채용한 밸런스 단자다. 입력단자는 6조(+테이프 1조), 출력단자는 1조다. 입력 임피던스는 50k옴, 게인은 20dB, 주파수응답특성은 20Hz~20kHz(+,- 0.03dB), 라이즈 타임은 300 ns, 소비전력은 16W. 유저와 인터페이스가 이뤄지는 프론트 패널에는 입력선택 버튼, 위상반전 버튼, 밸런스 노브, 아웃풋 레벨 노브, 파워스위치 등이 마련돼 있다.
즉, 가청주파수 대역에서 음압이 거의 플랫한 특성을 보인다는 것과, 입력신호에 대한 앰프의 초기 반응시간이 1천만분의 3초에 불과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느 프리앰프와 아주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밸런스 입출력만 된다는 것, 회로 기밀 유지와 손쉬운 업그레이드, 쉴드와 항온 효과를 위해 모듈형 증폭회로를 채용한 점도 그리 유난스러운 스펙은 아니다.
그러나 역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필자는 FM어쿠스틱스의 거의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까다로운 부품 선별과 치밀한 내부 설계 디자인에 몇번이나 혀를 내둘렀다. 이게 다 앰프의 내구성과 저잡음, 저왜곡, 저크로스토크를 위한 것이다. 필자가 이해한 몇가지만 소개하면 이렇다.
우선 ‘mk2’ 버전이 되면서 어테뉴에이터를 대폭 손을 봤다. 다들 아시겠지만, 요즘 소스기기들의 출력전압은 기본이 2V이고 심지어 7V까지 뿜어내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프리앰프 볼륨을 조금만 올려도 소리가 빵빵 터져나오니까 왠지 파워앰프의 성능이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지만, 이런 상황만큼 곤란한 경우도 없다. 특히 심야에 적은 볼륨으로 제대로 음악감상을 하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이 경우에는 프리앰프 자체의 게인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FM 266mk2’는 이처럼 프리앰프가 기껏해야 소스기기의 출력전압을 줄여주는 ‘감쇄기’로 격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원 음악신호는 전혀 건들지 않고 입력전압만 낮추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레벨 컨트롤 노브(볼륨)의 위치가 낮12시 방향에 있어도(있어야만!) 최적의 음량을 확보할 수 있다.
입출력단에 설치한 ‘HR 모듈’도 크게 개선했다. 입력단의 경우 ‘mk2’ 버전이 되면서 ‘19610’ 모듈을 장착했는데, 이를 통해 입력신호와 함께 유입되는 험이나 노이즈를 뜻하는 ‘커먼 모드 시그널’(Common Mode signals)을 대폭 줄였다고 한다. FM어쿠스틱스가 밝힌 이 ‘CMRR’(Common Mode Rejection Ratio) 수치는 무려 100dB. 신호에 섞여들어오는 노이즈가 10만분의 1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FM어쿠스틱스 재생 사운드의 큰 특징인 ‘해상력’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기술적 팩트다. 또한 ‘19610’ 모듈은 프리앰프로 들어오는 언밸런스 신호나 ‘가짜’ 밸런스 신호를 그 자리에서 ‘진짜’ 밸런스 신호로 바꿔주는 역할까지 한다.
출력단의 경우 ‘19200’ HR모듈이 장착돼 ‘진짜’ 밸런스 출력을 뽑아낸다. 밸런스 회로 원리상, 앞단에서 완벽하게 위아래 대칭을 이루는 정위상과 역위상 신호를 정확히 뽑아내줘야, 뒷단에서 노이즈가 ‘제로’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이렇게 입출력단 모듈이 각각 완벽히 밸런스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으니 FM어쿠스틱스가 자사 프리앰프를 ‘세계에서 유일한 밸런스 프리앰프’라 강조하는 것도 그리 지나친 말은 아니다. 이밖에 전주파수 대역에서 고조파왜곡이 0.003%에 그치고 있는 점, 어테뉴에이터(아웃풋 레벨 컨트롤)가 0.02dB 스텝으로 작동한다는 점, 부하로드에 상관없이 즉, 어떤 파워앰프나 아무리 긴 인터케이블이라도 드라이브할 수 있다는 점, 미리 200시간의 번인 타임을 거친 후 제품을 출시하는 점 등이 개인적으로 눈길을 끈다.
하모닉 리니어라이저 FM 233의 설계디자인
하모닉 리니어라이저 ‘FM 233’은 이미 시연회나 유저들의 입소문을 통해 그 ‘매직’이 잘 알려져있다. 기존 ‘평범한’ 또는 ‘소위’ 이퀼라이저와는 개념 자체가 다른 주파수 대역 조절기다. 원 음악신호는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미세하게 5개 주파수 대역을 조절해 심지어 녹음이 신통치 않은 음원까지 듣기 좋게 들려주는 것. LP 애호가들에게는 더욱 뜨거운 선망의 대상이다. ‘RIAA’(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 미국레코드산업협회) 커브 이전 시대의 녹음들은 각 음반사마다 각기 다른 주파수로 녹음이 됐는데, 이러한 LP를 각 주파수에 맞도록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심하게 스크래치가 난 LP마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재생할 수 있는 ‘스크래치 보정기능’까지 갖췄으니 시연회 때마다 환호가 터져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전면 패널에는 단지 5개의 주파수 대역 조절 노브가 달려있을 뿐이다. 50Hz, 200Hz, 800Hz, 3.2kHz, 12.8kHz 주파수를 각각 12레벨로 조절할 수 있다. 즉 노브 눈금이 가운데 ‘0’에 있으면 50Hz 주파수를 그대로 통과시킨다는 것이고, 왼쪽으로 돌리면 예를 들어 40Hz, 오른쪽으로 돌리면 60Hz로 낮추거나 높일 수 있다. ‘FM 233’이 놀라운 것은 한 개의 노브 조절이 원 음악신호는 물론 다른 노브의 주파수 영역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 여기에 바로 ‘FM 233’의 놀라운 기술력과 ‘매직’이 숨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독립적인 주파수 조절 기능은 유저로 하여금 마치 엔지니어처럼 더욱 꼼꼼하게 ‘FM 233’을 대해야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시행착오와 이를 통한 숙련된 노하우가 있어야만 5개 노브의 복합적인 조절을 통해 보다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리니어라이징’이 가능하기 때문. 그러나 필자 개인적으로는 ‘FM 233’의 이같은 면모야말로 그만큼 오디오파일의 취미성을 자극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맞다. 필자는 ‘FM 233’에게서 일종의 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의 결기를 느낀다. 원래 오디오라는 게 음원에 담긴 소스 수준을 그대로 아니면 열화시켜 재생하기 마련인데, ‘FM 233’은 이 ‘난공불락’으로만 여겨왔던 음원소스에다 예리한 칼날을 들이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원 음악신호에는 전혀 손상을 안주면서 녹음 당시에 끼어든 노이즈나 거슬리는 사운드, 공명음, 착색 등을 말끔히 제거할 수 있다니! 만약 유저가 이 ‘FM 233’을 적극 활용한다면 세상에 둘도 없는 자신만의 ‘마스터 음원’을 소유하는 셈이 된다.
한편 ‘FM 233’은 주파수 리니어라이저 기기 특성상 ‘게인’이 없다. 때문에 이번 시청 때처럼 프리앰프와 외장 크로스오버 사이에 놓아도 되고, 프리앰프에만 연결해도 된다. 이밖에 리니어리티를 높이기 위해 OP앰프나 IC 등을 쓰지 않은 디스크리트 설계의 클래스A로 작동하는 점, 부하 임피던스에 영향을 받지 않아 인터케이블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 해상도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퓨어 밸런스 입출력 설계라는 점 등은 프리앰프 ‘FM 266mk2’와 비슷하다.
파워앰프 FM 711mk2의 설계디자인
이번 시청에는 처음 언급한 대로 2채널 스테레오 파워앰프인 ‘FM 711mk2’가 2대 동원돼 각 앰프의 라이트, 레프트 출력단이 각각 스피커의 저역대와 중고역대를 바이앰핑했다. ‘FM 711’은 원래 일본에만 공급된 모델이었지만 2008년 독점 계약이 끝나면서 다음해인 2009년부터 ‘mk2’ 꼬리표를 달고 다른 나라에도 출시가 됐다. ‘mk2’ 버전에는 ‘FM 411mk2’나 ‘FM 1811’ 같은 파워앰프에 투입된 신기술이 적용됐다. 정전용량을 늘렸고, 새 HR 모듈을 장착했으며, 레벨 컨트롤 내부 부품을 고급화해 내구성과 음질을 높였다고 한다.
좀더 살펴보자. 퓨어 밸런스 파워앰프인 ‘FM 711mk2’도 평범하지가 않다. 일단 제작사가 이것저것 밝히고는 있지만, 파워앰프의 핵심이자 필자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살펴보는 정전용량 및 증폭/구동 방식은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일부 공개된 내부 사진을 통해 토로이달 트랜스포머가 완전 격벽처리된 앰프 하단 바닥면에 수납됐다는 점, 컨트롤 섹션에 모토롤라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페어로 썼다는 점 등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양 측면에 도열된 다수의 출력 트랜지스터에도 그냥 ‘FM 17420’이라고 씌어있을 뿐이다.
일단 스펙으로만 보면, 8옴에 260W, 4옴에 500W, 2옴에 800W라는 무지막지한 출력을 뽑아내는데, 심지어 스피커 임피던스가 1옴 이하로 떨어져도 구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게다가 이 출력이 클래스AB를 통해서가 아니라 FM어쿠스틱스 고유 설계의 ‘클래스A’ 증폭을 통해 얻은 결과라니 그냥 놀랄 따름이다. 뿐만 아니다. 연속 출력전류도 35A로 꽤 높은 편이지만, 최대 피크 출력전류는 ‘무한대’(Unlimited)라고 밝히고 있다. 입력단에 ‘HR 모듈’이 설치돼 커먼 모드 시그널을 100dB 수준으로 잡아낸 점은 프리앰프 ‘FM 266mk2’와 동일하다. 이밖에 게인은 30.5dB, 입력 임피던스는 40k옴, THD는 0.005%, SNR은 -110dB를 보이고 있다. 무게는 25kg.
다른 앰프에는 없는 것들도 많다. 앰프 뒷면에는 조그마한 ‘레벨 컨트롤’(Level Control) 노브가 달려있는데 룸어쿠스틱에서 매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거실처럼 한쪽 면이 뚫려있는 청취환경이라면, 그쪽 스피커와 연결된 파워앰프의 라인 레벨을 좀더 높임으로써(음악신호를 좀더 증폭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두 채널의 사운드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내구성도 대단하다. 36년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매일 10시간씩 1년에 365일 동안 썼을 때다. 그리고 A/S를 위한 예비부품 보관기간만 무조건 최소 10년이다. 과연 집 한 채값을 받고 오디오를 파는 제작사답다.
스피커 시스템 FM XS-2B의 설계디자인
이번 인스피레이션 시스템의 중추라 할 스피커 ‘XS-2B’는 사실 ‘단품’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전용 앰프가 있어야 하고, 그것도 자사의 레졸루션 시리즈 앰프(711mk2, 108, 1811)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외장 크로스오버와 전용 인터케이블, 전용 스피커 케이블까지 있어야 한다. ‘XS-2B’ 시스템으로 표현하는 게 맞다. 실제로 단품가 1억7800만원짜리 이 스피커 시스템에는 외장 크로스오버 2개를 비롯해 각종 전용 인터케이블과 스피커케이블, 멀티코어 케이블이 모두 포함된다.
‘XS-2B’는 이렇게 이번 시스템의 핵을 이루고 있지만, 내부 설계디자인은 가장 베일에 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70kg의 인클로저에 개별 튜닝된 유닛 8개가 투입됐으며, 주파수응답특성의 고역 상한이 28kHz라는 게 제작사가 밝힌 스펙의 전부다. 그릴도 못 여는 구조라 내부 유닛 배치마저 확인이 안된다. 웬만한 스피커는 내부 구조가 인터넷에 거의 공개되지만, 이 2억원 가까이 하는 스피커를 분해해 내부 사진을 공개할 정도로 간크고 돈많은 덕후는 아직까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XS-2B’의 설계디자인은 필자의 시청 테스트로 짐작하는 수밖에 없다.
시청
시청은 FM어쿠스틱스의 서울 청담동 쇼룸에서 했다. CDP는 골드문트의 ‘36T CDT’, DAC는 실바톤 어쿠스틱스의 ‘DA100’. 프리앰프와는 물론 밸런스 연결이다. 프리앰프 볼륨은 거의 10~11시 방향 전후에서 이뤄졌다. 엄청나게 잘못 녹음된 CD나 스크래치가 난 LP가 없었으므로 전가의 보도라 할 ‘FM 233’의 모든 리니어라이저 노브는 ‘0’에 위치시켰다.
레너드 번스타인, 뉴욕필 ‘말러 교향곡 제2번 1악장’(DG 앨범) = 작정하고 대편성곡부터 들었다. 처음 나오는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일궈내는 저역의 굵기와 사운드스테이징이 차원이 다르다. 현의 긴장감과 울림, 각 악기간 원근감은 수없이 들었던 이 곡의 재생 중 그야말로 역대급이다. 투티 때는 음들이 깡패처럼 폭주하다가도, 바이올린의 피아니시모 파트에서는 여린 음들이 마치 순한 양처럼 아장아장 뛰논다. 파워앰프의 드라이빙 능력, 스피커의 대역밸런스, 전체 시스템의 높은 신호대잡음비(SNR)가 동시에 받쳐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기본적으로 음수가 많아 풍성하고 풍윤하게 들린다. 고역은 샤우팅이나 쏘는 느낌이 전혀 없고, 저역은 바닥에 납작 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묵직하니 에너지감이 넘쳐난다. 투명하면서도 묘하게 빈티지스러운 음이다.
야노스 슈타커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1번 1악장’(Mercury 앨범) = 헉. 필자도 모르게 낮은 탄성부터 나왔다. 시청실 정면 벽 정중앙에 첼로가 실물 사이즈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듯한 이 실체감, 실제 연주 현장에서만 느껴지는 첼로의 이 둔중한 쇳소리. 오로지 첼로 음만 들리는 곡이라 재생 수준을 판가름하기에는 오히려 적합하다. 대역의 밸런스, 좌우의 밸런스가 거의 완벽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포커싱과, 핀 포인트로 맺히는 이미징이 그 증좌다. 코로 숨쉬는 게 분명한 슈타커의 거친 호흡과, 마른 하늘에 내리치는 벼락처럼 날카로운 손과 현의 마찰음이 생생히 포착된다. 그만큼 DAC과 프리앰프의 분해능이 놀랍다. 나상준 대표에 따르면 ‘XS-2B’ 유닛은 스캔스픽, 인클로저는 MDF라는데 어떻게 이런 경지의 사운드가 나오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쳇 앳킨스 ‘Up In My Treehouse’(Sails 앨범) = 기타와 퍼커션의 앞뒤거리가 이렇게 멀었었나 싶다. 그만큼 원근감이 장난이 아니다. 저역 사운드도 그냥 단 한번 치고 빠지는 것이 아니라, 힘있는 연타가 일시에 동시다발로 터져나오는 그런 펀치감이다. 음이 아니라 압력으로 필자의 심장을 저격한다. 적막감, 드넓은 스테이지, 포말처럼 부서지는 음, 무대 밑으로 음들을 밀어내는 실력은 계속된다. 특히 차임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르릉’ 훑고 지나가는 대목에서는 마치 예리한 칼날이 사방으로 검기 혹은 검강을 흩뿌리는 것 같다. 눈이 부실 정도다. 맞다. 지금 이 시청실에 음들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악기들이 바로 필자 코 앞까지 전진해서 연주를 하고 있다. 스피커가 사라졌다? 이 정도 표현으로는 왠지 성에 안찬다. 그냥 숲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살로스 산토 도밍고 베네딕트 수도원 합창단 ‘그레고리안 성가 중 Puer Natus Est Nobis’(EMI 앨범) = 듣자마자 그냥 1973년 이들이 도열해 있는 스페인의 한 성당으로 풍경이 바뀌었다. 시청실을 가득 메우는 이 풍성하고 실키하며 리퀴드한 남성합창단의 중저역 목소리는 이미 지상의 것이 아니다. 녹음된 성당의 홀톤과 합창단원들의 들숨까지 생생하게 잡아낸 덕분이다. 더욱 세밀히 들어보면, 이들이 지금 깊게 숨을 들이마신 상태에서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흉성으로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관찰된다. 그만큼 이들의 앞뒤, 위아래 도열 위치와 발성, 입모양, 기척 하나하나를 마치 세밀화처럼 정확히 그려주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또 하나 놀란 것은 이 곡 녹음 당시에 낀 노이즈를 아주 무참히 까발리고 있다는 것. 이 곡에 이렇게 노이즈가 많았던 사실은 이날 처음 알았다.
총평
필자가 지금도 틈날 때마다 꺼내놓고 바이블처럼 읽는 책이 있다. 김영섭 교수가 쓴 ‘오디오의 유산’(한길사 발행)이다. 2008년에 나온 책인데, 김 교수는 ‘FM 266’에 대해 이렇게 썼다. “1991년에 나온 ‘FM 266’의 당시 출시가격은 3만달러 대를 상회하였다. 가격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FM어쿠스틱스 앰프군은 프리와 파워 그리고 포노앰프 모두를 갖추고 싶은 유일한 라인업 대상이 되는 메이커이다.” 파워앰프(FM 115)에 대해서는 “TR앰프를 가지고도 진공관만큼, 아니 어느 장르에서는 진공관보다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김 교수처럼 필자에게도 이번 시청기들은 각별하다. 무엇보다 한 오디오 시스템이 빚어낼 수 있는 ‘사운드 스테이지’와 ‘홀로그래픽 이미지’ 그리고 ‘극도의 해상력’이 진정 무엇인지, 그 기준점을 잡아줬다. 시청 당시의 흥분을 그대로 전해본다면, 한 곡 한 곡이 모두 ‘역대급 재생’이었다. 그러면서 FM어쿠스틱스라는 제작사도 달리 보게 됐다. 일부 부자만을 위한 값비싼 오디오가 아니라, 반평생을 믿고 지낼 수 있는 고급 집 한 채를 지어주는 설계/시공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30년 이상 쓸 수 있는 내구성과 각종 안전장치, 모든 부품들의 개별 검수 및 A/S를 위한 최소 10년 보관, 밸런스 입출력에 대한 집요한 집착과 이를 통한 노이즈 제거. FM어쿠스틱스 제품의 이 모든 특징은 결국 보통 사람들이 잘 지은 ‘집’에 대해 기대하는 가치와 덕목이 아닌가.
‘XS-2B’ ‘FM 266mk2’ ‘FM 233’ ‘FM 711mk2’, 이런 FM어쿠스틱스 풀 시스템을 앞으로 소유하고 즐기게 될 애호가들이 벌써부터 부럽다.
XS-2 B
FM 711MK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