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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프까지 품고 새롭게 도약하다.
글 & 사진 : 이종학
오디오에서 아무래도 제일 중요시되는 항목이 저역이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저역을 통제하느냐는, 역으로 얼마나 오디오를 구사하는 내공이 쌓였느냐 하는 질문과도 통한다. 다시 말해, 능숙한 오디오파일일 수록, 스피커에서 저역을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방법을 깨우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우퍼의 구경이 크면, 저역이 깊게, 잘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옛날 스피커를 보면 15인치도 모자라서 18인치 구경도 동원하고 있다. 요즘은 이런 방식을 잘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경이 클 수록, 반응이 늦고,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신 구경이 작은 유닛을 두 개 이상 써서 스피드와 양감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식이 요즘의 추세다. 이번에 만난 베리티 오디오(Verity Audio) 역시 이 부분에 혁신적인 노하우를 갖고 있다.
사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저역이 문제시된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비좁은 환경에서 어렵게 오디오를 구사하다보니, 늘 저역에 불만이 생겼던 것이다. 좀 크게 틀면 속이 시원하긴 한데 이웃집에 민폐를 끼치게 되고, 그렇다고 모기 소리로 맨날 들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구경이 좀 큰 우퍼를 쓰면, 스피드가 느려져서 중고역과 따로 노는 현상도 발견되었다. 자나깨나 저역, 저역 중얼거릴 지경이었다.
그런 면에서 베리티가 추구한 저역의 음은 스피디하면서 정교하고 또 이웃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라이브 연주에 가까운 저역이 아닐까 싶다.
처음 베리티의 파르지팔을 만났을 때, 그 작은 사이즈에 놀랐다. 과연 여기서 어떤 저역이 나올까 여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앰프를 제대로 물려주기만 하면, 어지간한 대형기 못지 않은 베이스가 나왔다. 게다가 빼어난 음장감이라니! 심지어 뒷벽에서 앞으로 끄집어 내면 낼 수록, 깊은 안길이가 재현되었다. 이 부분도 무척이나 신기했다. 그게 벌써 15년 전의 일이니, 정말로 이 회사는 시대를 한참 앞서간 셈이다.
그 과정에서 차츰 중역의 밀도감이나 정보량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동사는 일관되게 스카닝의 드라이버를 채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내입력이 높고,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제소리를 내주는 스카닝은, 특히 미드레인지가 중독성이 높다. 일단 이 음에 적응하게 되면, 다른 드라이버는 시시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타사의 스피커를 들어보면, 분명 같은 스카닝을 썼는데도 좀 스피드가 느린 느낌을 줬다. 특히, 아큐톤 계열의 쌩쌩 터지는 음을 듣고 나면, 이쪽은 약간 올드한 소리라는 판단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베리티로 말하면, 그런 면이 전혀 없다. 고역과 스피드 면에서 전혀 부족함이 없고, 다양한 음성 소스에 빠르게 대응한다. 그러면서 풍부한 질감을 자랑한다. 와우,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러다 조금씩 스피커를 알게 되고, 동사의 제품들이 폭이 좁으면서 안길이가 깊고, 두 발의 우퍼를 주로 채용한다는 점이 나중에 얼마나 많은 메이커에게 영향을 줬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만일 내가 스피커 디자인을 한다면, 단연콘 베리티의 제품 컨셉에서 많은 부분을 카피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게 있어서 베리티의 제품은 단순한 스피커가 아니라, 현대 스피커 전체의 컨셉을 되새기게 만드는 일종의 교과서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베리티의 제품을 만날 일이 없었다. 그간 숱한 인터뷰를 했지만 늘 베리티는 빠져있었고, 신제품 리뷰조차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해외 오디오 쇼나 애호가 탐방 시 꼭 베리티의 제품은 들어왔다. 그러다 이번 뮌헨 하이엔드 쇼에서 정식으로 인터뷰 요청이 왔으므로, 쾌히 승낙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잘 알겠지만, 베리티는 두 명의 설립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사장은 브루노 부샤르이고, 부사장은 줄리앙 펠새트이다. 두 분 다 안면이 있다. 단,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지 않아, 서로 만나면 약간 데면데면한 편이다. 그러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다고나 할까?
사실 뮌헨의 오디오 쇼는, 일종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수많은 메이커가 서로 잘났다고(?) 경쟁적으로 음을 틀어대고, 숱한 저널과 애호가들이 끊임없이 방문한다. 그 중간중간에 수입상들과의 만남도 있다. 또 인터뷰도 해야 하고, 시청회도 진행해야 한다. 전시자나 평론가나 모두 바쁜 것이다.
따라서 사전 약속 없이 불쑥 부스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자고 하면, 이것은 상당한 결례에 속한다. 거의 1시간 혹은 30분 단위를 쪼개가며 여러 일정을 소화해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갑자기 나타나서 시간을 내달라는 것은 거의 불청객(?)이나 다름이 없다.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일단 조심해서 베리티 오디오의 부스를 찾았다. 다행히 앰프라던가 수입상 모두 아는 얼굴이어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마침 부사장인 줄리앙 펠새트씨가 시청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잠시 기회를 봐서 인사를 나누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데 마치 기적처럼, 한국의 수입상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쾌히 인터뷰 요청을 승낙했다. 이 부분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일구무언. 그리고는 시청회의 바톤을 함께 부스를 진행하는 앰프 메이커에게 넘기고 따로 시간을 내줬다. 이런저런 인터뷰와 약속이 많은 내게, 이런 호의는 정말로 잊을 수가 없다. 본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참고로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마침 시연중인 새 모델 오텔로(Otello)지만, 이와 덧붙여 베리티 오디오에서 처음으로 만든 앰프라던가 여러 뉴스가 아울러 포함되어 있다. 동사의 최근 동향을 알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인터뷰어의 이름을 따서 JP 약자로 표기하겠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부스엔 되도록 큰 스피커를 갖다 놓으려고 하는데, 여기는 작은 모델을 준비해서 재미있군요. 오텔로인가요? 어떤 부분에서 개량이 이뤄졌는지 궁금합니다.
JP : 맞습니다. 여러 부분에서 개량을 했습니다. 드라이버도 바뀌고, 크로스오버도 새로 조정하고, 타임 얼라인먼트도 보다 정교하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우퍼부터 설명하죠. 감도를 높이는데 주력했습니다. 그 결과 16오옴짜리가 되었습니다. 이 경우, 구동이 무척 용이해지죠. 3극관 싱글 앰프도 매칭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시어스 사 제품입니다. 참고로 이전 우퍼는 8오옴짜리였습니다.
-그렇군요. 특히, 진공관 앰프 애호가들에게 좋은 뉴스가 될 것같습니다.
JP : 우퍼가 바뀐 만큼, 당연히 크로스오버도 손을 봤습니다. 역시 새 우퍼가 쓰인 만큼, 거기에 적합한 조정이 필요한 것이죠. 또 타임 얼라인먼트 부분의 경우, 트위터의 로 프리퀀시 부분을 좀 높였습니다. 그 결과 5.5KHz 부분에서 미드레인지와 만나게 됩니다.
-통상 2.5 내지는 3KHz에서 끊는데, 5.5KHz로 높인 이유는 뭔가요?
JP : 인간의 귀를 연구해보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통상 800Hz~3KHz 사이에 무척 민감합니다. 다시 말해, 이 대역 안에서 크로스오버가 있으면, 잠재적으로 불편하게 느낍니다. 뭔가 매끈하게 이어진다는 느낌이 없죠. 바로 이 점에 착안해서, 저희 제품은 이 대역에 일체 손질을 가하지 않습니다.
-트위터도 바뀌었나요? 이 부분도 궁금합니다.
JP : 네. SB 어쿠스틱 제품을 채용했습니다. 이 회사는 전에 스캔스픽에서 일한 분이 독립해서 만든 겁니다. 당연히 저희가 요구하는 사항에 맞춰 제작해줬습니다. 1인치 구경의 실크 돔 타입입니다.
-미드레인지는 당연히 스카닝이겠죠? 한데 베리티 오디오에 쓰인 드라이버는 타사 제품과 좀 다르다는 생각을 쭉 해왔습니다. 그게 사실인가요?
JP : 맞습니다. 저희는 진동판은 그대로 쓰지만, 모터 메커니즘은 다르게 설계를 했습니다. 숏 코일과 롱 캡을 동원하되, 코일을 순동으로 썼습니다. 즉, 최대한 움직이는 부분을 가볍게 처리한 것이죠. 그 결과 리스폰스가 빠르고, 정확하면서 스카닝 특유의 질감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아하, 여기에 베리티만의 비법이 있는 것이군요. 그런데 하나의 메이커가 아닌, 여러 회사에서 드라이버를 조달받는데, 그 경우 음색이나 여러 면에서 통일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요?
JP :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두 저희가 요구하는 사양으로 특주하기 때문에, 어떤 회사든 저희가 각각의 드라이버에서 바라는 것을 정확히 지키고 있습니다. 음색이라는 점에서 산만하다거나 따로 논다거나 하는 일이 일체 없죠.
-이 공간이 꽤 큰 데도 구석구석 빠짐없이 음으로 채우는 데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한국에 입고가 되면, 제대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참, 여기 한쪽에 앰프가 보이는데, 베리티에서 만든 것인가요?
JP : 맞습니다. 프리 II와 앰프 60이라는 모델입니다.
-베리티는 쭉 스피커만 만들었는데, 갑자기 앰프를 만든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JP : 이 부분을 설명하려면, 우선 저희 회사의 플래그쉽 모델인 몬살바트(Monsalvat)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이것은 별도의 베이스 챔버를 갖춘 제품으로, 무려 15Hz까지 저역을 재생합니다. 한편 고역은 60KHz까지 올라갑니다. 저희가 꿈꿔왔던 제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무려 6 채널분의 파워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액티브 크로스오버도 만들어야 했고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가 되었군요.
JP : 그렇죠. 액티브 크로스오버의 경우, 욕심을 좀 냈습니다. 그 결과 아날로그와 디지털 입력이 가능하도록 설계했습니다. 그래서 디지털의 경우, 32/384 사양까지 커버합니다. HPA 프로세서를 써서 최상의 결과물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고생해서 만들다 보니 앰프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기화로 본격적인 제품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죠.
-그럼 프리앰프부터 소개해주시죠.
JP : 프리 II는 아날로그 인풋 2개, 디지털 인풋 5개가 가능합니다. 단, 액티브 크로스오버가 6개 채널분인 만큼, 여기서는 스테레오 사양으로 바꿨습니다.
-앰프 60은 어떤가요? 60이란 숫자가 의미하는 바도 궁금합니다.
JP : 60은 60W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제품 사이즈가 크지만, 출력은 8오옴에 60W를 냅니다. 그러나 어지간한 대형기는 모두 구동합니다. 참고로 이것은 스테레오 사양입니다. 무게는 무려 100Kg이나 하고, 엄청난 다이내믹스를 자랑합니다. 전원부를 최대한 크게 만들고, 일체 DC 커플링이 없으며, 캐패시터 또한 없습니다.
-흥미롭군요. 스피커 회사에서 앰프를 만드는 일이 사실 종종 있습니다. 단, 너무 드러내놓고 밝히지 않을 뿐이죠. 이제 베리티에서도 정식으로 앰프가 출시되었으니 앞으로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다른 제품들의 업그레이드 정보도 기대하겠습니다.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JP : 네. 감사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베리티에서 만든 앰프를 꼭 들어보고 싶었다. 아직 몬살바트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토록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노하우가 어느 정도일까 정말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또 이런 큰 산을 정복하게 되면, 메이커로서는 이전과 전혀 다른 시각과 경험도 얻게 된다. 오텔로를 필두로 향후 어떤 제품들이 어떤 식으로 진화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