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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컴 트루. 보다 우리곁에 가깝게.
글 & 사진 : 이종학
언제나 그렇듯, 이 부스엔 늘 관람객들로 가득차 있다. 입추의 여지가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니, 언제부터인지, 이 부스에 들리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은, 일종의 암묵적인 협약이 있는 듯하다. 아무튼 편안하게 자리를 잡기 위해선 상당 시간을 뒤에서 서성이며, 사람들 틈 사이로 음을 들어야 하니 말이다.
TAD라는 브랜드의 제품을 시연하는 이 룸은, 사실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이 찾는다. 비단 오디오뿐 아니라, 음악 애호가까지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긋한 연배의 시연자가 조곤조곤 음악에 대해 설명할 때엔, 어느 대학 강의실에 온 듯한 기분도 준다. 그러고 보면 매년 저 분을 만나서 항상 음악을 들었다. 갑자기 그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서, TAD의 대표에게 문의해봤다.
그 결과, 시연자의 이름은 프랑크 판 루벤해게(Frank van Leuvenhaege)이고, 벨지움에 거주하며, 오랜 기간 파이오니어와 TAD에서 일했다는 경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일종의 세일즈 맨인데, 저렇게 교수의 풍모가 우러나오는 것은 왜일까? 그런 면에서 유럽이라는 곳은, 여전히 내게 미스테리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TAD의 스피커를 비롯, 여러 제품을 눈여겨 보고 있는데, 이게 과연 나만의 관심일까 의문을 가질 때가 있었다. 그러다 몇 년전, 모 대기업의 음향 팀이 뮌헨 하이엔드 쇼를 참관한 적이 있었다. 멤버 각각이 자유롭게 이틀에 걸쳐, 거의 샅샅이 모든 부스를 훑었다. 그리고 사운드 면에서 톱 투에 드는 브랜드 중 하나로 TAD를 꼽았다. 그때서야 내가 혼자 착각한 게 아니구나, 안심(?)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TAD의 신제품이 항상 이전보다 더 작은 모델로 출시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독특한 마케팅이라 생각한다. 즉, 최대한의 기술력을 투입한 플래그쉽을 만든 후, 이것을 차차 축소시켜서 보다 현실적인 가격대의 제품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물론 많은 업체가 그런 전략을 택하긴 하지만, 출시 제품순은 들쑥날쑥하기 마련이다. 맨 하위 기종을 냈다가 갑자기 중간급 모델을 내는 식이다. 이게 오히려 더 자연스런 패턴이라 하겠다.
한데 TAD는 무슨 작심이라도 한 듯, 매년 보다 적은 사이즈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애호가와 TAD의 거리는 좁혀지고 있다. 이제 올해에 나온 마이크로 이볼루션 원(ME-1)을 계기로, 더 이상 TAD의 구매를 미룰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레퍼런스 시리즈로 TAD의 거대한 출사표를 던진 후, 이볼루션 시리즈가 뒤를 이은 것이다. 그 하이어라키를 살펴보면, 레퍼런스-컴팩트 레퍼런스-이볼루션-컴팩트 이볼루션 등으로 이어지다가 이번에 마이크로 이볼루션까지 나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총 다섯 개의 모델이 현재 런칭되었다고 보면 된다.
또 각각의 라인은 모두 ONE이라는 모델 명을 갖고 있다. 이게 나중에 업그레이드 되면서 MK II가 될 지 혹은 TWO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현재 레퍼런스 원 MK II가 나왔음), 아무튼 현재 총 5개의 제품이 출시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새 모델이 매년 공개된 것은 아니고, 일정한 텀을 두고 나왔기 때문에, 그 각각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였다고 판단해도 좋다. 아무튼 ME-1이 나옴에 따라, TAD가 이제 보편적인 오디오 애호가들에게도 얼마든지 권장할 수 있는 브랜드가 된 것은 사실이다.
거기에 TAD는 앰프와 소스기도 만든다. 즉, 완벽한 원 브랜드로서 기능도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하나의 통일성을 원하는 애호가들의 요구에도 잘 부합된다. 이제 차근차근 TAD라는 브랜드와 제품 라인업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우선 TAD의 의미다. 이것은 “Technical Audio Devices”의 약자로, 브랜드 명에서 일단 기술 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원래 TAD가 설립된 것은 1975년으로, 전직 JBL 엔지니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목표는 프로 오디오. 까다로운 스튜디오 엔지니어들과 PA쪽을 아우른다는 목표인데, 실제로 TAD에서 발표한 일련의 혼 타입 제품들은 널리 사랑받았다. 심지어 여기서 혼과 드라이버를 사다가 따로 조립해서 제품을 내놓은 회사도 꽤 될 정도다. 저 높은 감도와 무시무시한 해상도에 관해선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당시 최고의 스피커 엔지니어로 추앙받던 버드 로컨시가 TAD에 오면서 밝힌 출사표다. 그는 기본기에 충실한 기술을 중요시하며, 무엇보다 음질 개선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봤다. 어떤 하나의 이론이 세워지면 면밀하게 검증하고 또 정확한 실험을 통해 실증해야 한다. 철저하게 공학적인 어프로치를 전개해나간 것이다. 이런 바탕으로 드라이버부터 여러 요소를 체계적으로, 꼼꼼하게 연구해서 독자적인 스피커 이론을 정립한 것이다.
그 덕분에 베릴륨 트위커가 개발된 시기가 무려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타 업체는 전혀 꿈을 꾸지도 못한 상황에서 얻은 성과인 것이다. 이게 지금 오디오 업계에서 얼마나 큰 임팩트를 주는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
실제로 베릴륨 트위터를 제조하는 메이커는 손에 꼽을 정도다. 베릴륨이라는 아주 미세한 소자를 정밀하게 다뤄야만 얻을 수 있는데, 그 점에서 첨단 하이테크와도 통하는 바가 있다. 얇고, 강하면서 또 확산감이 좋다. 상당히 넓은 대역을 커버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정보량이 상당해서, 한번 듣고 나면 그 충격이 며칠 동안 지속될 정도.
TAD의 역사를 보면 베릴륨 트위터뿐 아니라, 여러 훌륭한 드라이버가 많이 생산되었다. 광대역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실현한 TD-4001이라던가, 미크론 단위의 입자를 정확하게 투입해서 퍼포먼스 능력을 극대화시킨 TL-1601a는 TAD를 논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TAD의 모체가 되는 파이오니어 회사만 놓고 봐도, 이런 기술 중심주의의 기류를 발견할 수 있다. 이 회사가 설립된 시기가 1937년이니, 벌써 80년의 연혁을 자랑한다. 그 당시에 이미 A-8이라는 전설적인 유닛을 개발한 바 있으며, 1950년대에는 싱글 콘 불멸의 명작이라 불리는 PE-8도 나왔다. 심지어 이 시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서 무지향성 혼 타입 4웨이 스피커를 런칭한 일도 있다. 그러다 보다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전문적인 음향 브랜드를 만든 것이 바로 TAD인 것이다.
어쨌든 활발한 기술적 성과를 이룬 TAD는 일찍이 미국에도 진출했다. 그 시기가 1979년이니, 당시 높은 기술력과 다양한 브랜드를 가진 미국에 단단히 한 방 먹인 꼴이 되었다. 지금도 TAD는 북미 지역에서 인기가 높은데, 이미 이 시절부터 쌓아올린 명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TAD를 논할 때, 한때 컨슈머 오디오 부문, 그것도 하이엔드에 특화된 익스클루시브(Exclusive)라는 브랜드를 빼놓을 수 없다. 1980~9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을 한 바, 오늘날 TAD의 컨슈머 부문(TAD는 지금도 프로페셔널 부문도 커버하고 있다)의 전신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익스클루시브 제품이 거의 소개된 바 없지만, 일본에서 하이엔드 오디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에 이 브랜드 역시 상당한 성과를 낸 적이 있다. 특히, 혼 타입 스피커인 2401과 2402는, 오로지 <스테레오 사운드>지의 사진만으로도 강력한 포스를 뿜어낸 바 있고, 기어코 배를 통해 일본에서 선적해오는 열혈 애호가마저 탄생할 정도가 되었다. 동시에 함께 발표한 앰프와 CDP 등도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익스쿨리시브가 혼 타입으로 유명했다면, 2000년대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TAD의 컨슈머 스피커들은 혼을 장착하지 않았다. 대신 베릴륨 트위터를 내세우고 있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따로 혼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직신성도 좋고, 대역도 넓으며, 서비스 에어리어도 방대하다. 즉, 그간 익스클루시브를 통해 쌓아올린 혼 타입에 대한 기술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만큼, 베릴륨은 유능한 소재인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할 것은, CST 드라이버. 여기서 CST는 “Coherence Source Transducer”의 약자로, 베릴륨 트위터를 가운데 둔 가운데, 미드레인지가 그 주변을 감싸는, TAD만의 독자적인 동축형 드라이버다. 이번에 만난 ME-1의 경우, 420Hz~60KHz를 이 CST 드라이버가 커버하고 있다.
그런데 레퍼런스 시리즈의 경우, 미드레인지도 베릴륨 소재다.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져 왔던 것을 과감하게 실현한 것이다. 이 베릴륨 미드레인지가 발표된 지 근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타사들은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TAD의 기술력이 어느 수준인지 충분히 설명하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어서 밑에 따로 우퍼를 뒀는데, 여기에 투입된 진동판을 동사는 MACC라 부른다. “Multi-Layered Aramid Composite Cone”의 약자다. 즉, 아라미드 소재를 중심으로 여러 소재를 직조하는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다. 컬러레이션을 극력 억제하면서, 내구성이 뛰어나고 동시에 풍부한 리니어리티를 자랑한다. 그 결과 ME-1은 그 작은 구경에도 불구하고 무려 36Hz까지 커버하고 있다.
사실 뮌헨 쇼 행사에서 많은 이들이 놀란 것은 어떻게 저렇게 작은 스피커에서 이토록 당당하고, 큰 음량이 가능한가다. 특히, 오케스트라의 경우 다양한 악기군들이 거의 손실없이 나오고, 팝에서 두툼하면서 펀치력이 뛰어난 킥 드럼이나 풍부한 베이스는 확실히 뭔가 홀린 듯한 느낌을 준다. 심하게 말하면 어디 한 구석에 서브우퍼를 따로 숨겨놓은 듯하다. 만일 이 음을 들을 경험이 있다면,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 장담한다.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매년 TAD의 시연회는 많은 시선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ME-1이 특히 주목을 받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 모델부터는 일반 애호가들도 큰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레퍼런스 원의 높은 퀄리티에 감탄해왔지만, 솔직히 손에 넣을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ME-1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행사 당시엔 레퍼런스 원 MK II와 ME-1이 교대로 시연되었는데, 당연히 후자의 시연 때 더 많은 관객이 몰렸다.
참고로 TAD는 익스클루시브 시절에 쌓아올린 앰프 및 CDP에 대한 노하우도 많다. 이 기술을 보다 발전시켜서 처음 런칭한 것이 600 시리즈다. 여기엔 프리, 파워 그리고 CDP가 포함된다.
단, 이 제품들은 레퍼런스 내지는 이볼루션 시리즈에 최적화된 기어인 만큼, ME-1에 붙이기엔 과한 면이 있다. 그래서 새롭게 M2500 MK II 파워, C-2000 프리 그리고 D-1000 MK II 등 보다 현실적인 가격대의 일렉트로닉스를 발표하고 있다. 당연히 시연장에서도 이들 제품들이 동원되었는데, 꽤 큰 사이즈의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석구석에 정확하게 음을 전달했다. 이 부분 또한 큰 주목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보면, ME-1으로 상징되는 TAD의 근황은, 보다 광범위한 애호가층을 대상으로 삼겠다는 야심이 숨어 있다. 특히 함께 매칭할 수 있는 일렉트로닉스를 발표했다는 것은, 꼭 플래그쉽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TAD 원 브랜드 하나로 전체 시스템을 꾸밀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ME-1을 비롯한 여러 제품은 타사의 앰프와 소스기를 걸어도 얼마든지 훌륭한 소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창업부터 남다른 기술 중심주의와 음질 지상주의를 생각하면, TAD 원 브랜드로 꾸미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 본다. 익스클루시브 시절에도 역시 원 브랜드를 제안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많은 오디오파일은 작은 공간에서 오디오를 구사하고 있다. 심지어 2평짜리 공간에서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므로 스피커가 작으면서도 대형기 못지 않은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는 것은, 그간 꿈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제품이다. 그런데 이게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드림 컴 트루. 이 점에서 ME-1이 업계에 몰고 올 파장이 대단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