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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D의 일렉트로닉스
D1000MK2라 명명된 본 기는 CD 및 SACD를 재생한다. 요즘 이런 패키지 미디어를 쓰는 분이 얼마나 되겠냐 싶겠지만, 역으로 양질의 디지털 디스크 플레이어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더구나 TAD는 파이오니어를 모회사로 두고 있고, 여기서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있어서, 회사 규모는 작지만 그 배경은 탄탄한 편이다.
다시 말해, 본 플레이어에 투입되는 메커니즘이 자사 개발품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픽업의 지속적인 공급이라는 메리트를 갖고 있다. 나중에 AS를 생각하면 이 부분은 대단한 메리트라 하겠다.
사실 TAD는 1978년부터 본격적인 스피커 드라이버 메이커로 출발했지만, 일렉트로닉스의 경우 역사가 좀 다르다. 바로 “익스클루시브”(Exclusive)라는 본격적인 하이엔드 전용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익스클루시브에서는 혼 타입 스피커가 생산되어, 나 역시 많은 관심을 가진 바 있지만, 그와 동시에 앰프, CDP 등도 생산했다. 특히, C7/M7의 높은 퀄리티는 1990년대 당시 일본 하이엔드 오디오가 전성기를 치달을 때 프리 및 파워 앰프 부문에서 하나의 피크를 이루기도 했다. 그런 기술적 내용을 고스란히 TAD로 이전시켰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TAD가 최초로 디지털 디스크 플레이어 D600을 출시한 것은 일렉트로닉스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동사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만든 덕분에 이것을 베이스로 해서 타 기기에 도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프리에 DAC를 담는 방향이 대표적이다. 또 그 주니어기인 D1000이 출시된 후, 이번에 후속기가 나왔다. 여러모로 D600의 높은 성과를 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니어기라고 하지만, 단품으로서 D1000 MK2가 갖고 있는 포스와 퍼포먼스에 대해선 일체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더욱 놀라운 것은, 기본적인 SMT나 부품 등은 파이오니어측에서 공급하지만, 실제로 조립 자체는 한 명의 여성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이 바로 신구 아야씨. 말 그대로 장인 중의 장인. 실제로 일본에서 정식으로 발행하는 “기술자격증”을 갖고 있는데, 이게 공식적인 장인 인증서인 셈이다.
이렇게 쓰면, 저 무거운 앰프를 어떻게 여자 혼자 힘으로 들고, 조립하냐, 반문할 법도 하다. 나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여기엔 적절한 공구가 투입되어 있다. 이 공구의 쓰임새가 워낙 광범위하고 또 효율적이다. 아야씨는 이것을 “타쿠미” 군이라고 부르는데, 이렇게 이름을 붙이고 애지중지 살펴줄 정도로 TAD에서는 몇 사람 몫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TAD는 제품군이 그리 많지 않다. 일렉트로닉스만 봐도, 크게는 에볼루션과 레퍼런스 시리즈 정도고, 그 각각에 한 종씩의 프리, 파워, 플레이어 등이 포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총 8종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을 여성 장인의 솜씨로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생산되는 만큼, 그 높은 완성도와 마무리에 대해선 두 말하면 잔소리. 따라서 이번에 만난 D1000 MK2도 에볼루션 시리즈에 속했다는 점을 들어 하찮게 보면 안된다. 절대적으로 극한의 완성도를 전제하고 만들어진 일종의 공예품에 속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표면을 만져보거나, 디스크를 넣다 뺐다 해보면 가벼운 탄성이 절로 나올 것이다.
에볼루션 패밀리
사실 그간 스피커를 중심으로 다른 회사의 일렉트로닉스를 주로 걸었기 때문에, 실제로 이렇게 TAD만의 구성으로 접하기가 쉽지 않다. 뮌헨 하이엔드 오디오 쇼 정도에 가야 만날 수 있다. 이 패밀리를 이제 나 혼자 대면하게 되었으니, 여간 흥분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TAD의 음향 철학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런 영문이 나온다.
여기서 잠깐 라인 업을 좀 더 소개해보자. 스피커인 에볼루션 원 TX는 최근에 출시된 것으로, 3웨이 구성이면서, 우퍼를 두 발이나 탑재하고 있다. 물론 우퍼의 구경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아 16Cm에 그치지만 무려 29Hz까지 재생한다. 대단한 실력이다. 한편 베릴륨 트위터를 쓴 CST 드라이버, 이른바 동축형 유닛의 경우, 고역 특성이 무려 60KHz까지 다다른다. 사이즈를 훨씬 상회하는 광대역이라 하겠다.
한편 이와 커플링되는 C2000 프리의 경우, 과거 C7의 유산을 풍부하게 담아내면서도 특별히 USB 입력단을 갖추고 있어서, PC나 맥을 걸어서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디지털 동축 RCA와 XLR에도 대응해서, CD나 SACD 등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본 기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본격적인 아날로그 프리를 기본으로 하면서, 이런 디지털 입력의 옵션을 여럿 제안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시대의 변화를 파악했다고 봐도 좋다.
▲ TAD Evolution M2500 MK2 Power Amplifier
마지막으로 M2500 MK2는 8오옴에 채널당 250W를 내고 있다. 내부 구성을 보면, 프리와 마찬가지로 철저한 듀얼 모노를 취하고 있다. 좌우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설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청주파수 대역 내의 디스토션이 0.0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증폭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왜곡이나 노이즈 발생에 대해선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이런 라인 업을 배경으로, 드디어 D1000 MK2가 등장한다. 실질적으로 에볼루션 시리즈의 첫 단추를 꿰는, 매우 중요한 위치. 한 마디로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 즉 소스가 나쁘면 나머지 기기가 아무리 훌륭해도 쓰레기 음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스에 대해선 아무리 투자해도 모자라지 않다. 지금부터 이 제품에 관해 집중적으로 탐구해보자.
전면에서 보면, 엷고 평평한 바닥 위에 조작부가 있고, 그 위로 본체가 구성되어 있다. 3개의 층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이중 맨 밑은 일종의 인슐레이터 역할을 한다. 그 아래에 정교하게 가공된 스파이크가 부속되는데, 3점 지지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외부 진동의 차단이라는 측면에서 일단 믿음직스럽다.
본 기는 CD와 SACD를 함께 재생하기 때문에, 구동 메커니즘에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 그래서 디스크 트레이는 세밀하게 가공된 알루미늄이 동원되었고, 스무스하게 열고 닫힌다. 과연 이 가격대의 제품이 갖고 있는 품격이랄까 위엄이 느껴진다.
트랜스포트쪽의 전원 공급에도 신경을 써서, 일체 노이즈가 없는 DC 서보 모터를 동원하고 있다. 이로써 정속 주행이 가능해졌다. 특히, 회전수가 다른 CD와 SACD의 성격상, 이런 구동 메카니즘의 정확성은 필수다.
지터와 노이즈 대책에 제일 먼저 필요한 수단이 바로 마스터 클록이다. 본 기에는 울트라 하이 C/N 마스터 클록 UPCG가 동원되고 있다. 이것은 상급기 D600에도 쓰인 것이며, 버전 2가 채용되어 있다. 쉽게 말해 수정 발진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지터의 간섭을 대폭 줄였다고 보면 된다.
DAC는 정평있는 버 브라운의 PCM 1794A를 채널당 한 개씩, 총 두 개를 동원하고 있다. 이로써 PCM 신호는 32/384, SACD는 5.6MHz 사양으로 업이 된다. 한편 USB 입력단에도 최상의 기술력을 발휘해, PC 파이들의 구미에도 맞는 사양을 갖추고 있다.
▲ D1000 MK2의 내부에 사용된 전원
기본적으로 전원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큼직한 토로이달 전원 트랜스를 쓰고 있는데, 여기서 아날로그 및 디지털부를 각각 달리 출력하고 있다. 이것은 이런 급수의 제품을 만들 때 기본이라 하겠다. 실제로 오디오를 운용할 때에도, 아날로그쪽과 디지털쪽을 나눠서 전원 공급을 하면 매우 효과적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인 시청에 임하겠다. 어찌 보면 에볼루션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평이 될 수도 있겠는데, 어떤 조합이든 소스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 부분을 감안하고, 시청평을 접했으면 좋겠다.
첫 곡으로 들은 것은 라파엘 쿠벨릭 지휘,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1악장>. 기본적으로 다이내믹스가 풍부하고, 스케일이 거창한 작품이다. 그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초반에 잔잔하게 시작해서 호른의 장대한 울림을 통해 점차 고조되어 간다. 이윽고 전체 악기가 어우러져 엄청난 굉음을 내는 와중에 바이올린군의 예리한 돌진이 중간중간에 포착된다. 광폭하리만치 무서운 에너지를 다 표현하면서, 그 배후의 애잔한 느낌도 잊지 않고 있다. 소스에 담긴 모든 정보를 아낌없이 드러내는 모습이다.
이어서 정 명훈 지휘, 말러의 <교향곡 2번 1악장>. 초반에 오른쪽 채널을 점한 첼로군의 급박한 움직임.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편성이 커지고, 점차 말러다운 대편성의 기세로 이어진다. 그 흐름이 일목요연하다. 개개 악기의 음색이나 존재가 명료하고, 전체적인 어우러짐에 일체 흐트러짐이 없다. 중간중간 터지는 관악기들의 다채로운 모습은 듣는 즐거움까지 전달한다. 에볼루션 시리즈뿐 아니라, 그 윗급에 갖다놔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퀄리티다.
데스티니 차일드의 <Emotion>을 들어본다. 가운데에 비욘세가 있고, 그 좌우로 각각 한 명씩 보컬이 위치, 총 세 명이 멋진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다. 일단 포지션이 명료하고, 각각의 성량과 음색이 명료하게 구분이 된다. 깊은 베이스와 다양한 악기의 콤비네이션이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 나온다. 이 곡에 이렇게 많은 정보량이 있었나, 새삼 감탄한다. 특히, 비욘세의 빼어난 노래 솜씨는 여기서 제대로 포착이 된다. 숱한 악기와 보컬의 향연이 정교하게 분해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레드 제플린의 <Ramble on>. 70년대 초라는 녹음 환경에서 최상의 기량을 다한 모습이 정확히 포착이 된다. 화려한 기타 스트로킹을 배경으로, 깊이 떨어지는 베이스, 샤프한 보컬 등이 휘황하게 전개되다가 나중에 드럼이 가세하고, 강력한 에너지를 폭발하는 부분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매우 드라마틱하다. 이렇게 보면, 본 기 자체가 전체적으로 시스템을 끌고 간다고나 할까, 밴드로 치면 일종의 리드 보컬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소스기에 아낌없이 정보량을 끄집어내면, 그 이후는 일사천리. 그런 모습을 확연히 감지할 수 있다.
결론
요즘 이 가격대의 디지털 디스크 플레이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만듦새의 완벽함, 최상의 테크놀로지, 수려한 디자인 등이 가미되고 무엇보다 묵직한 무게까지 보유하고 있어서, 소유의 즐거움을 더하게 한다. 일체 컬러링이 없는, 오로지 소스에 담긴 정보만을 정확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많은 CD 및 SACD를 소장한 분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만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