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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이종학(Johnny Lee)(월간오디오)
드럼의 타격감과 심벌즈의 찰랑거림이 적절하게 귀를 자극하는 가운데, 휘황하게 몰아치는 오케스트라, 유유자적한 베이스 라인 등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다. 그 위로 다소 담담하고 또 관능적인 보컬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듣고 있으면 마치 파도가 물결치듯, 리듬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보컬과 피아노 등이 명료하게 포착된다.
아마 TAD라는 브랜드를 처음 들어보는 분들이라도, 파이오니아라고 하면 금세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말하자면, 파이오니아 산하의 럭셔리 브랜드로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원래 출발은 프로페셔널 오디오 쪽이다. 스튜디오 장비나 PA 등을 겨냥해서, 1970년대 중반에 런칭된 브랜드이다. 그 사이, 익스클루시브라는 컨슈머 전문 브랜드도 운용한 바 있지만(여기서 발매된 혼 타입 스피커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가 된다), 이제는 컨슈머 부문까지 TAD로 통일했다. 아니, 오히려 하이파이 쪽에 전념하는 인상이다. 대신 프로페셔널 쪽은 전문적인 드라이버의 공급으로 대체하는 상황.
사실 최근 10여 년간 TAD가 거둔 성과는 눈부시다. 이미 베릴륨 트위터를 70년대 중반에 생산할 만큼 원천 기술을 갖춘 데다가, 상위 모델엔 베릴륨 미드레인지까지 장착하고 있다. 지금 여러 업체에서 베릴륨 트위터를 만들고 있지만, 미드레인지까지 만든 회사는 TAD가 유일하다. 또 중·고역을 일종의 동축형 스타일로 꾸며서, 포인트 소스의 강점을 구축한 점이나, 혼 타입 못지않은 직선성과 방대한 주파수 대역의 실현 등, 기술적으로 진보된 부분이 많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아하는 메이커다.
그중 이번에 만난 ME1(Micro Evolution One)은, 작년 뮌헨 오디오 쇼에서 정식 데뷔한, 동사의 엔트리 클래스 모델이다. 엔트리급이라고는 하지만, 넓은 홀을 충분히 채울 만한 능력이 출중하다. 지난 3월에 열린 서울 국제 오디오 쇼에서도 내 스스로 이 기기를 갖고 시연한 바 있는데, 저 멀리 맨 뒷자리까지 제대로 음이 전달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과연 프로페셔널과 혼 타입의 혈통을 갖고 있는 모델이라 하겠다.
여기서 두 가지 기술을 꼭 언급해야 한다. 첫 번째는 CST. 이것은 ‘Coherent Source Transducer’의 약자로, 흔히 동축형이라 불리는 기술을 더 진화시킨 내용을 갖고 있다. 중앙에 위치한 베릴륨 트위터 덕분에 고역은 무려 60kHz까지 뻗는다. 한편 미드레인지는 420Hz까지 담당하고 있다. 본 기에는 9cm 구경의 CST가 쓰이고 있다. 이어서 우퍼는 16cm 구경. MACC라는 진동판을 채용하고 있는데, 베릴륨처럼 빠른 반응에 대응하기 위해 아라미드를 적층으로 쌓은 복합 소재를 동원하고 있다. 작은 구경임에도 36Hz까지 넉넉하게 커버하고 있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한편 Bi-Directional ADS라는 기술도 지적해야 한다. ‘Bi-directional Aero Dynamic Slot’의 약자인데, 바로 인클로저 양편에 투입된 기술이다. 즉, 얇은 금속판을 덧대서 인클로저 옆에 일종의 슬롯을 만들어, 저역의 자연스러운 방출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밀폐형과 개방형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형식이라 하겠다.
따라서 스펙만 따져보면 약간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입력 감도가 4Ω에 85dB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러나 메이커측에서는 150W를 권하고 있다. 아마도 일반 시청 환경이 10평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100W 정도의 인티앰프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3-400W급의 본격적인 파워 앰프까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빈틈이 없다. 인클로저의 단단함과 정교한 드라이버의 배치, 전용 스탠드의 묵직함 등,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이 아낌없이 투입되어 있다. 또 중립적이고 범용적인 음은,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지나치게 해상도 위주로 튜닝해서 듣다 보면 지치게 되는 스피커들이 있는데, 본 기는 그와는 무관하다. 동사가 추구하는 기술적 완벽성이 컴팩트하게 구현된 모델이 바로 본 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