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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음악, 미술, 소설 등 모든 예술 장르에는 취향이 존재한다. 사람에 따라서 다른 주제와 이야기, 소재를 탐닉한다. 오디오도 마찬가지다. 어떤 이는 과거 빈티지 명품에 목숨을 걸며 요즘 제품은 시시하다고 딴지를 건다. 또 어떤 사람은 과거의 것은 그저 유물에 불과하다며 최신기술이 적용된 최신 제품을 누구보다 먼저 경험하는데서 자부심을 찾는다. 하지만 이런 취향은 저울에 달아서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없는 성질을 가진다. 나름대로 우리는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듯 다른 취향을 가지며 공존한다. ‘최향 존중’이라는 유행어가 생긴 것도 우연은 아니다. 타인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오디오가 재미있는 것도 수없이 많은 취향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스피커를 예를 들어보면 시대에 따라 혼 스피커나 동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풀레인지 스피커를 옹호하는 골수 진공관 마니아가 있다. 시대를 훌쩍 건너뛰면 하이엔드라는 말이 생겨나기 시작했던 여명기 시절 첼로나 이글스턴웍스, 초창기 윌슨과 틸 스피커를 여전히 애용한다. 탄노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며 멀티웨이 하이엔드 스피커에 대해선 여전히 귀를 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많지 않지만 여전히 리본, 정전형 스피커를 애지중지하며 앰프 매칭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각각의 스피커를 설계한 엔지니어도 설계철학이 제각각이며 사용하는 오디오파일도 재생음 품질에 대한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때로 자신도 모르게 특정 국가의 스피커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 중 일본 오디오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사람도 해외에서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최신 벨트 드라이브 턴테이블에 대해 야유를 보내며 일본의 다이렉트 드라이브 턴테이블에 집착한다. 야마하 GT 시리즈를 완전히 리노베이션해서 사용하는 게 일본에선 유행이며 최근엔 급기야 GT-5000을 선보였다. 테크닉스 다이렉트 드라이브 턴테이블이 새로운 모습으로 출시되기도 한다. 스피커 같은 경우 야마하 NS-1000M을 잇는 NS-5000이 몇 해 전 발매되어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 좌측부터 TAD 글로벌 세일즈 매니저 데이비드 홉스(David Hobbs), TAD 사장 준 나가하타(Jun Nagahata)
파이오니아 그리고 TAD
일련의 일본 오디오 마니아들에게 야마하, 테크닉스, 빅터, 다이아톤, 익스클루시브 같은 브랜드는 그들만의 성역이다. 제품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일본 제품들은 여전히 자국 또는 해외 소수 마니아의 타겟이 되곤 한다. 그 중 익스클루시브라는 브랜드 네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커다란 혼 트위터를 탑재한 궤짝 형태의 스피커 등 익스클루시브는 당시 굉장히 혁신적인 스피커를 만들어내며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일본 메이커였다. 익스클루시브는 파이오니아의 방계 브랜드로 한 때 일본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스피커 메이커로 급부상했었다.
TAD는 바로 익스클루시브를 이어 파이오니아가 촉발시킨 일본 하이엔드 스피커의 새로운 이상을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TAD의 기원을 굳이 따지자면 1970년대까지 그 연혁을 되짚어 올라갈 수 있다. 지난 서울 국제오디오쇼에서는 TAD의 대표 준 나가하타가 내한해 자리를 빛냈고 나는 그와 함께 내한한 데이빗 홉스의 입을 통해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Micro Evolution One
당시 오디오쇼에서 나의 눈과 귀를 잡아 끈 것은 단연 소형기 Micro Evolution One이었다. 물론 레퍼런스 모델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지만 보편적인 가정환경에서 사용 가능한 Micro Evolution One이 실질적인 관심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익스클루시브는 잊어도 좋다. 제품의 외관 디자인부터 설계 그리고 독보적인 특허 기술 등 TAD를 처음 보았을 때 미국 브랜드로 오해할 정도였다. 그만큼 여러 일본 제품들에서 보이는 자국의 취향을 지우고 대신 전 세계 오디오파일의 취향에 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단 Micro Evolution One은 북셀프 스피커로서 스탠드를 받히고 사용하는 형태로 디자인되어있다. 예리하게 깎아지른 헤어라인, 고급스러운 피아노 블랙 래커 마감 등 한눈에 보아도 남자들의 취향을 저격할만한 만듦새를 자랑한다. 그리고 그런 탄탄하며 트랜스포머 로봇처럼 멋진 디자인 안엔 ‘Technical Audio Devices’라는 브랜드 이름만큼이나 독창적인 기술이 대거 똬리를 틀고 있다.
우선 Micro Evolution One이 사용하고 있는 유닛으로 트위터가 먼저 눈에 띈다. 그러나 트위터가 아니라 정확히는 트위터와 미드레인지 유닛이 융합한 동축 유닛이다. 이를 TAD에서는 CST, 즉 ‘Coherent Source Transducer’라고 부른다. 고역과 중역의 발음원을 동일한 축 선상에 놓음으로서 위상 일치와 정교한 음상을 얻을 수 있어 케프 같은 메이커에서 애용하는 방식이다. 9cm 동축 유닛 안에 2.5cm 구경 트위터를 합체시킨 모습. 더 놀라운 것은 대역 소화 능력에 있다. TAD는 최고 수준의 대역 확장을 위해 트위터에 베릴륨을 사용했다. 이로서 CST 동축 유닛의 고역 한계는 무려 60kHz에 이른다.
다음으로 베이스 우퍼는 16cm 구경으로 아마리드 섬유를 활용한 MACC 다이어프렘을 사용한 유닛이다. 이 베이스 우퍼는 최대 36Hz 음역까지 재생 가능한데 북셀프 스피커치고는 상당히 깊고 정교한 저역을 그려내는 핵심이다. 이로서 Micro Evolution One 스피커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3웨이 스피커로 완성되었다. 크로스오버는 450Hz와 2.5kHz에서 끊고 있으며 총 주파수 커버리지는 36Hz에서 무려 60kHz에 이른다. 작은 괴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스펙이다.
흥미로운 점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인클로저 설계에 관한 것이다. TAD는 아마도 최대한 작은 사이즈에서 레퍼런스급 스피커 성능을 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목적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저음반사형이나 밀폐형 등 그 무엇도 적합하지 않았던 듯. ‘Bi-Directional ADS’라는 포트 설계를 개발해 적용하고 있다. 양 사이즈에 포트를 설치하고 그 위에 금속 패널을 설치해 얇은 통로를 마련해놓은 것. 저음반사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약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한 독창적인 포트 디자인이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TAD Micro Evolution One을 처음 들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선명한 고역 해상도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보컬 레코딩, 예를 들어 다이애나 크롤이나 홀리 콜, 제니퍼 원스 등을 들어보면 중역의 존재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기존에 들어본 매우 다양한 북셀프 중에서도 대역 밸런스 측면에서 최상급 특성을 보여준다.
골드문트 590과 오렌더 W20 그리고 레졸루션오디오 칸타타 3.0으로 세팅한 시스템에서 고역은 매우 맑고 고운 고해상도로 펼쳐진다. 하지만 나윤선의 ‘Early rain’같은 곡을 들어보면 베릴륨 트위터를 사용한 스피커치고는 꽤 차분하며 특정 주파수 대역을 과장하는 법이 없다. 북셀프의 경계는 이미 넘어서 중급 플로어스탠딩 수준의 안정적인 대역 밸런스를 보여준다. 이는 아마도 동축 유닛 CST 드라이버의 힘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같은 베릴륨이지만 포칼 스피커와 달리 가감 없고 중립적인 모습이다. 촉촉하고 달콤한 매력은 느끼기 힘들지만 대신 동축 유닛의 특징 중 하나인 음상 표현은 칼처럼 명징하다.
균질한 주파수 대역 반응은 적어도 초저역만 포기한다면 어떤 면에서도 흠잡을 곳이 없다. 만일 이 스피커가 특정 룸에서 부밍을 일으킨다면 룸 세팅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한다. 칼라 블레이의 ‘Lawns’를 들어보면 중역대역에서는 어떤 착색도 느낄 수 없을 만큼 중립적인 반응을 보인다. 피아노 음정을 긴 여운을 남기는 와중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물감을 덧칠한 느낌 없이 깨끗하고 맑다. 그만큼 매칭하는 앰프와 소스기기에 따라 그 특징을 거울처럼 청자에게 알려준다. 입력 신호 대비 매우 정확한 반응을 보인다.TAD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Micro Evolution One의 능률은 2.83V/1M 기준 85dB며 공칭 임피던스는 4옴에 불과하다. 앰프 매칭에 있어서 매우 선형적인 특성을 요구하는 스피커 스펙이다. 특히 저역 재생은 이 스피커의 앰프 매칭에 있어 관건이 될 확률이 높다.
골드문트 590에 매칭한 상태에 한정할 때 적어도 높은 저역까지는 무척 평탄하며 과장이나 축소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후 대역부터는 급격한 경사를 보이며 롤러코스터처럼 하강곡선을 그린다. 따라서 제임스 블레이크의 ‘Limit to your love’에서 저역 한계는 분명하지만 번지거나 뭉개지지 않고 재생 가능 구간까지 고해상도로 타이트하게 재생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시청실 공간을 육중하게 흔드는 저역을 만끽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북셀프 스피커의 정확한 시간축 일치와 그로 인한 명료한 음상, 포커싱이 돋보인다. 더불어 멀티웨이 스피커의 저역 그룹 딜레이나 바닥에 퍼지는 저역이 아니라 매우 날렵한 엔벨로프 특성을 보인다. 활처럼 당겨진 저역과 스포츠카처럼 숨 막히는 추진력은 모든 음악을 짜릿하게 만든다. 벤자민 브리튼의 레퀴엠 중 ‘Lacrymosa’를 재생하며 스피커 크기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드넓은 스테이징 넓이가 돋보인다. 독자적인 포트 디자인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포트노이즈로 인한 탁한 기운은 포착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오케스트라까지도 깔끔하게 현미경으로 조망하는 듯 재생해준다.
※ 위 유튜브영상은 리뷰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영상이며 실제 리뷰어가 사용한 음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총 평
TAD는 파이오니아가 일으킨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다. 물론 일본 메이커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설계나 재생음의 수준을 떠나 굳이 일본 메이커라는 생각을 들게 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북미쪽 스피커 메이커를 상상하게 만드는 면이다. 때로는 어셔 BE718의 얼티밋 하이엔드 버전 같은 인상을 주기도해 친숙한 느낌이다. Micro Evolution One은 전반적인 스케일부터 대역 반응 특성 모두 특급 북셀프의 면모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다.
만일 이 스피커를 경험한다면 주의할 점이 있다. 고양이인줄 알고 데려와 풀어놓는 순간 사자의 포효를 듣는 듯 놀라움을 맛보게 될지도 모른다. 전대역에 대해 평탄한 반응을 잃지 않으면서 폭넓은 대역 소화와 다이내믹스 폭 그리고 저역 무게감을 양보하기 싫은 사람. 그러나 플로어스탠딩 스피커의 저역보다는 유사한 스케일에 해상력과 스피드를 더 우선순위에 두는 오디오파일에게 Micro Evolution One는 굉장한 유혹이 될 것이다. 근래 보기 드문 북셀프 마왕의 탄생이다.
S P E C
Model | 3-way bass reflex bookshe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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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ve Units | Woofer: 16cm cone Midrange/tweeter: coaxial 9cm cone/2.5cm dome |
Performance Data | Frequency response: 36Hz to 60kHz Crossover frequencies: 420Hz, 2.5kHz Maximum input: 150W Sensitivity: 85dB (2.83V, 1m) Nominal impedance: 4Ω |
Others | Weight: 20kg (1 unit) Dimensions: 251mm (W) × 411mm (H) × 402mm (D) |
Accessories | short cable × 2, cleaning cloth, owner’s manual, anti-slip pad × 4 |
OPTION: TAD-ME1 Speaker Stand | Accessories: Accessory kit (for 2 units): spike (L) × 6, spike (S) × 6, spike shoe × 6, spike (for height adjustment) × 4, screw (for attaching base to struts M6) × 8, screw (for attaching top board to struts M6) × 8, screw (for attaching speaker M6) × 4 Weight: 16kg (1 unit) Dimensions after assembly: 376mm (W) × 652mm (H) × 460.2mm (D) (1 unit) |
수입사 | 오디오갤러리 (02-926-9084) |
가격 | 1500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