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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이종학(풀레인지)
개인적으로 항상 감사하는 메이커가 하나 있다. 바로 뮤지컬 피델리티(Musical Fidelity, 이하 MF)다. 약 30여 년 전에(정확히는 1984년에 런칭) 혜성과 같이 등장해서 A1이란 모델을 발표, 그야말로 전 세계 애호가들을 강타한 것이다. 특히 극강의 가성비는 오랜 기간 인구에 회자될 정도다. 이 제품을 통해 하이파이로 입문한 분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금의 오디오 마켓 중 상당 부분이 A1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xml:namespace prefix = o />
이후 최근에는 M6로 다시 한번 A1의 전통을 이었고, 지금은 M8로 진화된 모델을 들고 나왔다. 꼭 한번 만나고 싶었던 MF의 수장 안토니 마이클슨(Antony Michaelson)씨의 방한을 계기로 MF와 M8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담이지만 그 동안 나는 마이클슨 씨의 이름이 앤서니(Anthony)인줄 알았는데, 안토니였다. “h”가 빠진 것이다. 이런 이름은 처음 봐서 흥미롭고, 직접 대면한 마이클슨 씨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Q : 우선 어릴 적 이야기부터 듣고 싶습니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는데요?
A : 맞습니다. 일찍이 악기 연주를 배웠습니다. 클라리넷입니다.
Q : 클라리넷이라니 특이하군요. 대부분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택하는데요.
A : 우선 음이 무척 아름답습니다. 또 사람이 노래하는 대역과 겹치고요. 그래서 마치 노래하듯 연주할 수 있습니다.
Q : 그렇군요. 오디오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인가요?
A : 13살 무렵이라고 봅니다. 대략 60년대 중반쯤? 이때 전문적으로 음악을 감상하고 싶어서 시스템을 구했습니다. 당시 10 파운드짜리 중고 진공관 앰프를 샀는데, 저로서는 큰 비용이었죠. (웃음) 그런데 듣고 있으면 조금씩 노이즈가 나곤 했습니다. 손으로 탁 치면 한동안 조용하다가 또 어느 순간 징징 우는 소리가 났습니다. 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어서 안을 살피다가 그만 찌리릭 감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웃음) 신고식 한번 제대로 치룬 것이죠. 아무튼 이때부터 앰프의 수리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하이파이쪽 정보를 찾게 되었습니다.
Q : 졸업 후에는 어떤 일을 했습니까?
A : 처음엔 아트 스쿨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결석이 잦았죠.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겁니다. 그러다 당시 만나던 여자 친구의 오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프로페셔널 뮤지션입니다. 음악에 관심 있던 제게 그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어느 날 그가 제게 이런 조언을 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나중에 마흔이 넘어서 젊은 시절을 회상할 때, 아, 그때 그랬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도록 해라.” 정신이 번쩍 나더군요. 대체 내가 하고 싶은 게 뭔가. 그래, 음악이다. 그래서 늦은 나이에 음악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Q : 흥미롭군요.
A : 서양에선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고양이는 아홉 개의 생명이 있다. 이를 제게 빗대면 제겐 아홉 번의 새 출발(Start)이 있습니다. 그간 무수히 직업을 바꾸고, 새로 도전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죠.
A : 아무튼 졸업 후, 학위는 땄지만 직업은 없었습니다. 그 사이 일종의 아르바이트로 튜브 앰프를 사서 고치고 다시 되파는 일을 했습니다. 사실 당시에 튜브 앰프에 대해 잘 몰랐지만, 이것은 이런 식으로 되어야 한다는 감은 있었습니다. 그러다 오스틴씨를 알게 되었는데, 그가 한번 진공관 앰프를 만들지 않겠냐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마이클슨 & 오스틴”이란 회사입니다. 주로 오스틴씨가 설계하고, 제가 감수하는 식이었죠. 한 2년 간 존속했는데, 시장 반응이 괜찮을 무렵에 오스틴씨가 회사 자체를 가져가면서, 저는 다시 무직이 되었습니다. 나이 서른에 돈도 없고, 직업도 없었죠.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Q : 또 뉴 스타트 하는 거군요.
A : 맞습니다. 그래서 일단 광고 회사에 취직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컴퓨터 판매 쪽으로 돌았습니다. IBM같은 큰 회사가 아니라, 로컬에서 만든 작은 PC였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비전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냥 회사에 가고 싶지 않더군요. 그래서 사표를 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제 아내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답니다. (웃음) 졸지에 두 부부가 동시에 실업자가 된 것이죠.
Q : 오디오 관련 일은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A : 오스틴 씨와의 일로,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이후, 무려 50번이 넘게 취업을 위한 면접을 보고, 그 중 하나의 직업을 택하게 됩니다. 그럭저럭 안정이 될 무렵, 제 시스템에 도입하려고 프리앰프를 하나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친구 중에 오디오 숍을 하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우연히 제 프리앰프 음을 듣더니 한번 팔아 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오디오 관련 일을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계속 제안을 해온 데다가, 차츰 제 마음도 바뀌어갔습니다. 그래, 안될 게 뭐 있어?
Q : 그렇죠. 일단 해봐야죠.
A : 그러나 일관되게 생산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결국 200불을 어머니한테 꾸고, 크레딧 카드로 현금 서비스를 받고 해서, 제 부엌에 작은 공방을 차렸습니다. 이게 바로 1981년 8월경입니다. 그때부터 뮤지컬 피델리티가 시작된 것이죠. 아무튼 처음에 만든 3대가 금세 나가서, 계속 만들었습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회사에 가서 일하고, 저녁 6시에 퇴근하면 집에 와서 제품을 만드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완전한 투 잡이었죠.
Q : MF를 이야기하려면, 아무래도 A1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제품에 관한 일화를 들려주시죠.
A : 당시 저와 일하던 팀 데 파라비치니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아이디어를 하나 냈습니다. 순 클래스 A 방식의 작은 인티 앰프가 있으면 어떨 것 같냐? 곰곰이 생각해보니 재미있었습니다. 대개 클래스 A 방식의 앰프들은 덩치가 크고, 발열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음질 자체는 무척 뛰어나죠. 이것을 보다 대중적인 컨셉으로 만들면 시장에서 반응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제작에 나섰죠. 1984년에 첫 선을 보인 이래, 정말 메가 히트작이 되었습니다.
Q : 개인적으로는 그 나중에 나온 A1000이라는 모델도 좋았다고 봅니다. 이것은 출력도 50W로 넉넉하고, 디자인도 뛰어났으니까요.
A : A1000의 경우, 지금도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단, 클래스 A 방식의 앰프를 사용하려면 스피커 선정에 신중해야 합니다. 최소한 감도가 90dB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85dB 정도라면 어림도 없죠.
Q : MF는 늘 새로운 시도로 유명합니다. 한동안 누 비스타라는 진공관을 사용한 적이 있죠? 원자폭탄에 쓰이는 관이라고 해서 화제를 모았던 적이 있습니다만.
A : 1980년대에 들어와 진공관 앰프는 이런저런 이유로 시장에서 팔리지 않게 됩니다. 너무 사이즈가 크고, 발열이 심하면서, 안정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다가 찾아낸 게 누 비스타라는 관입니다. 그래서 1990년대에 과감하게 오디오용으로 도입하게 됩니다.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했지만, 저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한데 이게 얼마나 큰 히트를 했는가 하면, 발표 후 첫 6주 동안 무려 800개 이상이 나갔답니다. 물건이 귀해서 심지어 저희 회사로 독촉하는 분들도 있었죠. 그러나 저는 별도로 생산량을 늘릴 생각이 없었으므로, 제 페이스대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누 비스타를 쓴 CDP라던가 여러 제품이 나오면서 확고하게 저희 회사의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지금도 중고 시장에서 누 비스타 시리즈는 오리지널 판매가의 50% 이상을 받고 거래됩니다.
Q : A1이라던가 누 비스타 등으로, MF는 항상 화제를 몰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M6 앙코르 225를 런칭했습니다. 기존 제품과 컨셉이 전혀 다릅니다. 왜 이런 제품을 만들었는지 개발 동기가 궁금합니다.
A :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이용한 음악에 관심이 많습니다. 물론 저는 컴퓨터 도사는 아니지만, 이것을 유용하게 음악 감상의 도구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버튼이 있거나, 복잡한 구성이 되어버리면 곤란합니다. 이를테면 여러 개의 컴포넌트를 조합한 오디오파일용 제품과는 차별화되는, 그냥 컴맹이라도 쉽게 쓸 수 있는 제품이 있다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드 드라이브를 장착하고,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으면서, 인터넷 라디오도 되고, 파워도 넉넉한 제품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뮤직 컴퓨터”를 만들자, 라고 생각한 것이죠.
Q : 요즘 마켓에서 필요한 제품이라 생각합니다. 적시에 잘 나왔다고 봅니다.
A : 그렇죠. 전 컴퓨터는 잘 모르지만, M6의 경우, CD 슬롯도 있고, 다운로드도 가능하며, 인터넷 라디오도 들을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부분을 말하면, 집에 이미 1,500 장 정도의 CD가 있습니다. M6로 이 CD 컬렉션을 즐길 수 있고, 15개 정도의 인터넷 라디오를 프리셋 했으며, TV를 볼 때도 사용합니다.
Q : 이번에 나온 M8 앙코르 500은 M6와 뭐가 다른가요?
A : 기본 성능이나 기능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파워부의 출력을 2배로 높였습니다. M6가 225W인데 반해, M8로 오면 500W가 됩니다. M6로도 어지간한 스피커는 다 구동하지만, M8의 경우, 대형기까지 넉넉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형기라고 하면, 거창한 모노블록 앰프에다가 별도의 파워 서플라이를 갖춘 프리앰프를 상정합니다. 저는 이런 초 하이엔드급 클래스도 M8로 너끈히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음질 또한 뒤지지 않죠. 게다가 내장된 하드 디스크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M6의 경우 1TB입니다. 약 2,500장의 CD를 리핑할 수 있죠. 그러나 M8은 2TB, 총 5,000장의 CD를 리핑할 수 있답니다.
Q : 이미 M6가 널리 알려지고, 큰 히트를 기록한 후라, M8의 런칭도 순조로울 것같습니다. 현재 음악 감상과 관련해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기능을 하나의 박스에 담아내면서, 음질과 스피커 구동력 등을 골고루 갖춰서 큰 관심을 모으리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렇게 흥미로운 제품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마이클슨씨의 창조력이나 영감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A : 저는 앉아서 5분 정도 있으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웃음) 하이파이엔 계속 관심이 많고, 개인적으로도 계속 배우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누군 저보고 전설적인 인물이다 뭐다 하는데, 전 절대로 과거의 공룡이 아닙니다. 지금도 현역에서 활발하게 일하는 중입니다.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Q : 아무튼 저 옛날 A1을 감동 깊게 사용하고 본격적으로 오디오에 입문한 경험이 있던 터라 늘 마이클슨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무척 기쁘고,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 :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
사실 마이클슨 씨는 까다로운 영국인이라는 첫인상이 강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꼬거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식이다. 하지만 직접 만나보니 무척 친절하고 따스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농담도 참 잘했다. 무척 유쾌한 인터뷰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