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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치 않는 혁신의 아이콘
처음 베릴륨 트위터를 경험했을 때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기존 패브릭 소프트 돔의 고역 개방감은 훌쩍 뛰어넘었고 티타늄 등 여러 금속 트위터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초고역까지 으스스하게 뻗어나가는 고역과 그 하위 영역까지 매끈하고 자연스럽게 그려나가는 베릴륨은 하이엔드 스피커의 미래를 제시했다. 베릴륨 트위터를 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장본인이 바로 포칼이었다. 당시 JM Labs로 불렸던 포칼은 자크 마욜이 1979년 설립했다. 하이파이 분야에서 유닛 제조 능력을 갖춘 메이커는 흔치 않았다. 그만큼 새로운 유닛에 대한 소구는 유닛 제조사의 위치를 격상시켰다. 예를 들어 당시 하이엔드 오디오를 부르짖던 여러 메이커들은 다인오디오 유닛을 사용했다. 포칼 유닛 또한 마찬가지였다. 데이브 윌슨이 일으킨 하이엔드 스피커 레전드 윌슨오디오가 포칼 유닛의 단골 구매자였다. 하지만 다인, 포칼 모두 이젠 자사의 스피커를 만들기에 바쁘고 여타 스피커 제조사에 유닛 공급을 중단했다.
포칼의 성장세는 무척 빨랐고 하이파이는 물론 카오디오, 헤드폰, 멀티미디어 등 다방면에 걸쳐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몇몇 하이파이 오디오 마니아들이 찾던 예전의 포칼이 아니다. 다행인 것은 대량생산, 대량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컨슈머 제품에서부터 초고가 하이엔드 오디오까지 모두 공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혁신은 끊임없이 포칼 스피커를 진화시켰다. 독보적인 기술을 겹겹이 쌓아나가며 포칼을 최첨단 스피커 군단으로 무장시켰다. 멀티 페라이트 형태의 플라워 마그넷이나 IAL 트위터 로딩 방식 그리고 저질량 고강도 진동판 W샌드위치 콘 등 모두 포칼 진화의 발자취를 대변한다. 더불어 유토피아 3세대에서 시도한 외장 전자석 컨트롤 기술은 가정용 스피커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부수었다.
많은 하이엔드 스피커들이 명멸하는 전쟁 같은 경쟁에서도 포칼이 전 세계 대표적 스피커 메이커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R&D 및 현지 생산 등 철저한 제품 관리 등에 있다. 현재 무려 2백여 명의 직원과 수십 명의 개발자들이 프랑스 현지에서 제품 개발 및 생산에 열중하고 있다. 이 정도 규모는 하이파이 메이커로서 상당히 큰 규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 없는 제품을 양산하고 있다. 대량생산과 품질이라는 요소의 절묘한 균형을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유토피아 라인업은 포칼의 상징이나 수 십 년간 쌓아온 포칼 기술력을 상징해왔고 이번엔 유토피아 EVO로 거듭나 우리에게 다시 돌아왔다.
Utopia III EVO
새로운 옷을 입고 다가온 유토피아 EVO는 단지 겉모습으로는 색상 외에는 지난 제품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내부는 확실히 새로운 세대임을 웅변하고 있다. 이른바 유토피아 III EVO 에디션임을. 대게 많은 하이엔드 메이커가 그렇듯 수년간 최상위 라인업을 개발해낸 후 그 R&D 과정에서 얻은 부수적인 기술을 하위 라인업에 수혈하곤 한다. 포칼도 항상 그런 방식으로 새로운 세대를 견인해왔다. 하지만 이번은 조금 다르다. 이미 소프라 등의 신형 라인업을 구축했고 그 동안 계속된 연구 중에 얻은 몇 가지 기술이 축적되었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유토피아 III EVO 라는 이름의 최상위 라인업을 구축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번에 청취한 스피커는 두 종, 하나는 스칼라 유토피아 EVO, 또 하나는 마에스트로 유토피아 EVO 라는 플로어스탠딩 스피커다. 이 모델들은 포칼의 최상위 그랜드 유토피아 아래에 놓여 중급 레퍼런스 라인업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몇 가지 동일한 혁신 내용을 균질하게 담아내고 있다. 하나는 NIC, 즉 ‘Neutral Inductance Circit’이라는 기술이다. 이는 드라이브 유닛의 마그네틱 필드 안정성을 개선시켜 하모닉 디스토션 발생을 억제하는 기술이다.
▲오디오갤러리 포칼 유토피아 에보 시리즈 런칭행사에서 공개된 "포칼 Maestro Utopia EVO"
두 번째로는 TMD, 즉 ‘Tuned Mass Damper’ 의 줄임말로서 미드레인지의 반응 특성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 왜곡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댐핑 기술이다. 예를 들어 서라운드 에지 부분에 TMD서스펜션 구조물을 몰딩시켜 유닛 작동시 불필요한 공진을 제거하겠다는 목표로 개발된 기술이다. 이를 통해 인간의 가정 주파수 대역 중 가장 민감한 대역인 1kHz에서 4kHz 사이 주파수 특성을 훨씬 더 개선시켰다는 게 포칼의 설명이다.
트위터는 이전과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데 베릴륨 트위터를 사용하고 IAL 2 라는 독보적인 후면 로딩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포칼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Focus Time™, OPC+™, W™, Power Flower™, Gamma Structure™ 등 유닛 및 시간축 일치, 캐비닛 구조 등에 대한 특허 기술이 대거 적용되어 있다. 한편 마에스트로 유토피아 EVO에만 적용된 기술도 있다. 이른바 MDS(Magnetic Damping System)으로서 이는 저역 주파수 특성을 실제 청음 장소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다. 1미터 50cm 에 달하는 장신이며 11인치 구경 W 우퍼를 채용하고 있지만 MDS를 사용하면 사용자 환경 최적화에 상당히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요긴한 기능이다.
Scala Utopia EVO
스칼라 유토피아 EVO를 먼저 처음 해보았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지는 변화는 중역대다. 분명 포칼은 여유 있고 부드럽고 온건한 스타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EVO 버전에서는 중역대의 보강으로 인한 중역 디테일의 향상이 가장 먼저 포착된다. 예를 들어 길 샴과 외란 쇨셔의 [Schubert For Two]앨범을 들어보면 음색적으로 여전히 베릴륨의 신랄한 고해상도 정보량이 상쾌하다. 광대역에 더해 음원의 바닥까지 긁어내는 현대 하이엔드 사운드다. 하지만 중역대 하모닉스 표현이 좀 더 풍성하고 배음도 늘어나 음악적 표정이 풍부하고 세밀해졌다.
골드문트 590 인티앰프와 동사의 유니버설 플레이러를 사용했으므로 앞단의 성향을 미루어 짐작할만하지만 포칼의 성향 변화는 뚜렷하다. 스테파노 볼라니의 앨범에서 브러시 사운드는 바로 눈앞에서 움직이는 듯 굉장한 고해상도로 다가오며 동시에 더 높은 대역의 하이 햇 심벌도 그 떨림이 극사실적으로 들린다. 여전한 베릴륨 특성이다. 하지만 이 곡에서는 구동이 무척 쉬워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크로스오버 네트워크 등의 변화 때문인지 드럼도 쉽게 밀려나오며 제법 무게감이 크고 리드미컬하게 바닥을 구른다. 기존에 스칼라 유토피아에서 저역 제어가 쉽지 않았던 것을 상기해볼 때 이 부분은 사용자 입장에서 반길만한 특성이다.
▲포칼 Maestro Utopia EVO
Maestro Utopia EVO
다음은 테스트 공간을 옮겨 포칼 마에스트로 유토피아 EVO를 테스트했다. 기본 셋업은 골드문트 미메시스 22H 넥스젠 프리앰프와 텔로스 1000 넥스젠 모노블럭 파워앰프. 소스 기기도 골드문트 CDP이며 처음 마주친 체르노프 DAC를 연결한 모습이다. 자주 청음해본 시스템은 아니지만 기존에 골드문트 풀셋 리뷰 때 이미 포칼 그랜드 유토피아 EM 과 테스트해본 경험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한 단계 아래 모델 마에스트로 유토피아 EVO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볼륨감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바디와 넉넉한 저역에 더해 스칼라 유토피아 EVO에서 느꼈던 중역 디테일은 금세 포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레이첼 포저의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보면 끝 모를 듯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고역 피치, 광활한 스테이징과 해상력은 그대로다. 그러나 중역 디테일과 하모닉스 특성 변화로 인해 이른바 코히어런스 측면의 상승이 눈에 띈다. 여전히 빠르고 치밀한 사운드로 어필하며 넓고 입체적인 무대를 구현하지만 음색적으로 조금 더 말랑말랑한 음결이 생겨났다. 동시에 지나치게 압축하거나 윤곽을 강조해 인위적으로 들릴 수 있는 부분들이 거의 사라져 있다. 요컨대 짜릿한 쾌감은 조금 완화시키되 부드럽고 실키한 광대역으로 거듭났다.
포칼 스피커의 가장 큰 덕목이라면 올라운드 특성이다. 클래시컬 음악은 물론 비트가 빠르고 강한 팝이나 록 그리고 재즈 음악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모두 품어준다. 예를 들어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Eye in the sky’에서 음장감을 느껴볼 수 있는데 호쾌하게 펼쳐지는 넓은 음장감과 스타트, 스탑이 빠른 가운데 느껴지는 순간 펀치력은 압권이다. 대형기답게 좌/우 폭은 물론이며 전/후 깊이감이 드라마틱하게 확장되어 가슴 벅찬 펀치력과 현장감을 만끽할 수 있다.
저역은 물론 리듬, 페이스 & 타이밍, 다이내믹스 부분을 좀 더 부연하자면 일반적인 가정환경에서는 이 이상은 운용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단독 전원주택 정도가 아니라며 마에스트로 EVO 정도가 맥시멈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오존 퍼커션 그룹의 ‘Jazz Variants’에서 저역 양감은 거의 실제 녹음 스튜디오의 그것처럼 그 규모와 펀치력이 상당히 크다. 물론 처음 공간이 무척 넉넉하므로 부스트나 부밍은 느껴지지 않았고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포칼의 저역, 즉 타이트하게 당겨진 저역이다. 골드문트 앰프의 영향도 물론 배제할 수 없으나 기존 버전보다 전반적으로 스피드 완급조절에 여유가 생겼고 음색적으로는 약간 부드러워진 것을 알 수 있다.
▲ 압구정 오디오갤러리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포칼 Kanta No.2"를 감상 중인 필자
마지막으로 하나 더, 포칼 라인업에 새롭게 추가된 칸타 N.2 라는 모델이다. 대략 기존 일렉트라 라인업과 유사한 선상에 놓인 모델로 포칼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미리 귀띔해주고 있는 듯하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바로 Flax 샌드위치 콘이다. 포칼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W 샌드위치 콘과 대조적인 모습인데 일단 진동판 형태부터 남다르다. 그리고 예상했듯 그 소리는 부드럽고 대체로 따스한 톤의 중, 저역을 만들어낸다. 기존 포칼의 냉정하고 빠른 반응보다는 적당한 무개감과 윤기 그리고 부드럽고 온도감 있는 소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 모델 또한 유토피아 EVO 라인업과 동일하게 미드레인지에 TMD서스펜션을 장착했고 NIC 기술이 적용되어 제동이 쉽고 자연스러운 인상을 주고 있다
총 평
현대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은 거대 메이저 그룹 몇몇과 다수의 소형 메이커들이 이끌고 있다. 그 중에서 포칼은 시대의 격랑을 노련하게 해쳐나갔다. 이는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만 해석할 수 없다. JM Labs 로부터 시작해 하이파이 스피커의 전반을 책임졌고 거의 모든 것을 자체 개발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얻어졌다. 하지만 대게 대형 기업으로 성장하면 품질과 타협하며 대량생산 체계와 수익성을 위한 변질로 이어지곤 한다. 때로 스타트업 기업에 인수되어 초지일관했던 사운드 철학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지금 포칼은 네임과 함께 패밀리를 이루어 베르방 오디오그룹을 이끌고 있다. 여전히 스피커 신기술을 선두에서 이끌며 도회적인 디자인과 세련된 이미지로 전세계적으로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유토피아 EVO는 기존 유토피아 III를 한 단계 더 진보시켰고 몇 가지 신기술을 통해 음악적 코히어런스의 향상을 도모했다. 더불어 칸타 N.2 또한 TMD서스펜션과 NIC 기술을 적용하는 한편 Flax 유닛을 사용해 포칼에서 기대하기 어려웠던 온건하고 부드러운 사운드를 선보이고 있다. 그 결과는 기존에 포칼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오디오파일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 느껴진다. 다시 비상한 포칼의 날갯짓은 소수 마니아를 넘어 고해상도 시대, 대중의 새로운 표준으로 향하고 있다.
Scala Utopia Evo
Maestro Utopia Evo
Kanta No.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