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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하이파이클럽
지난 3월17일 서울 압구정동 오디오갤러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스위스 골드문트(Goldmund)의 ‘넥스트 제너레이션’(Next Generation) 신제품 발표회가 열렸다. 이날 론칭쇼에는 골드문트의 설립자이자 현 CEO인 미셸 레바송 (Michel Reverchon) 회장이 참석했다. 소개된 제품은 인티앰프 ‘Telos 590 NextGen’, 프리앰프 ‘Mimesis 22H NextGen’, 모노블럭 파워앰프 ‘Telos 1000 NextGen’ 등 3종. 넥스트 제너레이션 시리즈는 혁신된 전원부 설계를 바탕으로 파워(Power), 울트라 스피드(Ultra Speed), 안정성(Stability)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이번 리뷰는 이 중에서 8옴에서 250W를 내는 인티앰프 ‘Telos 590 NextGen’을 프랑스 포칼(Focal)의 스탠드마운트형 스피커 ‘Diablo Utopia’에 물려 진행했다.
본격 리뷰에 앞서 필자는 최근 명망있는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가 잇따라 고가의 인티앰프를 출시하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이들 인티앰프가 단품 DAC으로 써도 모자람이 없는 충실한 DAC 파트를 내장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기존 ‘DAC + 프리앰프 + 모노블럭 파워앰프’라는 복잡다단한 구성을 간단하게 ‘올인원’ 시킴으로써 최근 소비 트렌드와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려는 제작사의 마케팅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는 기존 단품 네트워크 플레이어가 점점 DAC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들이는 최근 추세와도 맞물려 있다.
물론 여기서 관건은 ‘음질’이다. 귀찮고 복잡했지만 오디오 애호가들이 ‘분리형’을 선호했던 것은 잘 만든 단품 DAC을 통해 극도의 해상력과 아날로그 신호에 맞먹는 다이내믹 레인지를 확보하고, 웰메이드 프리앰프를 통해서는 디테일과 분해능, 사운드 스테이지를 확장시키려는 고심의 결과였다. 물론 튼실한 전원부를 갖춘 파워앰프로는 스피커를 찰지게 구동시키려 했던 것이고. 여기에는 또한 자신이 직접 오디오 기기에 개입할 수 있다는 ‘취미성’도 한몫했다. 한 대의 인티앰프에 스피커를 물려놓으면 간편하기는 한데 자신이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일종의 허탈감, 겪어보신 분들이 많을 것이다.
어쨌든 필자가 최근 들어본 명문가의 인티앰프는 그리폰(Gryphon)의 ‘Diablo 300’(300W 클래스AB), 제프 롤랜드(Jeff Rowland)의 ‘Daemon’(400W 클래스D),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의 ‘No. 585’(200W 클래스AB)였다. 모두 해당 브랜드의 개성을 듬뿍 담아낸 소리를 들려줬다. 그러면 골드문트 회장까지 내한해 론칭쇼를 벌인 이번 ‘Telos 590 NextGen’은 과연 골드문트 특유의 상쾌하고 민첩하며 투명한 사운드를 들려줬을까. 이번 시청기는 그에 대한 필자의 답이다.
“골드문트 고유의 설계철학 몇가지”
197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범한 골드문트는 무엇보다 빠른 스피드와 대출력의 앰프로 유명하다. 특히 스피드에 대한 골드문트의 집착은 대단해서 주파수 오차보다는 시간축 오차(Jitter)가 자연스러운 재생음에 더 큰 해악을 끼친다고 봤다. 골드문트가 전원부에 대형 토로이달 트랜스와 대형 전해 커패시터 대신 ‘소형 토로이달 트랜스와 소형 전해 커패시터를 여러개 동원’(Telos 1000의 경우 전원트랜스가 무려 16개!)하는 것도 이러한 ‘울트라 스피드’를 위한 것이었다. 같은 정전용량을 갖고있다고 해도 한 개의 대형 커패시터보다는 여러개의 소형 커패시터가 더 빨리 직류전기를 공급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노블럭 파워앰프 ‘Telos 1000 NextGen’의 라이즈 타임은 무려 400ns에 달한다.
골드문트의 대출력도 유명하다. 인티앰프 ‘Telos 590 NextGen’만 해도 250W(이하 8옴 기준)를 뿜어내고, 모노블럭 파워앰프 ’Telos 1000 NextGen’은 365W, 스테레오 파워앰프 ‘Telos 280’은 330W, 지금은 단종된 모노블럭 파워앰프 ‘Telos 600’은 600W까지 뽑아냈다. 사실 ‘Telos’라는 단어 자체가 그리스어로 ‘파괴적인 힘’을 뜻한다고 한다. 물론 어떠한 스피커라도 철저하게 드라이빙하기 위한 대출력 설계다. 출력단에는 전통적으로 MOSFET을 여러개 동원한다.
자체 설계한 DAC 모듈 ‘Alize Converter’를 프리앰프는 물론 인티앰프, 심지어 파워앰프에까지 장착해온 것도 골드문트의 큰 특징 중 하나다. 이는 골드문트의 디지털 프리앰프와 접속해 파워앰프의 아날로그 증폭회로 직전까지 음악신호를 디지털로 받음으로써 음질 손상을 막기 위한 것이다. ‘Alize Converter’는 기존 델타 시그마 방식 DAC 설계와는 달리 디지털 신호를 오버샘플링 없이 곧바로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한 뒤 12단 구성의 아날로그 필터를 거치게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오버샘플링이 필연적으로 지터(시간축 오차)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 과정을 생략했다는 게 골드문트의 설명이다. 디지털 입력 신호에 끼어들어오는 지터 역시 골드문트가 개발한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통해 걸러낸다고 한다.
기기의 진동을 바닥으로 내보내는 ‘메커니컬 그라운딩’(Mechanical Grounding) 기술도 ‘음의 착색과 왜곡을 줄이는 원천기술’로서 주목할 만하다. 즉 알루미늄합금, 황동, 강철 등 경도가 다른 이종 금속을 결합해 진동을 상쇄시키고, 그래도 남는 진동은 내부 골조와 스파이크를 통해 바닥으로 내보내는 구조다. 참고로 섀시로 사용되는 알루미늄 블럭의 절삭 가공은 프랑스 동부 아누시를 거점으로 한 전문공장 테시어 테크닉(Tessier Technique)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이밖에 앰프 내부의 열을 빠르게 냉각시키는 ‘서멀 그라운딩’(Thermal Grounding), 다른 기기의 AC전원을 타고 넘어오는 노이즈를 필터링하는 ‘AC큐레이터’(AC-Curator)도 골드문트를 대표하는 기술들이다.
“‘Telos 590 NextGen’의 설계디자인”
골드문트에 따르면 넥스트젠(NextGen)은 파워앰프 ‘Telos 5500’의 개발에서부터 시작됐다. ‘Telos 5500’은 골드문트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지난 2008년 출시한 플래그십 파워앰프 ‘Telos 5000’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앰프를 설계하는 프로젝트. 이를 위해 강력한 파워앰프의 원동력인 전원부를 비롯해 기존 골드문트 앰프의 거의 모든 것을 다시 손봤다. 위에서 언급한 ‘메카니컬 그라운딩’과 ‘하이 스피드 전원부’, 그리고 ‘서멀 그라운딩’, ’AC 큐레이터’ 기술을 대폭 업그레이드했음은 물론이다. 특히 극한 출력에서도 스피커 유닛들이 안전할 수 있도록 앰프의 보호회로(protection circuit) 개선에 큰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인티앰프 ‘Telos 590 NextGen’은 따라서 기존 인티앰프 ‘Telos 390.5’에 넥스트젠의 신기술이 얹혀지고 내장 DAC성능을 대폭 업그레이드시킨 모델로 보면 된다. 무엇보다 DAC 모듈로 ‘Alize 7’ 버전을 써서 PCM은 32비트/384kHz까지, DSD은 DSD128까지 지원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토로이달 전원트랜스를 채널별로 1개씩 탑재한 구성은 전작과 마찬가지. 하지만 섀시 크기는 훨씬 커졌다. 참고로 ’Telos 390.5’는 8옴에 210W 출력을 냈고, DAC 모듈로 ‘Alize 6’ 버전을 써서 24비트, 96kHz 음원까지 지원했다. 물론 DSD는 안됐다. 이전 모델인 ‘Telos 390.2’는 스틸 섀시였던 ‘Telos 390’에서 통 알루미늄 섀시로 변경하고 디지털 입력단을 생략했었다.
전면 패널은 파워앰프 ‘Telos 2500’에서 따왔으며 왼쪽 노브가 셀렉터, 오른쪽 노브가 볼륨이다. 양 측면에 촘촘하게 마련된 방열판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다우며 효과적인 방열을 통해 앰프의 안정성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보인다. 아날로그 입력은 언밸런스(RCA) 5조를 갖췄으며, DAC을 내장한 만큼 디지털 입력(USB 1, 광 1, 동축 1)도 마련했다. 게인은 35dB, 주파수응답특성은 20Hz~20kHz 대역에서 +,-0.5dB에 불과하다. 증폭 및 출력단은 구체적으로 공개는 안됐지만, 최종 출력단(전력증폭)에 다수의 MOSFET을 써서 클래스AB로 구동되는 방식으로 보여진다.
“시청”
시청은 미리 밝힌대로 포칼의 ‘Diablo Utiopia’를 물려 진행했다. 스탠드 마운트형 ‘Diablo Utopia’는 포칼의 강렬한 상징인 1인치 퓨어 베릴륨 역돔 트위터에 6.5인치 파워 플라워 우퍼를 쓴 2웨이 베이스 리플렉스 스피커. 크로스오버는 2.2kHz에서 이뤄지며 공칭 임피던스는 8옴(최저 4옴), 감도는 89dB, 재생주파수대역은 44Hz~40kHz를 보인다. 소스기기는 오렌더의 네트워크플레이어 ‘N10’을 골라 ‘Telos 590 NextGen’과 USB케이블로 연결해 주로 타이달(TIDAL) 음원을 들었다. 이번 시청은 따라서 ‘Telos 590 NextGen’의 내장 DAC의 성능까지 오롯이 테스트할 수 있었다.
Bill Evans - Waltz For Debby
Waltz For Debby
좌우 스테이지가 넓게 펼쳐지며 에너지감도 상당하다. 특히 뒷벽이 뻥 뚤린 것 같은 시원한 전망과 무대의 안길이가 압권. 골드문트 특유의 명징하고 상쾌한 사운드도 쉽게 포착된다. 하지만 내장 DAC가 아주 칼같은 해상력이나 진하고 호방한 음색을 들려주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크게 불만은 없는 상황이며 인티앰프의 어마어마한 스테이징 능력과 구동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중간에 UBS케이블을 바꿔봤는데 저역이 살아나면서 대역밸런스가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Diablo Utopia’는 다분히 남성적이며 호방한 사운드를 내준다.
정명훈 - Libertango
Misa Tango
인티앰프와 스피커가 그사이 서로를 알아본 것 같다. 악기수가 늘어나고 각 음들의 분리도가 아까 ‘Waltz For Debby’ 때보다 확실히 좋아졌다. 음들이 서로 섞여 혼탁해지지가 않는다. 각 악기 연주의 세세한 아티큘레이션이 하나하나 포착된다. 루이스 바칼로프의 피아노 터치는 매우 영롱하게 들리며, 건반을 누리는 손가락 힘까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각 악기간 원근감도 잘 그려지고, 매크로 다이내믹스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전체적으로 노이즈 관리가 무척 잘 돼 있다는 인상. 한마디로 맑고 투명하고 깨끗한 소리다. 막판 각종 퍼커션들의 순간순간 치고빠지는 트랜지언트 특성이 깜짝 놀랄 정도로 훌륭히 표현된다. 역시 골드문트 앰프의 라이즈 타임은 인정할 만하다.
Country For Old Man
앰프가 대음량을 너끈하게 밀어주고 이를 스피커가 대수롭지 않게 잘 받아주고 있다. 각 음들의 레이어가 차곡차곡 그것도 아주 투명하게 잘 쌓이고 있다. 존 스코필드의 기타가 주도하는 사운드(+베이스, 드럼, 키보드)가 마치 현장에서 듣는 듯하다. 드럼의 타임 키핑과 베이스의 워킹 리듬은 전형적인 재즈 스타일. 덕분에 저절로 몸이 흥겨워진다. 이 곡에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골드문트의 내장 DAC이 지금까지 들어온 타 브랜드의 단품 DAC과는 미묘하게 다른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것. R-2R 래더 DAC과는 물론 하이엔드 타이틀을 달고 나온 델타 시그마 DAC과도 그 톤과 결이 확실히 다르다. 또하나. 이번 인티앰프 ‘Telos 590 NextGen’의 풋워크가 매우 경쾌하다. 여러 사운드를 안고 가는데도 발걸음이 무겁거나 힘들어한다는 인상이 전혀 없다. 이 곡이 이리 신나는 곡이었나 싶다.
PianoGuys - Jungle Book Sarabande
Jungle Book Sarabande
내친 김에 좀더 신나는 곡을 골라봤다. 유튜브 5억뷰의 주인공 피아노 가이즈(존 슈미트, 스티븐 샵 넬슨, 폴 앤더슨, 알 반 더 빅)가 지난해 10월 내놓은 ‘ Uncharted’ 앨범 중 ‘Jungle Book/Sarabande’다. 초반 북소리의 타격음이 엄청나다. 말 그대로 정글에 와있는 느낌. 열대 식물들이 내뿜는 고순도 산소로 가득한 밀림이 아주 넓게 펼쳐진다. 뒷벽이 아주 뻥 뚤려버렸다. 이때 갑자기 파고들어오는 첼로의 그윽하면서도 처연한 떨림! 신호대잡음비(SNR)가 매우 높은 상태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청실이 온갖 효과음으로 가득 차 온다. 소위 말하는 음의 샤워다. 그러면서도 소란스럽거나 시끄럽지 않은 것을 보면 인티앰프가 음의 심지를 정확히 짚어주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베릴륨 트위터의 탁트인 개방감도 크게 한몫했을 것이다. 맞다. ‘Telos 590 NextGen’은 골드문트 특유의 쿨앤클리어 사운드를 한 섀시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Vladmir Ashkenazy - Shostakovich Viola Sonata
Meinich Viola
이 곡은 DAC과 앰프가 비올라 특유의 음색을 얼마나 잘 구현해내는지 체크하기 위해 자주 듣는 곡. 비올라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첼로보다 위의 대역을 건드리고 있음이 감지된다. 태생적으로 ‘한이 짙게 서린’ 비올라 사운드가 너무나 쉽게 나왔다. 또한 까칠까칠한 금속 코일 현의 물성과 텍스처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여린 약음들을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대목에서는 과연 이게 인티앰프 한 대에서 나오는 소리인가 싶을 정도. 비올라와 피아노 사이의 원근감과 위아래 위치까지 잘 관찰된다. 이 곡에서 또 놀란 것은 지금까지 음악들을 들려주고 있는 스피커가 ‘북쉘프’였다는 것. 대형기 부럽지 않은 광대역 사운드를, 그것도 어떠한 착색이나 왜곡없이 그대로 들려줬기 때문이다.
“총평”
‘Telos 590 NextGen’은 무엇보다 경쾌하고 투명하며 서늘한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마치 늦여름, 소쇄원에 느닷없이 불어온 시원한 산들바람과도 같았다. 음들이 지저분하게 스피커에 달라붙는 일따위도 없었다. ’울트라 스피드’ 앰프 만들기에 올인해온 골드문트의 설계철학이 인티앰프에서도 꽃을 피운 느낌이다. 이제는 ‘하이 스피드’ 정도가 아니라 ‘울트라 스피드’라 칭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스테이징은 인티앰프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광활했고, 음의 입자 하나하나는 분말처럼 고왔으며, 음상은 비교적 작게 그려졌다. 맞다. 전형적인 하이엔드 사운드다.
안드리스 넬슨스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4악장’(DG 앨범)을 청음하면서 나름 결론 삼아 메모를 해둔 게 있다. 이번 조합의 사운드 특성에 관한 것이다. 이를 끝으로 소개한다. ’바디감, 광활함, 상쾌함, 넓직함, 경쾌함. 이런 덕목들이 자꾸 반복된다. 그리고 이 곡에서 하나 더 추가하자면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에서 여린 음들을 끌고 나아가는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 여린 음에서 어떻게 이처럼 전망이 확 트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갑갑하거나 답답하지가 않은 것이다. 이번 조합이 노이즈 관리를 극한까지 추구했다는 확신이 든다. 어느 경우에나 재생음에 파탄이나 균열이 생기지 않는다. 믿고 몸과 귀를 맡길 수 있는 인티앰프다.’
by 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