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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디오파일이든지, 포칼의 웹사이트를 둘러볼 생각이라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중고등학교 물리시간에 배웠음직한 기본적 전자기 이론부터 역학법칙, 심지어 소재공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요구할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주관적이다 못해 막연하기 그지없는 음질, 음악에의 평가에 객관적이고도 과학적인 펙트를 동원한 최초의 스피커 브랜드가 아마도 포칼일 것이다.
그렇다고 주눅만 들 일은 아니다. 온갖 공식과 그래프에 대한 울렁증이 있다면 그냥 포칼의 사운드만을 즐기면 될 일이다. 그만큼 지난 수십 년 간 포칼이 보여준 하이파이 스피커 분야에서의 신뢰감은 과학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납득할 만한 수준 이상이다. 당신이 이 브랜드를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그 다음의 문제일 뿐,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혁신(Innovation)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업적이 뒷받침 된 상태에서의 실제적 가치이다. 남들은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을 상상하고 또 그것을 검증해 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포칼이라는 브랜드는 특히 이 혁신이라는 분야에 있어서 타 브랜드에서 발견하기 힘든 강점을 보이고 있다. 통상 두어 가지 기술(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을 알파벳 몇 글자로 축약한 것을, 자사 제품의 몇 세대에 걸쳐 꾸준하게 우려먹는 대부분의 스피커 브랜드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생전 만나보지도 못한, 초면임에 분명한 정체 불명 스피커 장인의 솜씨나 귀썰미에만 의지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매번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이전에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신 기술을 꾸준히 들고 나오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더욱이 그 신 기술들은 이론적으로 흠 잡을 데 없는, 하나하나가 독립된 논문으로 내놓아도 좋을 정도의 신뢰성을 보여주고 있다. 약 20여년 전 포칼의 유토피아 라인업이 세상에 첫 선을 보였을 때도 그러했으며 최근 포칼의 신작인 소프라(SOPRA)시리즈가 발표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SOPRA, 팀 킬을 각오한 테크놀로지의 향연
이태리어로 “Beyond and Superb”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SOPRA, 무엇보다 높고 어느 정도 우월한가? 포칼의 작명 센스는 이미 그 이름에서 팀 킬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자사의 기존 제품들보다 우월한 그 무엇(아마도 가성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을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소프라 개발에 사용되었다는 각종 테크놀로지를 살펴보자면 이러한 짐작이 확신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 기술들은 대부분이 스피커의 핵심인 드라이버 유닛 관련으로 집중되고 있다.
1) NIC(Neutral Inductance Circuit)
드라이버 유닛의 주요 스펙인 인덕턴스 값(코일 값)의 리니어리티를 비교한 그래프이다. 쉽게 말해 그래프가 직선에 가까울수록 해당 드라이버 유닛의 전기적/물리적 안정성은 뛰어나고 음 왜곡의 확률은 줄어든다고 이해하면 옳다. 전류 량, 그리고 코일의 감긴 포지션에 따라 인덕턴스 값의 출렁임이 심한 일반 드라이버 유닛에 비해 NIC기술이 적용된 푸른색 라인은 거의 직선에 가까운 안정성을 보이고 있다. 포칼 소프라의 그것과 같은 것이다. 지면상 마저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이 인덕턴스 값 안정화 기술은 음의 왜곡에 대해서도 탁월한 효과를 보여준다. (재미있는 사실은, 포칼 웹사이트에는 동사의 Electra 시리즈의 드라이버 유닛과 비교한 그래프도 있다는 것이다.)
2) TMD(Tuned Mass Damper)
드라이버 유닛의 엣지 부분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의 댐핑 관련 기술이다. 3세대에 걸친 W 샌드위치콘 드라이버 유닛 개발에 사용되었던 기술 중 하나이며 소프라 출시에 발맞추어 비로소 완성된 서스펜션 시스템 되겠다. TMD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장 이상적인 드라이버 유닛의 엣지 특성은 무엇인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드라이버 유닛이 보이스 코일에 의해 진동을 발생시키면 필연적으로 여진동이 남게 되고 이 여 진동은 드라이버 엣지에 전달된다. 그리고 이 여 진동은 다시금 유닛의 진동판을 흔들어대어 음의 혼탁화를 초래하게 된다. (소리가 뭉개진다는 표현이 알맞다.) 때문에 드라이버 유닛의 엣지에는 댐핑이라는 서스펜션 특성이 필요한 것이며 이것은 자동차 현가장치의 스프링과 쇼크업소버(Shock-Absorber)와의 관계와 동일하다. 자동차에, 일명 “쇼바”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 보라. 운전자는 극심한 멀미에 시달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TMD기술은 기본적으로 레이싱 머신의 서스펜션 구조에서 영감을 얻은 원리를 응용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댐핑력을 연출하는 서스펜션(Suspension)을 드라이버 유닛의 엣지에 구현한 것인데, 두 개의 튜브 타입 구조물을 드라이버 엣지에 사용하여 댐핑을 컨트롤 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이 튜브의 직경 및 거리비율 등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해 철저히 계산된 결과물이다.
*좌측이 TMD가 적용되지 않은 일반 드라이버 유닛의 엣지, 우측이 TMD가 적용된 그것이다.
진동이 발생함에 따라 불규칙적으로 출렁이는 엣지의 형태 자체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 TMD 기술 또한 앞서 설명한 인덕턴스 안정화 기술(NIC)와 마찬가지로 소프라의 미드/베이스 유닛에 선보이는 테크놀로지이며 음의 왜곡과 변형을 최대한 억제하는 데에 그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우퍼 유닛이 아무리 빠르게/격렬하게 떨어대더라도 일말의 간섭과 왜곡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한 베이스 재생의 근간이 된다.
3) IHL(Infinite Horn Loading)
- 베릴륨을 이용한 가장 차별화 된 노하우
포칼 입장에서는 이미 오래 전 기술에 해당하는 역돔형 베릴륨 트위터의 퍼포먼스를 극대화 하기 위해 고안한 장치가 IHL이다. 비단 포칼의 베릴륨 트위터 뿐 아니라 모든 트위터 드라이버들은 고음 재생 전용인 까닭에 상대적으로 진동/간섭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트위터 자체에서 만들어지는 후면 방사파(트위터 진동판 뒷면으로 발생하는 역 위상의 진동)는 반사/회절 되어 본래의 진동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는데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포칼에서 제시한 특허 등록 기술이 바로 IHL(Infinite Horn Loading)이다.
IHL은 포칼의 예전 특허 기술인 IAL과는 완전히 상반된 컨셉이다. 베릴륨 트위터의 후면부를 완전히 개방하되, 특별히 설계된 혼 타입의 덕트를 통해 후면 방사파를 효과적으로 제거한다는 아이디어. 후면으로 전개되는 혼 내부에는 댐핑재로 가득 차 있으며 트위터의 후면 방사파는 이 덕트의 모양대로 확산되다가 자연스럽게 댐핑재에 흡수/소멸되는 구조이다. 댐핑재, 즉 흡음재의 역할은 제한된 크기의 혼(Horn) 구조를 마치 무제한의 길이를 가진 것처럼 연출하는 것이다. 제한된 에너지의 트위터 후면 방사파는 무제한(Infinite)의 백 로드 혼을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것이다. 스피커 인클로저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트위터의 해상력 증가에 크게 기여하는 기술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트위터 챔버는 사출된 폴리우레탄 재질로 일체화 되어있다.
동일 트위터 유닛에 대한 IHL 적용유무를 비교한 그래프이다. 푸른 그래프가 IHL적용 드라이버이며, 동일 주파수 대역에서 보다 리니어 한 특성을 보여주는데, 이는 그만큼 트위터 원음에 간섭이나 왜곡이 줄어들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해상력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소프라의 Identity, “가장 포칼다운 사운드& 디자인”
각 드라이버 유닛 관련 기술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바로 왜곡 제거와 음의 순도 유지라고 할 수 있다. 포칼 고유의 사운드 특성, 즉 순발력 있고 정확한 저음역 재생이라든지, 투명도 높은 고음역의 클리어런스 등은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프라에 이르러서도 이런 포칼다운 사운드를 다듬어내는 작업은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기 기술한 소프라 라인업의 고유 기술들은 어찌 보면 상위 모델인 유토피아의 입지를 흔들 수도 있는 것들이다. 심지어 소프라의 인클로저는 프랑스 부본-란시(Bourbon-Lancy)에 위치한 유토피아 시리즈의 생산 라인과 동일하다. 당신이 소프라의 디자인을 보고 첫 인상에서 바로 유토피아를 떠올렸다면 아마도 포칼 측이 의도한 바가 제대로 표현되고 있는 것에 다름없을 것이다.
인클로저 자체 설계 또한 포칼이 유토피아 시리즈 개발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시간 축 정합(Time Alignment)기술을 고스란히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각 드라이버에서 방사되는 소리의 파형이 청취자의 포지션에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도달하게끔 의도한 기하학적 설계는 소프라의 포칼 내에서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지면관계상 포칼의 감마 스트럭처(Gamma Structure)인클로저 설계라든지, W샌드위치 콘 미드/우퍼 구조, 베릴륨 트위터의 특이점 등은 생략하기로 한다. 포컬의 테크놀로지를 모두 이해하려면 진짜 제대로 공부할 각오를 하고 포칼 웹사이트를 탐독하기를 권한다.)
일렉트라 시리즈와는 비교 불가, 유토피아 시리즈에 놀랍도록 근접해 있다
유토피아 시리즈부터 엔트리 급의 과거 코러스 라인업까지 포칼이 지향하고 있는 사운드 포인트는 명확하다. 빠르고 정확하며 왜곡을 지양하고 풍부한 정보량을 바탕으로 극도의 해상력을 추구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포칼의 특성을 현대적, 또는 오디오적 쾌감 위주의 사운드라고 평하곤 한다. 때문에 미루어 짐작하기를 포칼은 현대적 음악, 강렬한 비트에 최적화 된 소리를 내준다고(따라서 클래식 음악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는데 필자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다. 스피커가 음악의 장르와 형태를 가린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왜곡이 사람의 귀에 일부 좋게 들릴 수도 있고(고음역의 인위적 롤-오프 등) 타이밍이 밀리는 저음역에서의 정체현상이 의도치 않은 저음의 밀도감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하지만 우연으로 만들어진 가치는 분명 그 한계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타이밍이 있으며 그 시점에 이르러서는 이미 그 스피커를 컨트롤하여 원하는 소리를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물론 포칼은 이 점을 매우 잘 알고 있는 브랜드이다.
아무튼, 포칼은 음악적 특성을 가리는 스피커가 절대 아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클래식 음악이라고 해서 빠르고 정확한 재생 특성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청음을 해 보아도 모든 포칼의 스피커들은 대편성 오케스트라 등의 복합적인 음악 소스에서 강세를 보이며, 특히 일렉트라 이상 급의, 베릴륨 트위터가 사용되기 시작하는 라인업부터는 전 대역의 질감표현이 매우 사실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프라 시리즈에 이르러서는 유토피아에서 느꼈던, 공간을 아우르는 스테이징과 그 사실적 표현력이 소름 끼치도록 디테일 하게 뿜어져 나온다. 클래식 애호가들이라고 해서 이런 짜릿한 경험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필자는 이번 리뷰에서만큼은 각종 음반을 시청하여 기술하는 청음평을 생략하고자 한다. 어떤 음악은 어떻게 들리고 이 장르에서는 이런 특성이 있고 하는 비교 기술 자체가 큰 의미 없기 때문이다. 해당 음반의 원음이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대비교는 불가하지만, 포칼 소프라 시리즈 스피커를 통해 음반을 감상했을 때, 이 사운드가 원음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감상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경험은 실로 오랜만에 겪는 것이다. 부족함과 과잉이 없는 밸런스감, 그리고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이 소리의 질감이 실제 한다는 확신은 리얼리티 그 자체라고 평할 수 있겠다. 포칼이 수십 년을 이어온 기술적 탐닉의 뼈대, 그리고 그 골격을 고스란히 감싸 안고 있는 스타일리쉬한 디자인과 피니시는 소프라에 이르러 비로소 그 정점을 찍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