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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유토피아 스피커를 헤드폰으로 변환하다, FOCAL UTOPIA
REVIEW   |   Posted on 2016-07-06

본문




 

포칼 유토피아 (Focal Utopia)


그랜드 유토피아 스피커를 헤드폰으로 변환하다

 

 

 

 

글.사진 : 루릭 ( luric.co.kr , @Luri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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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헤드폰'의 시작

 

하이파이 오디오를 만들던 회사에서 헤드폰을 내놓는 경우는 제법 많지만, 헤드폰을 주로 만드는 회사와 잘 경쟁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헤드폰은 라우드 스피커의 축소판이므로 하이파이 오디오 회사가 쉽게 만들 수 있을 듯 하지만 헤드폰이 지향하는 바와 라우드 스피커가 지향하는 바는 상당히 다릅니다. 거실에 오디오 시스템을 갖춘 분들은 100~200만원 이상의 헤드폰을 써봐도 만족을 못합니다. 어떻게 해도 헤드폰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매일 앞에 두고 듣던 소리를 머리에 올려서 듣는 어색함은 둘째치고, 음악 감상의 결정적 즐거움이라 여겨왔던 '그것'이 헤드폰에는 없습니다. 반대로 이어폰 헤드폰으로 음악 감상을 시작한 사람들은 하이파이 오디오 회사에서 내놓는 헤드폰의 소리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아직은 헤드폰 전문 회사에 비해 노하우가 부족하다 - 이렇게 여기기 쉽지요.

 

잠깐.

 

위의 문단에서 이상한 부분을 찾아봅시다. '그것'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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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는 사람들은 실제로 음악 공연에 자주 가는 편입니다. 정기적으로 티켓을 구입하여 콘서트홀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실제로 듣는 것이 메인 메뉴이며, 집에서 스피커로 음반을 듣는 것은 콘서트홀의 감흥을 훌륭하게 재현하는 서브 메뉴(?)에 속합니다. 헤드폰으로 음반을 감상하면 소리가 귀에 가까워져서 면밀히 살펴볼 수 있게 되지만 콘서트홀의 감흥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음악이 연주되는 공간, '콘서트홀'과 '집의 거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약을 해서 그냥 '공간'이라고 해봅시다. 그래서 스피커 사용자와 헤드폰 사용자를 함께 두고 같은 스피커와 헤드폰의 소리를 들려주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예를 들면, 플랫한 소리의 젠하이저 HD800을 스피커 사용자에게 들려줄 경우 저음이 너무 약하고 선이 가늘게 들린다고 평가할 확률이 높습니다. 반대로 헤드폰 사용자에게 대형 스피커의 오디오 시스템을 들려주면 저음이 너무 울려서 고.중음이 선명하지 않으며 분리도가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스피커 사용자는 스피커를 앞에 두고 들으며 방 안을 채우는 개념으로 감상해왔고, 헤드폰 사용자는 스피커를 귀에 가깝게 두고 머리 속에 담는 개념으로 감상해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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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만약, 헤드폰이 라우드 스피커처럼 '공간'을 재현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프랑스의 ‘포칼-JMLab’(이하, 포칼)은 라우드 스피커와 스피커 드라이버 유닛을 주로 제작하는 오디오 기업입니다. 이어폰 헤드폰 유저 여러분은 아마도 포칼 스피릿(Spirit) 헤드폰으로 몇 번 이름을 들어보셨을 텐데, 하이파이 오디오 하는 분들은 대부분 알고 계실 정도로 유명합니다. 스피릿 헤드폰이 처음 나왔을 때 포칼 스피커를 사용해봤거나 소유 중인 오디오 매니아들이 관심을 가지고 구입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어폰 헤드폰을 주로 사용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형의 밀폐형 헤드폰인 스피릿 시리즈는 최대한의 플랫 사운드를 지향하며 사운드 이미지가 머리 속에 맺히는 일종의 스튜디오 모니터링 헤드폰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스피릿 시리즈는 저를 포함한 다수의 헤드폰 사용자들로부터 '극히 중립적인 음색의 헤드폰'으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2016년 6월 14일, 포칼은 깜짝 발표를 합니다. 스피릿 시리즈 이후 헤드폰 소식이 한참 동안 없었는데, 갑자기 하이엔드 헤드폰을 내놓은 것입니다. 총 3개의 모델이며 대중적 타깃의 실외용 헤드폰 '리슨(Listen)', 풀 사이즈 오픈형 헤드폰 '일리어(Elear)', 그리고 헤드폰으로써는 하이퍼 등급의 모델인 '유토피아(Utopia)'로 구성됩니다. 일리어는 유토피아의 구조를 그대로 지니되 다른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1천달러대의 고급형 헤드폰이며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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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소개해드릴 포칼의 플래그쉽 헤드폰 '유토피아(Utopia)'는 헤드폰으로 할 수 있는 실험의 한 획을 그은 상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배경을 설명드려야 하겠습니다.

 

포칼 유토피아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헤드폰들은 기본적으로 '스테레오'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좌우 채널을 사람의 머리에서 재생하여 음의 초점이 머리 속에 맺히게 됩니다. 밀폐형 헤드폰들은 모두 이런 구조라고 보셔도 좋으며, 풀 사이즈 오픈형 헤드폰의 경우는 볼륨을 높여서 들을 때 하우징 바깥으로 나가는 소리가 좌우 교차하면서 조금씩 라우드 스피커의 현장감을 맛보게 해주기도 합니다. 물론 포칼 유토피아도 라우드 스피커의 '공간' 개념이 아닌 스테레오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헤드폰입니다. 스피커 한 조를 앞에 두고 듣는 것과 머리에 쓰고 듣는 것은 본질적 차이가 있으니 당연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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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토피아는 결정적인 차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 물건을 개발한 회사가 제품을 헤드폰으로 여기지 않고 오로지 라우드 스피커라고 생각하며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비유가 엉뚱하지만 단어를 만들어본다면, 포칼의 스피릿 시리즈는 스테레오 헤드폰이며 유토피아와 일리어는 '공간 헤드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드폰 속에 들어가는 드라이버의 소리 성향부터 하우징(인클로저)의 구조 까지 모두 라우드 스피커의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서 설계된 듯 합니다. 저는 유토피아와 일리어가 공개되기 한 달 전부터 수입사를 통해 포칼 본사의 제품을 빌려서 사용해왔으며, 총 45일 동안 제품을 곁에 두고 감상한 후 결론을 내렸습니다. 포칼 유토피아는 라우드 스피커를 오랫동안 만들어온 회사가 아니라면 만들 수 없을, 공간 헤드폰의 시작점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의 헤드폰 개발 분야에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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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카를 연상하게 만드는 디자인과 소재

 

유토피아는 커다란 가죽 상자에 담겨서 배송됩니다. 그 속에는 폼 완충재가 가득하며 헤드폰 본체와 케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수백만원대의 헤드폰이지만 구성품은 본체와 케이블이 전부입니다. 가죽 상자가 고급스럽긴 하지만, 스탠드라도 기본 포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포칼에서 유토피아 출시와 함께 공개한 고급형 스탠드는 별매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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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폰을 꺼내어 살펴봅니다. 일단 무겁습니다. 케이블 제외하고 490g이라는데, 본체만 손으로 들어봐도 묵직한 느낌이 옵니다. 다이내믹 드라이버의 무게보다는 테두리의 하우징 무게가 상당히 나갑니다. 아마도 포칼 스피커의 인클로저 제작 방식과 동일하게 목재로 만들고 고광택 도장을 한 듯 한데 제 짐작일 뿐이니 참조만 하시기 바랍니다. 이후 설명하겠지만 포칼 스피커의 인클로저와 거의 동일한 강도와 감촉을 지니고 있음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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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의 기본 용도는 거실에 갖춘 오디오 시스템에서 앰프의 헤드폰 출력에 연결하여 소파에 기댄 자세로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케이블의 길이가 무려 4미터나 됩니다. 게다가 굵고 무거운 케이블입니다. 책상 위에 헤드폰 시스템을 갖추고 듣는다면 케이블 정리가 필요하겠습니다. 좌우 채널이 분리되어 있으며 2핀 Lemo 커넥터로 탈착하게 됩니다. 예상해보건대 이후 4핀 XLR 커넥터로 밸런스 연결하는 케이블을 별도 판매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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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의 디자인과 소재는 직접 경험해본다면 모두들 한 가지 단어를 떠올릴 듯 합니다.

 

'스포츠카!'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데요. 유토피아는 매우 편안한 착용을 추구하면서도 누구나 고급스럽다는 생각을 하도록 디자인됐습니다. 두툼한 헤드밴드와 이어패드는 모두 천연 양가죽으로 만들었으며 헤드밴드와 이어컵을 연결하는 파트는 카본 파이버로 되어 있습니다. 올블랙의 금속과 가죽 바탕에 카본 파이버 패턴이 어우러지니 저절로 스포츠카를 떠올리게 됩니다. 또한 하우징 바깥쪽과 헤드밴드 양쪽 끝 부분의 알루미늄 데코는 테두리를 깎아내어 번쩍거리게 해놓았습니다. 처음 볼 때는 그냥 검은색 헤드폰인데, 곁에 두고 여러 조명 환경에서 보게 되면 휘향찬란한 럭셔리 헤드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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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폰의 외모에 대해서는 다들 취향이 있을 터이니 직접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편안한 착용감은 취향과 관계없는 '사실'이라고 봅니다. 상당히 무거운 헤드폰임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는 머리를 압박하지 않으며 장시간 착용해도 부드러운 쿠션으로 머리와 귀 주변을 감싸줍니다. 디자인과 소재 만큼이나 착용감이 고급스럽다 하겠습니다. 또, 헤드밴드가 여유롭게 늘어나므로 머리가 크거나 귀 높이가 낮게 되어 있는 분들도 착용할 수 있습니다.

 

 

순수 베릴륨으로 만든 M자 모양의 진동판

 

포칼 유토피아와 일리어는 head-fi.org에서 자세한 정보와 함께 공개된 바가 있습니다. 이 때 포칼의 Nicolas Debard가 인터뷰를 통해 제품 관련 정보를 설명했습니다. 몇 가지 번역 및 요약을 해보니 테크놀러지 쪽에서 진화된 부분이 보입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jVUG6ewo_J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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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제품의 개발에는 약 4년이 걸렸으며 모든 부품의 생산과 헤드폰 조립을 포칼 본사의 공장에서 진행한답니다. 유토피아와 일리어는 말 그대로 '프랑스제 헤드폰'인 겁니다. (그래서 비싼 것인가!) 이 제품들의 개발이 시작된 동기는 그 어떤 헤드폰으로도 '그랜드 유토피아 EM' 같은 고급 라우드 스피커의 소리 느낌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헤드폰의 개발 목표를 '포칼 스피커와 동일한 감상 경험'으로 잡았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고려한 점은 오픈형 헤드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크로스오버 네트워크가 있는 멀티 드라이버 구성이나 주파수 응답 조정을 위한 패시브 필터를 아예 쓰지 않고 풀레인지 라우드 스피커를 만든다는 생각입니다. 헤드폰이라기보다는 청취자와 가깝게 두고 듣는 니어필드 리스닝(Near-field Listening) 스피커로 보고 개발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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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방법론에 의해 두 가지 기술적 진화가 이뤄졌다고 합니다. 첫째는 M자 모양의 돔(M-shape Dome)입니다. 드라이버의 진동판을 옆에서 보면 그 단면이 M자 형태라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라우드 스피커의 소리가 청취자의 귀에 도달할 때의 웨이브 폼을 형성하기 위해서 헤드폰 드라이버의 진동판 형태를 만든 결과, 중앙부의 돔이 훨씬 크고 테두리가 좁은 모양이 됐습니다. 이로 인해 더 넓고 큰 보이스 코일(25 x 4.4mm)을 적용할 수 있게 됐으며, 보이스 코일이 진동판 테두리 쪽으로 최대한 물러나 있기 때문에 진동판 뒤쪽이 곧바로 뚫려서 저음의 증폭 및 공간감 형성을 합니다. 즉, 드라이버 자체가 라우드 스피커의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는 질량과의 싸움입니다. 진동판과 보이스 코일을 극도로 가볍게 만들어야 한답니다. 이것은 특히 고음의 확장에 필요하다는데, 유토피아와 일리어의 보이스 코일에는 형태를 고정하는 구조물(Former)이 없습니다. 그 대신 진동판의 테두리에 매우 탄력이 좋은 완충재를 설치했습니다. 그래서 극히 가벼운 소재의 진동판이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진동판 소재는 유토피아가 베릴륨을 사용하며, 일리어는 알루미늄과 마그네슘의 합금을 사용합니다. 순수 베릴륨으로 제작된 유토피아의 진동판은 극히 가볍고 단단해서 디스토션을 최소화합니다. (알루미늄, 티타늄을 크게 앞서는 수치) 그리고 댐핑 능력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서 베릴륨 소재로 용수철을 만든다면 한 번 튕겼을 때 베릴륨 용수철은 다른 소재의 용수철보다 훨씬 빨리 진동을 멈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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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위의 인터뷰 내용에서 모든 노하우가 공개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유토피아는 귀로 듣기에 실로 즐겁고 감동적인 헤드폰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기술 못지 않게 라우드 스피커 시스템의 느낌을 사람이 파악하고 헤드폰에게 주입하는 일련의 과정이 있었으리라 예상합니다. 유토피아의 소리는 플랫 사운드를 지양하며, 음색 왜곡이 없는 한도 내에서 최대의 웅장한 규모를 형성합니다. 충분히 공간감이 좋다고 여겨온 100~200만원대 오픈형 헤드폰은 물론 400~500만원 이상의 하이퍼급 헤드폰과 비교해봐도 유토피아에서만 느껴지는 연주 공간의 현장감이 있습니다.

 

 

 

S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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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 : Circum-aural open back headphones

Driver : 40mm pure Beryllium M shape dome

Frequency Response : 5 ~ 50,000 Hz (-3 dB)

Impedance : 80 Ohms

Sensitivity : 104 dB SPL / 1mW at 1kHz

THD : <0.2% at 1kHz / 100dB SPL

Weight (without cable) : 490 g

Connecting cable : 6.35mm Neutrik stereo Jack connector (to amplifier), 2 shielded 9.5mm Lemo connectors with self-locking bayonet system (to headphones), 4m OFC shielded extremely low impedance (<90 mOhms) cable

 

제가 음향 기기 감상문을 작성하기 시작한 것이 2004년 후반이었고 헤드폰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11년 10월부터였습니다. 그 후로 현재까지 150~180대 정도의 헤드폰을 각각 1~2주 이상 사용해보고 정성 분석하는 글을 써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1~2년 간 헤드폰 시장에 새로운 흐름이 오고 있습니다. 라우드 스피커의 하이파이 오디오를 쓰던 사람들이 휴대용 고해상도 재생기(Hi-Res DAP)에 관심을 갖게 되거나 서재에서 혼자 들을 헤드폰을 찾으면서, 기존과는 다른 소리를 추구하는 헤드폰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요. 저는 이런 제품들을 대충 ‘이어 스피커(Ear Speaker)’라고 부릅니다.

 

이어 스피커라는 단어는 STAX를 비롯한 여러 헤드폰 회사에서 사용해왔으나, 이제는 주파수 응답의 형태나 드라이버 및 하우징 설계 측면에서 정말로 라우드 스피커를 따라가는 헤드폰이 출시되는 중입니다. (예: Final Sonorous X, Obravo HAMT-1 등이 있으며 이어폰도 Cardas A8, PSB Speakers M4U 4, Final Piano Forte X 등이 이어 스피커를 지향함) 이어 스피커 제품을 스테레오 개념의 헤드폰을 사용해온 사람들이 들으면 중저음의 강한 울림 현상이 있어서 해상도가 낮다고 판단하기 쉽겠으며, 현재 산업 기준으로 측정하면 고.중.저음의 균형이 틀어졌거나 왜율이 너무 높은 것으로 나올 겁니다. 저도 오디오샵의 협조를 통해 25편 정도의 하이파이 오디오 후기를 작성하기 전까지는 이어 스피커의 소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요컨대 헤드폰에서 스피커 느낌을 내려면 여태까지 헤드폰 업계에서 지향하거나 지켜왔던 기준을 하이파이 오디오 업계의 것으로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포칼 유토피아를 일종의 상징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어 스피커라는 분류의 첫 번째 특성은 ‘하우징 속에서 저음이 울리는 현상’입니다. 방 안에서 스피커로 음악을 들으면 저음의 진동이 청취 공간 속으로 퍼지게 되는데 이것을 머리 주변에서 표현하려면 하우징 내부에서 저음이 더 많이 울리도록 조율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울림 효과가 고.중음의 해상도를 쉽게 떨어뜨린다는 것입니다. 이제서야 개척 중인 분야라서 뭐라고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우나 이것 하나는 분명해보입니다. 훌륭한 이어 스피커라고 한다면 저음의 울림 효과와 더불어 고.중음도 투명하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헤드폰의 명료한 디테일 전달과 스피커의 생생한 현장감을 모두 경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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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칼은 유토피아와 일리어를 만들면서 바로 이 점을 달성한 모양입니다. 두 제품 모두 저음의 울림 효과를 통해 라우드 스피커의 현장감을 구현하면서 동시에 고.중음의 선명한 전달을 해냅니다. 그리고 일리어와 유토피아의 가격 차이가 매우 큰 이유는 유토피아의 소리 해상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두 헤드폰의 성격은 흡사한데, 유토피아는 라우드 스피커로 음악을 듣다가 헤드폰으로 바꿔도 아직 스피커가 켜져 있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헤드폰이 사라지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제가 후기를 작성한 유사 가격대의 헤드폰으로는 Audeze LCD-4, JPS Labs Abyss AB-1266이 있는데 포칼 유토피아는 해당 제품들과는 또 다른 소리로 라우드 스피커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LCD-4와 AB-1266은 평판형 자석(Planar Magnetic) 드라이버를 쓰는 수백만원대의 헤드폰이며 기본적으로 평탄한 주파수 응답을 보입니다. 고.중.저음의 비중을 균등하게 맞춘 바탕에서 소리의 정확도, 투명함, 강한 에너지 등을 달성하여 헤드폰이 사라지게 만드는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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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토피아는 제 청취 경험으로 예상해보건대 평탄한 주파수 응답 형태가 나오지 않을 것이며 고음보다는 중저음이 크게 강조된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만약 LCD-4, AB-1266과 비교 청취해보신다면 유토피아의 소리가 덜 맑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라우드 스피커의 하이파이 오디오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저음형 헤드폰인데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정도의 평가를 내려도 충분히 정상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하이파이 오디오, 특히 포칼의 스피커로 시스템을 꾸려서 감상해왔다면 유토피아는 ‘드디어! 스피커를 대신할 헤드폰이 나왔다!!’라고 평가하시게 될 겁니다. 여건 상 오디오 시스템을 자주 쓸 수가 없어서 앰프의 헤드폰 출력에 연결할 헤드폰을 하나 장만해야겠는데 비싼 헤드폰들의 소리를 들어봐도 ‘그것’이 부족해서 포기했다면, 이제는 그 대안을 찾을 수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어쨌든 주관적이지만 포칼 그랜드 유토피아 EM 스피커의 소리를 헤드폰 유토피아와 직접 비교 청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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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갔을 때 그랜드 유토피아 EM은 NAGRA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었으며 NAGRA HD DAC의 헤드폰 포트에 유토피아를 연결한 후 CD 음반을 재생하고 전면 셀렉터로 변경하며 비교 청취했습니다. 이 경험으로 저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데, 유토피아는 공간감과 음색 양면에서 그랜드 유토피아 EM과 거의 동일한 느낌을 줬습니다. 네, 이것은 증언입니다. 포칼의 Nicolas Debard는 겸손하게도 ‘스피커의 니어필드 리스닝 경험 정도는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했지만 유토피아와 그랜드 유토피아를 대놓고 비교 청취해보니 그 이상입니다. 그랜드 유토피아 EM 시스템을 거실에 구축해놓은 사람도 밤에 혼자서 음악을 들을 때 유토피아를 머리에 쓴다면, 그랜드 유토피아 EM의 사운드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떠올리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스피커로 감상 중인데 밤이라서 볼륨만 줄인 듯한 느낌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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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임피던스 80옴, 감도 104dB 정도로 제법 구동이 쉬운 헤드폰입니다. 헤드폰 앰프에 연결하면 볼륨을 조금 줄여야 하며 게인(Gain)이 높게 잡힌 앰프에 연결했다면 너무 크게 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NAGRA HD DAC의 헤드폰 포트로 감상할 때는 그랜드 유토피아 EM으로 들을 때보다 볼륨을 크게 줄여서 감상해야 했습니다. 이처럼 구동하기 쉬운 헤드폰이지만 아쉽게도 헤드폰 구매 비용 못지 않게 재생기와 앰프 가격도 올려야 할 듯 합니다. 소출력 기기에 연결하면 고음의 선명도와 저음의 웅장함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PC의 적은 전력으로 작동하는 미니 USB DAC가 그렇습니다. 소리는 쩌렁쩌렁 크게 나오는데 소리의 품질은 미묘하게 다운그레이드되더군요. 또, 고해상도 재생기에 바로 연결해서 들어도 되지만 더 좋은 음을 위해서는 게인(Gain)을 높게 잡으시기 바랍니다. 거치형 헤드폰 앰프를 쓴다면 별도의 파워 서플라이가 더해질 경우 그 효과가 좋을 것입니다.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질감에서 그렇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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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문은 젠하이저 HDVD800을 주로 사용하며 작성했고 Pro-Ject Audio 헤드박스 RS, AnalogDesign 스베트라나에 연결해서 들어본 경험도 종합해봤습니다. 이 중에서 헤드박스 RS와 스베트라나가 HDVD800과 확연히 차별되는 느낌을 줬는데, 헤드박스 RS와 스베트라나는 진공관 앰프입니다. 풀 레인지 스피커가 진공관 앰프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떠나서 유토피아는 짝수 배음과 참으로 잘 어울리는 헤드폰이라고 봅니다. 유토피아 정도의 헤드폰을 구입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오케스트라 연주를 많이 들을 터인데 약간 느린 소리를 선호한다면 진공관 헤드폰 앰프 또는 진공관 인티 앰프의 헤드폰 출력을 권하고 싶습니다. 트랜지스터 앰프에서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소리지만 유토피아를 진공관 앰프에 연결하면 고.중음의 편안한 잔향과 더불어 더욱 웅장한 저음의 울림을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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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의 소리는 편안하고 따뜻한 휴식을 지향합니다. 각 음역의 연결이 매우 자연스러워서 청각의 피로도(Fatigue)가 거의 없으며, 청취자의 마음을 진정시키되 화려하고 웅장한 경험으로 조금씩 들뜨게 만듭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나 거룩한 대서사시 - 이런 것과는 반대의 성향이라고 봅니다. 헤드폰 소리의 분위기가 삶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으며 대단히 긍정적인 마음을 표출하고 있군요. 물론 진지하거나 어두운 분위기의 악곡을 유토피아로 감상해도 녹음된 소리를 투명하게 전달한다는 성능적 측면과 연주회장의 생동감을 묘사하는 라우드 스피커 경험 모두에서 높은 만족이 있을 것입니다. 그저 제가 생각해볼 때 유토피아는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쓰다듬거나 기운을 북돋워주는 경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헤드폰으로 듣는 음악의 ‘분위기’도 그 쪽으로 맞춰주면 좋겠습니다. 클래식 악곡에서는 단연코 대규모의 오케스트라 연주에 잘 맞으며 소편성이나 현악 4중주 정도의 연주는 물론 피아노, 드럼, 더블베이스 정도로 구성된 재즈 연주에서도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헤드폰의 소리는 고음이 강하지 않으며 중음부터 초저음까지 계속 상승하는 형태를 보입니다. 그래서 처음 들을 때는 따뜻한 음색의 저음형 헤드폰처럼 느껴진다는 것인데요. 그러면 먼저 유토피아의 저음부터 살펴봅시다. 저음의 양이 무척 많으며 흐름이 나긋나긋해서 딱딱 끊어주는 인상은 없지만 의외로 모든 음역의 응답 속도가 빠릅니다. 소리가 크게 울렸을 때 잔향이 발생하는 부분은 저음 쪽이며 고.중음 쪽은 높은 밀도와 고운 질감으로 깔끔한 마무리를 합니다. 저음의 펀치는 길고 묵직하게 누르는 형식인데 울림의 끝은 둥글고 통통 튀는 듯한 탄력이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그저 부드러운 소리 같지만 내면은 생각보다 간결하고 정확한 인상을 준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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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규모의 저음은 유토피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겠습니다. AB-1266의 소리를 들었을 때 귓바퀴 주변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초저음의 존재에 깜짝 놀랐는데 유토피아도 동일합니다. 단, 사람을 긴장시키거나 압도하는 목적의 초저음이 아니라, 음악 속에 부드럽게 빠지도록 유도하는 현혹 용도의 초저음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저음의 웅장함은 여전히 저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휘몰아치듯 연주하는 부분을 경험하고 싶을 때 말러 5번 교향곡 1악장을 들어봅니다.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유토피아는 관현악기와 타악기 모두가 동시에 연주되는 그 순간 마치 해일이 밀려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게다가 그 해일에는 명확한 계층이 존재합니다. 바닥부터 깨끗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오는 저음부터 가장 높은 곳에서 작은 지름으로 급격하게 회오리치는 고음이 고스란히 밀려오는 것입니다. 저 거대한 파도가 나를 덮칠 것임을 알면서도 파도의 아름다운 형태에 매료되는 경험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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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특징은 저음의 울림과 잔향이 먼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한 감각입니다. 그 위치가 청취자의 앞에 놓인 라우드 스피커와 비슷합니다. 만약 DAC와 통합된 헤드폰 앰프 중에서 바이노럴 효과나 크로스피드 옵션이 있는 제품을 쓴다면 유토피아의 스피커 성향이 제대로 작용하리라 예상합니다. 그리고 귀 양 옆으로 소리가 넓게 발사되는 느낌이 탁 트인 듯한 개방감을 줍니다. 오픈형 헤드폰이라면 개방감은 당연하지 않은가? -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개방감은 다른 오픈형 헤드폰(예: HD800)보다 더욱 강합니다. 굳이 비교한다면 Grado 헤드폰 이상의 개방감이라고 봅니다.

 

중저음보다 비중이 낮지만 고음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따뜻한 중저음의 온도로 인해 소리 전체가 포근하게 느껴지지만 고음은 상당히 밝으며 초고음 악기가 연주되면 여지없이 화려한 기교를 발휘합니다. 포칼에서 유토피아 속 드라이버의 고음을 튜닝할 때 거친 질감이 생길 수 있는 낮은 영역은 줄이고 소리의 선명도를 담당하는 높은 영역은 일부만 조금씩 강조한 모양입니다. 여기에서 베릴륨 진동판 드라이버의 성능을 체감하게 되는데, 13kHz 이상에서 음악의 현장감을 전하는 초고음역까지 뚜렷한 존재감이 있습니다. 약간 어둡거나 담백한 음색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듯 하며, 오디오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간단하게 생각해도 되겠습니다. 포칼의 스피커 음색을 좋아한다면 유토피아도 마음에 드실 겁니다. 그 반대라면 아무리 유토피아의 완성도가 높다고 해도 취향에 맞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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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는 스피커를 대신하는 홈 오디오 뿐만 아니라 녹음실에서 사용하는 모니터링 헤드폰으로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가수용이 아니라 레코딩 엔지니어용) 이 헤드폰의 소리는 평탄하지 않을 뿐 각 악기의 음을 정확히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넓고 명확한 음상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또, 대체로 따뜻한 음색의 헤드폰이지만 음을 왜곡하는 경향이 거의 없습니다. 소리를 가깝게 두고 분석할 수도 있으며 소리로 채워지는 공간의 특성을 파악하기에도 좋겠습니다. 혹시 바이노럴 레코딩을 한다면 그 용도에도 잘 맞을 듯 합니다. (헤드폰 구입 예산은 크게 초과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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