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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루릭 ( luric.co.kr , @LuricKR )
왜 그들은 거실에서 쫓겨났는가
헤드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정보를 찾아 다니는 분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 이유가 전부(?) 똑같습니다. 라우드 스피커를 사용해서 거실에 하이파이 오디오를 갖춰놓았는데 크게 음악 좀 틀어보려고 하면 여우(집 안의 절대 군주) 같은 마눌님과 토끼(만렙 상태) 같은 따님들이 싫어해서 결국 방이나 서재로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좀 굵어진 아드님들은 아버지 옆에서 같이 듣다가 나중에 오디오 덕후가 되니 주의가 필요)
작은 방에 인티앰프와 북쉘프 스피커로 오디오를 꾸려도 좁은 청취 공간에서는 원하는 소리를 만들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결국 답은 하나 - 오디오 꾸릴 비용으로 헤드폰 시스템을 만듭니다. 하지만 여태껏 헤드폰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분들은 고민이 커집니다. 휴대용 헤드폰 앰프나 고해상도 재생기(High-Res DAP) 하나만 있으면 대충 해결이 되는 이어폰 시스템과 달리 헤드폰 시스템은 하이파이 오디오처럼 거치형 소스 기기(DAC, 헤드폰 앰프 등)와 각종 케이블(헤드폰 케이블, 인터 케이블, 파워 케이블, 각종 디지털 케이블)이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헤드폰 시스템에서 비용 효율이 좋은 구성은 ‘헤드폰을 고급으로 구입하고 소스 기기와 케이블을 중급으로 갖춘다’이지만, 이미 하이파이 오디오에 적응된 청각을 만족하려면 결국 전부 고급형으로 갖추게 됩니다.
몇 년째 수많은 헤드폰 및 관련 제품의 후기를 작성해온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겁니다. 잘 찾아보면 보급형 또는 중급형 수준의 가격으로도 고급형 수준의 소리 품질을 제공하는 소스 기기가 있으며, 케이블도 막선만 탈출한 수준인데 더욱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제가 계속 프로젝트 오디오의 제품을 소개하는 이유도 그렇습니다. 부담 없는 가격의 입문형 헤드폰 앰프부터 고급형 제품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기업인데 그 고급형조차도 타 제품들에 비해 값이 쌉니다. 오늘 살펴볼 ‘헤드박스(Head Box) DS’는 수십만원대 가격의 거치형 외장 DAC 겸 헤드폰 앰프인데, 제가 현재 사용 중인 200만원대의 젠하이저 HDVD800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주관적 평가) 또한 크기가 무척 작아서 데스크탑 기기로 딱 맞으며 4개의 입력과 1개의 출력이 있어서 확장성도 좋습니다.
*제조사에 대한 설명
: 프로젝트 오디오는 레코드 플레이어와 포노 앰프의 전문 기업이면서도 디지털 오디오 기술도 축적하여 아날로그 오디오와 디지털 오디오 관련 장비를 모두 다루는 곳입니다. 기업명은 ‘프로젝트 오디오 시스템즈(Pro-Ject Audio Systems)’이며 원래는 ‘프로-젝트 오디오’라고 표기해야겠으나 읽기 쉽게 ‘프로젝트 오디오’라고 부르겠습니다. Pro-Ject라는 레코드 플레이어 제조사가 있는데 체코 프라하의 리토벨(Litovel)이라는 곳에 공장을 두고 50년 넘게 생산해왔다고 합니다. 그 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위치한 Pro-Ject Audio Systems와 협력하게 되면서 디지털 오디오 제품군까지 모두 갖추게 됐습니다.
작고 묵직한 박스에 집약된 편의성
프로젝트 오디오의 디지털 오디오 제품군은 일명 ‘Box Design’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아이템의 숫자가 많습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5개의 라인(Line)이 있는데, RS, DS, S, C, E로 등급을 두고 있습니다. (RS가 최고급형) 예를 들어 헤드폰 앰프 라인은 명칭이 ‘Head Box’인데 헤드박스 S, 헤드박스 DS, 헤드박스 RS로 구별됩니다. 이제 보니 헤드폰 출력을 지닌 인티 앰프 MaiA라는 제품도 있군요.
그렇다면 헤드박스 DS는 중급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제품의 기능을 보면 사용이 편리한 헤드폰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헤드박스 S USB는 PC 연결이 되지만 다른 헤드폰 앰프를 연결하는 외장 DAC 기능이 없고, 헤드박스 RS는 오로지 헤드폰 앰프의 끝을 찍기 위해 탄생한 풀 밸런스 모노블록의 아날로그 앰프이기 때문입니다. 헤드박스 DS는 192kHz / 24bit PCM 지원의 고해상도 USB DAC이며 아날로그 입력, 옵티컬 입력, 코엑시얼 입력이 되고 RCA 아날로그 출력이 있어서 다른 헤드폰 앰프에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옵티컬 입력에서는 96kHz까지 지원)
*참고 : 제품 전원을 켜면 USB 입력이 선택됩니다. 그 후 헤드폰 커넥터 왼쪽의 세모꼴 버튼을 눌러서 다른 입력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제품의 생김새는, ‘박스’입니다. 실제로 보면 ‘큐브’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군요. 크기가 103 x 72 x 144 mm이며 전원 어댑터는 흔히 스마트폰에서 볼 수 있는 충전기와 사이즈가 같습니다. 대기 전력도 1W 미만이라고 하니 ‘덩치 작고 전기 전게 먹는 모범적 데스크탑 기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굳이 비교를 한다면 헤드박스 S를 두 대 쌓아놓은 듯한 크기와 무게입니다. 출장용 가방 속에 담아서 가져가도 문제가 없어요.
헤드박스 DS는 두 가지 색상이 있는데 본체 케이스는 모두 무광 검정이며 앞면의 페이스 플레이트 색상이 은색과 검은색으로 나뉩니다. 크기는 작지만 무게는 990g이라서 상당히 묵직합니다. 알루미늄 케이스 부분의 표면은 석재 같은 질감의 처리가 되어 있으며 제품 후면에는 다수의 커넥터가 오밀조밀하게 배열됩니다. 왼쪽에는 RCA 커넥터의 아날로그 입출력이 있고, 그 옆에는 Toslink 규격의 옵티컬 입력이 있습니다. 코엑시얼 입력 옆에는 B 타입의 USB 커넥터가 있으니 PC에 연결할 때 사용하면 됩니다.
다양한 기능을 디스플레이로 확인
헤드박스 DS는 사용이 편리합니다. 그 이유는 제품 앞면을 보면 바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4개의 작은 버튼과 그 중앙에 6.3mm 헤드폰 출력이 있으며 그 위쪽으로 밝고 뚜렷한 디스플레이가 있습니다. 모든 기능의 컨트롤이 제품 앞면에 있어서 다루기가 편하고(기기 뒷면을 더듬지 않아도 됨),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가 있어서 4개의 입력 선택과 볼륨 조정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푸른빛의 연녹색 디스플레이가 밝기 조절이 안 된다는 겁니다. 햇볕이 밝은 낮에도 잘 보여서 좋긴 한데 밤에 불 꺼놓고 듣는 분에게는 눈에 거슬리는 경우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디스플레이의 존재는 무척 중요합니다. 간혹 ‘노이즈의 완전 차단’을 위해 디스플레이를 설계에 넣지 않은 기기도 있는데, 현재 어느 입력인지 알기 위해 입력 선택 버튼을 살펴보거나 머리에 기억해야 하니 상당히 불편합니다. 헤드박스 DS는 현재의 입력이 무엇인지 알려주며 재생 중인 파일의 해상도와 총 87단계의 디지털 볼륨 레벨도 명확한 글자로 보여줍니다. (-87부터 0까지) 중앙의 헤드폰 아이콘은 나름대로 귀엽기도 하고요.
이 제품은 다른 외장 DAC나 CD 플레이어, 레코드 플레이어에 모두 연결할 수 있지만 여러분은 이미 한 가지 입력에 집중하고 있을 것입니다. USB 연결을 통한 PC 헤드폰 시스템을 만드는 겁니다. 제 경우는 오디르바나(Audirvana, 음악 재생 애플리케이션)를 설치한 맥북 프로에 헤드박스 DS 하나만 연결하는 것으로 헤드폰 시스템의 소스 쪽을 완료했습니다. 단, 여기에서 한 가지 조언을 드린다면 헤드박스 DS에 포함된 기본 USB 케이블은 사용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5~6만원대 제품이라도 좋으니 다른 USB 케이블로 교체하시기 바랍니다. 헤드박스 DS를 PC 곁에 가까이 둘 수 있다면 짧은 USB 케이블을 고르시는 게 좋습니다. 헤드박스 DS는 가격대 이상으로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데 USB 케이블 업그레이드가 제법 큰 영향을 줍니다. 저는 예전부터 사용 중인 ADL Formula 2 케이블을 연결했습니다.
*참고 : 다들 경험으로 아시겠지만 옵티컬 케이블(광 케이블)은 더 비싼 것으로 구입할 필요가 없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저는 검은색 케이블이 보기 싫어서 그리 비싸지 않은 Wireworld Nova 7을 사용 중입니다.
헤드박스 DS의 아날로그 출력은 모든 디지털 입력 상태에서 항시 동작합니다. 이 제품에 탑재된 DAC 기능을 사용해서 다른 앰프로 감상하고 싶다면 아날로그 출력을 활용합시다. 특히 능률이 떨어져서 높은 출력의 헤드폰 앰프가 필요한 헤드폰을 쓴다면 헤드박스 DS의 외장 DAC 기능이 유용할 것입니다. (예 : Audeze, HiFiMAN 등의 플래너 마그네틱 헤드폰) 그러나 청취자가 대단히 높은 게인(Gain)을 선호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헤드박스 DS의 자체 헤드폰 출력도 든든한 편입니다. 윈도우 OS에서 사용 시 게인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으나 맥 OS의 PC 또는 다른 CD 플레이어에 연결하면 -30dB 볼륨 세팅에서 젠하이저 HD800을 크게 울릴 수 있었습니다.
SOUND
Line-level input/output : 1 pair RCA/phono sockets each
D/A-converter : Cirrus Logic CS4344, 24Bit/192kHz Delta Sigma
Supported audio format : PCM (LPCM). No support for multi channel formats like Dolby AC-3 or DTSTM
Sampling rates USB 2.0 (B) input : 44,1kHz, 48kHz, 88,2kHz, 96kHz, 176,4kHz 192kHz
Coaxial input : 44,1kHz, 48kHz, 88,2kHz, 96kHz, 176,4kHz 192kHz
Optical input : 44,1kHz, 48kHz, 88,2kHz 96kHz
Power output : 350mW/30 ohms, 60mW/300 ohms
Headphone connection : over 30 ohms
Signal-to-noise : 112dB (A weighted) at full output
Frequency response : 20Hz - 20kHz/-0,5dB
THD : 0,0014%
Gain : 9dB
Headphone jack : 3-pole 6,3mm
Outboard power supply : 18V/500mA DC suitable for your country's mains supply
Power consumption : max. 320mA / under 1 watt standby
Dimensions W x H x D : 103 x 72 x 144 (150) mm (D with sockets)
Weight : 990g without power supply
외장 DAC가 만드는 소리는 DAC 칩 하나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로 설계와 같은 하드웨어 방면의 요소도 있고, 제품 제작하시는 분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중 가장 신기했던 것은 DAC 알고리듬(Algorithm)의 영향입니다. 특히 소리를 재생하는 타이밍의 세팅이 음색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글 도입부의 거실에서 막 쫓겨난 분들과 달리 다수의 고급형 헤드폰을 많이 사용해본 분들은 이후 외장 DAC의 변경으로 시스템 전체의 소리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이번 감상문에서는 헤드박스 DS의 USB 입력 상태를 가장 많이 사용하면서 소리 특징을 판단해보았습니다.
먼저 세팅을 봅시다. 저는 맥 OS와 함께 윈도우 7을 추가 설치한 맥 미니를 사용 중인데 헤드박스 DS는 윈도우 10도 호환된다고 합니다. 맥 OS에서는 별도의 드라이버 설치가 필요 없으며 윈도우에서는 프로젝트 오디오 홈페이지에서 드라이버 파일을 받아 설치하시기 바랍니다. 이 때 희한하게도 맥 OS 환경보다 윈도우 환경에서 게인이 낮춰집니다. (소리가 작아짐) 음 특징은 변화가 없는 듯 하나 어쨌든 맥 OS 환경에서 느낌이 더 좋은지라 이하의 글도 맥 OS 기준으로 작성했습니다. 음악 재생 애플리케이션은 오디르바나(Audirvana)에서 고해상도 파일과 CD 음반에서 뽑은 WAV 파일을 재생하고, 아이튠즈에서 애플 뮤직을 재생합니다.
다양한 헤드폰과 이어폰을 연결, 고감도 이어폰은 피할 것
헤드박스 DS는 87단계의 디지털 볼륨을 사용하며 디스플레이로 숫자가 나오기 때문에 구체적인 볼륨값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맥 OS 기준으로 젠하이저 HD800은 -30dB, 오디오 테크니카 ATH-M70x와 오디지 SINE은 -35dB 정도로 감상했습니다. 다양한 헤드폰을 연결해봐도 음 특성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보니 넓은 범위의 헤드폰 임피던스에 최적화된 듯 합니다.
제품 사양에서는 30옴 이상의 헤드폰을 권장한다고 되어 있지만 중대형급 헤드폰이 아닌 이어폰을 연결해도 인상적인 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이 제품은 실내 전원의 접지만 되어 있다면 사실상 배경 노이즈가 없다고 봐도 됩니다. (*접지가 되지 않은 환경에서는 뭘 연결해도 부웅~하는 노이즈를 배경으로 깔게 됨) 저의 경우는 이티모틱 ER-4S와 AKG K3003을 모두 연결해서 감상하곤 했습니다. K3003과 연결할 때는 볼륨을 -40dB 정도로 맞췄는데 실로 시원시원한 고음과 깊은 저음 타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의 : 감도가 매우 높은 이어폰(SPL 또는 Sensitivity 항목이 110dB를 넘는 경우. 예를 들어 119dB의 SE535,118dB의 웨스톤 W40 같은 제품)은 앰프 파트의 화이트 노이즈가 강하게 느껴지며 소리가 너무 커질 수 있으니 연결을 피하는 게 좋겠습니다. 특히 커스텀 인이어 모니터 같은 고감도 이어폰에는 거치형 헤드폰 앰프보다는 게인을 낮춘 고해상도 재생기나 스마트폰용 외장 DAC를 연결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낼 것입니다.
착색은 없지만 끝이 촉촉한 고음, 음악에 활기를 부여한다
먼저 제가 기준점으로 사용 중인 젠하이저 HDVD800의 소리가 건조하고 차가운 편임을 알려두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쓰는 진공관 앰프, 아나로그디자인 스베트라나는 느리고 편안하며 중저음이 강하게 보강되는 편입니다. 이러한 제품들과 비교 청취를 해볼 때 헤드박스 DS는 원음을 거의 꾸미지 않으면서도 미세한 차이를 보여주었습니다.
첫째는 고음의 촉촉함입니다. 착색이 없어서 맑게 느껴지는데 끝맛이 약간 달콤하다고 할까요. 예쁘게 느껴질 정도로 꾸며지지는 않은 고음인데 타 기기와 비교를 해보면 상당히 명확하게 느껴지는 특징입니다. 음악 속에 있는 각종 고음 악기의 소리가 보다 생생하게 드러나서 전체적으로 활기찬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고음이 크게 강조된 스튜디오 헤드폰, 오디오 테크니카 ATH-M70x에서도 고음이 거칠지 않고 깨끗하게 들려옵니다. 예상해보건대 울트라손 에디션 시리즈나 포스텍스 TH900에도 잘 어울릴 듯 합니다. 단, 고음의 매우 기민한 움직임이나 현란한 인상은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 점은 수백만원대 헤드폰 앰프에서만 느껴온 점이기도 합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가격에 의한 등급 분류는 존재합니다. 특히 오디오 시스템을 만들면서 많은 변화를 겪어본 사람에게 중요한 1~2퍼센트의 영역에서 그렇습니다.
긴장을 풀어주는 편안한 음색, 그러나 느리지는 않다
헤드박스 S와 달리 헤드박스 DS는 소리가 드라이하지 않으며 HDVD800처럼 냉정하지도 않습니다. 분명히 디지털 오디오 장비이고 트랜지스터 앰프지만 소리를 들을 때 긴장이 되지 않고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헤드박스 DS의 고음에는 미량의 잔향이 있으며 저음 타격이 미세하게 부드러워져서 그런 모양입니다. 듣는 이의 기준에 따라서는 조금 따뜻한 톤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제품은 짝수 배음이 확실히 발생하는 진공관 앰프보다는 배경이 깔끔합니다. 스베트라나와 비교하다면 헤드박스 DS는 배음을 싹 정돈해버리는 존재였습니다.
플랫하고 손실이 없는 저음, 강한 힘을 원한다면 외장 DAC로 활용하자
고출력의 헤드폰 앰프를 처음 사용해본 분들은 ‘소리에 살이 붙는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오디오 신호의 증폭만 생각한다면 그럴 리가 없어 보이지만, 비교적 능률이 나쁜 헤드폰에 앰프를 연결해보면 살이 붙는다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헤드폰 앰프 중에는 높은 게인으로 소리의 굵은 선을 추구하는 대신, 소리의 품질을 다듬고 밀도를 높여주는 것에 집중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음악을 듣는 취향 중에도 분명히 ‘웅장함보다는 정밀함’, ‘강력함보다는 단정함’을 추구하는 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헤드박스 DS의 저음은 거의 플랫(Flat)에 가까우며 심리적인 저음 강조 효과가 거의 없습니다. 그 대신 초저음 영역까지 손실없이 내려가고 불안한 느낌이 없어서 여전히 마음이 든든합니다. 혹시 저음의 웅장한 규모와 강력한 펀치를 원한다면 헤드박스 DS를 외장 DAC로 사용하고 별도의 고출력 헤드폰 앰프를 연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수입사에 물어보니 헤드박스 시리즈를 위한 프로젝트 오디오의 파워 서플라이가 출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헤드폰 시스템에서도 하이파이 오디오처럼 전원부의 중요성이 그대로 반영되므로 꽤 기대가 됩니다.
높은 밀도의 중음이 끼치는 영향
헤드박스 DS의 저음은 플랫하지만 중음 영역에서는 ‘소리에 살이 붙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습니다. 고음 근처부터 높은 저음 근처까지의 구간에서 매우 높은 밀도를 느낄 수 있으며 그 질감이 매끄럽습니다. 단, 중음 자체가 부가적으로 굵게 느껴지지는 않아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음을 정밀하고 단정하게 다듬어주는 역할에 더 충실하다고 봅니다. 바이올린 연주의 보잉이 끈적하다면 헤드박스 DS는 그 끈적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쪽이며 훨씬 끈적하게 증폭하지는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남녀 보컬의 감상 경험인데요. 둘 다 중음의 높은 밀도 덕분에 목소리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며 안정적인 기분이 듭니다. 이 공통점을 지닌 상태에서 여성 보컬은 고음의 촉촉함으로 목소리에 활력이 더해지고, 남성 보컬은 탄탄하지만 힘이 과도하지 않은 저음으로 목소리가 세련된 분위기를 풍깁니다.
*참고 : 제가 작성한 수십편의 헤드폰 앰프 후기에서 ‘중음 밀도가 높아진다’는 항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헤드폰 앰프들의 공통적 효과인 듯 합니다.
차분하게 정리한다
이 제품으로 음악을 들을 때마다 항상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뭔가 차분하게 정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음악을 들어도 산만한 인상이 없습니다. 소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심란한 기분이 사라진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헤드박스 DS는 어떠한 감정적 움직임을 경험하기 위한 앰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한 고음의 잔향이 조금 있고 저음이 부드럽지만 기본 특성은 디지털 오디오와 트랜지스터 앰프입니다. 때로는 이 제품이 홈 오디오용 기기가 아니라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전문가용 장비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요약]
작은 박스 속에 4개의 입력을 갖춘 헤드폰용 소스 기기
데스크탑의 헤드폰 시스템을 간결하게 구축할 수 있음
192kHz / 24bit PCM 고해상도 지원 (옵티컬 입력은 96kHz까지 지원)
모든 입력 상태에서 아날로그 출력이 가능한 외장 DAC
전면 버튼과 명료한 디스플레이로 사용이 편리함
높은 게인(Gain)보다는 안정된 소리를 추구하는 헤드폰 앰프
웅장하고 강력한 저음을 듣겠다면 아날로그 출력으로 다른 헤드폰 앰프를 연결할 것
음악에 활력을 더해주는 촉촉한 고음
디지털 오디오, 트랜지스터 앰프로서는 상당히 편안한 소리
높은 밀도의 중음과 플랫한 저음
소리 품질과 확장성, 편의성에서 가격대를 상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