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오디오인가, 마약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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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홀리는 골드문트, FM어쿠스틱스… 신의 소리를 내는 명기들, 무엇이 다른가
느낌까지 소리에 담는 기술… 쳐다만 봐도 음악 떠오르는 디자인

(왼쪽부터)최고 급 디지털 오디오 브랜드로 꼽히는 골드문트의 스피커. 현장음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기술을 적용했다./프랑스 오디오 브랜드 드비알레의 ‘디 프르미에’. 가볍고 세련된 디자인의 본체가 특징이다.
(왼쪽부터)최고 급 디지털 오디오 브랜드로 꼽히는 골드문트의 스피커. 현장음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기술을 적용했다./프랑스 오디오 브랜드 드비알레의 ‘디 프르미에’. 가볍고 세련된 디자인의 본체가 특징이다.
오디오 마니아들은 ‘오디오는 마약’이라고 단언한다. 마취 작용을 하며 습관성이 있어서 오랜 기간 복용하면 중독 증상을 일으키는 마약처럼 오디오도 한 번 큰 쾌감을 경험하고 나면 쉽게 헤어 나오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마약이라는 수사가 붙는 오디오 취미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하얀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던 한 드라마 주인공의 대사처럼 오디오는 음악을 듣는 이를 순식간에 다른 시간과 공간 속으로 데려다 주고 꿈꿀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오디오 전원을 켜는 순간 순식간에 한적한 유럽 시골마을의 야외공연장이나, 땀 냄새 끈적끈적한 콘서트 장의 열기 속으로 빠져드는 일탈(逸脫). 이를 위해 오디오 마니아들은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이 넘는 돈을 명품 오디오를 장만하는 데 쏟아 붓는 것이다.

소니가 밝혀내지 못한 소리 비밀, 골드문트

오디오는 크게 보면 아날로그 신호를 그대로 사용하는 아날로그 오디오와 소리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재생하는 디지털 오디오로 나뉜다. 가수 마돈나,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등이 애용한 스위스 오디오 브랜드 ‘골드문트’는 이 중 디지털 오디오 분야에서 가장 높은 가격과 성능을 자랑하는 브랜드다.

골드문트는 20여 년의 연구를 통해 개발한 ‘프로테우스’ 기술로 유명하다. 프로테우스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고음, 중음, 저음이 각각 음악을 듣는 사람의 귀에 전달되는 속도에 미세한 차이가 있는 점에 주목하고 이 같은 차이를 보정해 현장음을 그대로 재현해 내는 기술이다.

인간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은 20Hz(헤르츠)∼20kHz(킬로헤르츠) 정도지만 골드문트는 0.1Hz부터 3MHz(메가헤르츠)의 주파수 대역을 재생해 낸다. 전 세계 오디오 개발자들이 애타게 갈망하는 ‘들을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영역’을 표현하는 오디오인 셈. 골드문트가 새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일본 소니사는 골드문트를 구매해 분해를 했지만 이 같은 기술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오디오 마니아 사이에서는 유명한 전설이다.

골드문트에는 스위스의 명품 시계 기술도 녹아 있다. 골드문트는 제품의 생산, 조립 전 과정을 철저하게 스위스에서 진행한다. 매끄러운 외관의 마감재는 명품시계 브랜드 롤렉스, 파테크 필리프와 같은 소재를 사용해 같은 공장에서 만든다.

비틀스와 요요마가 사랑한 FM어쿠스틱스

아날로그 오디오 분야에서 최고의 명품 브랜드로 알려진 FM어쿠스틱스의 오디오.
아날로그 오디오 분야에서 최고의 명품 브랜드로 알려진 FM어쿠스틱스의 오디오.
디지털 오디오의 정상이 골드문트라면 그 대척점인 아날로그 오디오 분야에서는 FM어쿠스틱스가 최고 명품으로 꼽힌다. 이 브랜드의 창립자 마누엘 후버는 오르간을 좋아해 독학으로 음향학을 공부해 2대의 앰프를 만들었다. 이 중 한 대는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비틀스가 숱한 명곡을 녹음하는 데 쓰였고, 비틀스의 인기와 함께 FM어쿠스틱스도 큰 명성을 얻게 됐다.

FM어쿠스틱스는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 브랜드다. 소리를 잘 깎고 다듬어 듣기 좋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연주자나 음반 엔지니어의 실수 그리고 배경 소음까지 그대로 잡아내 ‘오리지널’을 재현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FM어쿠스틱스는 100% 수작업으로 오디오의 모든 부품과 소재를 선별하고 조립하는 까다로운 공정을 거친다. FM어쿠스틱스는 부품 하나당 3∼7회씩 반복 테스트를 거쳐 전체 납품받은 부품 중에 최상급 판정을 받은 20%가량의 부품만을 실제 제작에 쓸 정도다.

괴팍하기까지 한 FM어쿠스틱스의 장인정신은 예술가들에게 인기가 높다. 롤링스톤스, 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록 밴드는 물론이고 현존하는 최고의 첼리스트 요요마도 이 브랜드의 팬이다. 요요마는 “FM어쿠스틱스는 나의 악기 다비도프 스트라디바리우스 소리를 가장 훌륭하게 재생하는 오디오”라고 극찬한 바 있다. FM어쿠스틱스의 오디오는 이탈리아 라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음향장비로도 쓰이고 있다.

오디오 디자인에 홀리다

기존 스피커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디자인을 선보이는 비비드오디오의 ‘기야’ 스피커.
기존 스피커의 고정관념을 벗어난 디자인을 선보이는 비비드오디오의 ‘기야’ 스피커.
2008년 세상에 선을 보인 비비드 오디오의 기야(GIYA) 시리즈는 차별적인 디자인으로 오디오 업계에 충격을 준 제품이다. 외관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 스피커는 아프리카 원주민 줄루족의 전통춤 기야에서 이름을 따왔다.

비비드 오디오는 천재 스피커 디자이너 로런스 디키의 작품이다. 디키는 열 살 때 우연히 한 오디오 매장에서 접한 ‘엘리프송 라우드’ 스피커의 디자인에 감동을 받고는, 자신의 집 라디오를 뜯어 스피커 유닛을 만드는 일로 오디오 제작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84년 세계적 오디오회사 B&W에 들어가 ‘오리지널 노틸러스’라는 파격적인 제품을 내놓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스피커라면 네모난 상자 모양이 전부였던 당시, 달팽이 모양을 하고도 최상의 소리를 내는 노틸러스는 오디오 마니아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다.

디자인에 관해서라면 프랑스의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드비알레도 빼놓을 수 없다. 드비알레의 ‘디 프리미어(D-Premier)’는 앰프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슬림하고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유럽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모델이다.

책상이나 장식장 한구석에 묵직하게 얹혀 있는 물건이라는 앰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이 앰프는 두께가 32mm에 불과해 벽걸이로 설치하거나, 선반 위에 얹어도 좋을 정도로 가볍고 세련된 것이 강점이다. 앰프 본체를 제어하는 작은 블록 모양의 리모컨 디자인 또한 감탄을 자아낸다.

모양에 신경을 쓰느라 소리를 소홀히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디 프리미어는 아날로그·디지털 하이브리드라 불리는 새로운 음향 증폭기술을 적용한 제품이다. 턴테이블과 같은 아날로그 음원도 디지털로 변환해 깨끗하고 맑은 사운드를 전달하는 디 프리미어는 세계적 오디오 저널리스트들로부터 ‘숨 막히는 독창성과 음역’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소리의 공방이라는 뜻인 소누스 파베르(Sonus Faber)는 이탈리아 하이엔드 오디오를 대표하는 브랜드다. 소누스 파베르에는 명품 바이올린을 만들어낸 이탈리아의 장인정신과 기술력이 담겨 있다. 소누스 파베르의 제품은 바이올린을 만들 때처럼 천연목재를 2년 이상 자연 건조한 뒤, 이를 찌고 건조하고 나뭇결을 골라 조각을 만들어 조립하는 복잡하고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공정을 거친다. 이 모든 과정에는 바이올린의 명산지 크레모에서 바이올린 제조기술을 배운 소누스 파베르의 창립자 프랑코 세르블린의 손길이 녹아 있다.

‘앰프를 켜지 않아도 음악이 들린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디자인도 유려한 소누스 파베르의 제품들은 클래식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소누스 파베르는 바이올린 명기(名器)에 대한 오마주로 스피커 모델에 ‘아마티 푸트라’, ‘스타라디바리’ 같은 바이올린 이름을 붙이는 걸로도 유명하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도움말 및 사진 제공=오디오갤러리
(www.audiogallery.co.kr, 02-516-908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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