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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역대 레전드 앰프를 꼽게 되면 거의 빼놓지 않고 들어가는 제품이 있다. 예를 들어 매킨토시 MC275, 마크레빈슨 ML-2, 크렐 KSA-100, 마란츠 Model 9, 콘래드존슨 Premier One, NAD 3020, 미션 Cyrus One 등이다. 이러한 리스트에 빠질 수 없는 제품이 하나 있다. 바로 영국 네임(Naim)의 인티앰프 Nait 1이다.
하프 사이즈에 출력이 8옴에서 13W에 불과했던 Nait 1은 1983년 출시되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다. 소리와 디자인이 말도 안되게 좋았던 것이다. 중역대가 식욕이 돌 만큼 매력적이다, 사운드스테이지가 비할 데 없이 견고하다, 네임의 출력은 숫자에 불과하다, 이러한 네임 앰프에 대한 상찬은 Nait 1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서리(범퍼) 마감을 크롬 처리한 디자인 역시 특별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Nait 1은 잊혀졌다. 이후 등장한 Nait 2, Nait 3, Nait 5, Nait XS, Supernait 같은 후계기들이 착실하게 세를 넓혀간 탓도 있지만, 1990년대, 2000년대 들어 프리앰프, 파워앰프, 분리형 앰프가 오디오 업계 전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영향이 더 컸다. 이런 와중에 Nait 1 같은 하프 사이즈에 출력까지 낮은 솔리드 인티앰프는 그냥 ‘좋았던 시절’의 추억 쯤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올해 5월, 네임이 놀라운 발표를 했다. 자신들의 설립 50주년 기념작으로 Nait 1을 오마주한 Nait 50을 선보인다는 것이었다. 공개된 사진을 보니 외관이 Nait 1의 판박이나 다름없었다. 내부 회로나 부품, 기술 등은 최신 네임 앰프로부터 가져왔지만, 기본적인 증폭방식이나 인터페이스, 출력은 오리지널 Nait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출력을 8옴에서 25W로 묶은 것, 전면 섀시 가장자리 마감을 크롬으로 한 것은 대놓고 1980년대 오리지널 Nait에 빙의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DIN 단자에 대한 고집도 여전했다.
네임 팬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특히 크롬 범퍼 마감에 노브(볼륨)가 왼쪽에 하나밖에 없었던 오리지널 Nait 1에 대한 향수가 컸던 올드 팬들이 열광했다. 올리브 범퍼 마감의 Nait 2도 열혈 팬이 많고 소리도 더 뛰어나다는 평가도 있지만 역시 오리지널리티에서는 Nait 1을 앞설 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네임이 직접, 그것도 수십년만에 Nait 1의 몸을 빌린 Nait 50을 내놓았으니 뉴스도 이런 빅뉴스가 없었다.
Nait 인티앰프 연보
Nait 50에 대한 본격 탐구에 앞서 네임 인티앰프 Nait 연보를 간략히 짚고 넘어가보자. 잘 아시는 대로 네임(Naim Audio)은 엔지니어 줄리안 베레커(Julian Vereker)가 1973년 영국 샐리즈배리(Salisbury)에 설립했고, 첫 홈오디오 제품으로 NAP 200 파워앰프를 내놓았다. 이어 1974년에 NAC 12 프리앰프, 1975년에 NAP 250 파워앰프, 1976년에 NAC 22 프리앰프 등을 선보였다.
그러다 1983년, 네임 최초의 인티앰프 오리지널 Nait가 등장했다. 작은 사이즈 때문에 외국에서는 슈박스(Shoebox), 국내에서는 도시락 앰프로 불린 Nait 1은 출력단에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써서 클래스AB 증폭, 푸시풀 구동으로 8옴 13W, 4옴 19.5W 출력을 냈다. Nait는 Naim Audio Integrated Amplifier의 약자다.
동일한 하프 사이즈에 전면 패널의 노브를 좌우 대칭 2개(왼쪽 볼륨, 오른쪽 입력선택)로 늘린 Nait 2는 1988년에 나왔다. 출력은 8옴에서 20W, 4옴에서 25W. 이듬해에는 범퍼 마감을 크롬에서 올리브로 바꿔 더 유명해진 Nait 2 후기 모델이 등장했다. 이어 1993년에는 섀시 사이즈를 풀 사이즈로 늘리고 출력 역시 8옴 30W로 키운 Nait 3가 나왔다.
2000년에는 전면 패널을 세 폭으로 나눠 새 네임 디자인을 알린 Nait 5가 나왔다. Nait 5는 이후 2003년에 출력을 50W(이하 8옴 기준)로 늘린 Nait 5i, 2013년에 출력을 다시 60W로 늘린 현행 모델 Nait 5si로 진화했다. 그러는 사이 오리지널 Nait 1에서 100VA에 그쳤던 토로이달 전원트랜스 용량은 Nait 5si에서 400VA로 크게 늘었다.
2007년에는 Nait 5si 인티앰프의 상급 라인업으로 Supernait, 2008년에는 Supernait와 Nait 5si의 중간 라인업으로 Nait XS가 등장했다. Supernait는 80W, Nait XS는 60W 출력. Supernait는 이후 Supernait 2(2013)를 거쳐 현행 Supernait 3(2019), Nait XS는 Nait XS2(2013)을 거쳐 현행 Nait XS3(2019)로 진화했다.
따라서 네임의 현행 인티앰프 라인업은 상급 Supernait 3(80W)부터 시작해 Nait XS2(70W), Nait 5si(60W)로 이어지고, 설립 50주년 한정 기념모델로 이번 시청기인 Nait 50(25W)가 별도로 마련된 모양새다. 지금까지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1983 – Nait 1
1988- Nait 2
1993- Nait 3
2000- Nait 5
2003- Nait 5i
2007- Supernait, Nait 5i(italic)
2008- Nait XS
2013- Supernait 2, Nait XS2, Nait 5si
2019- Supernait 3, Nait XS3
2023- Nait 50
Nait 50 본격 탐구
이런 역사적인 맥락과 네임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그냥 소출력 솔리드 인티앰프로서 Nait 50을 살펴보자. Nait 50은 우선 요즘 보기 드문 하프사이즈 섀시의 인티앰프다. 가로폭은 207mm, 높이는 87mm, 안길이는 321mm이고 무게는 4.5kg을 보인다. 전원부는 리니어 타입, 출력은 8옴 25W, 4옴 40W.
전면 패널은 왼쪽에 큼지막한 볼륨 노브가 있고, 그 옆으로 6.3mm 헤드폰 잭과 3개의 입력 선택 버튼(MM phono, Stream, Aux), 1개의 전원 버튼(Mains)이 마련됐다. 맨 오른쪽은 전원 입력상태를 알려주는 흰색 LED로 파워케이블이 연결되면 옅은색, 전원 버튼을 누르면 진한색으로 바뀐다.
후면은 왼쪽에 전원 인렛이 있고, 가운데에 스피커 커넥터 좌우채널 1조씩, 오른쪽에 DIN 입력단자 2개(Aux, Stream), RCA 입력단자 1조(MM Phono), 접지단자가 자리잡고 있다. 결국 Nait 50은 1개의 MM 포노 입력과 2개의 라인 입력을 갖춘 셈. 스피커커넥터는 말굽 단자는 안되고 바나나 단자만 쓸 수 있다.
Nait 50과 오리지널 Nait 1을 비교해보면, 전면 패널과 후면이 플라스틱에서 아노다이징한 알루미늄으로 바뀌었고, 밸런스 컨트롤 노브 자리에 헤드폰 잭이 들어섰다. 헤드폰 앰프는 NSC 222에서 가져왔다. 진동을 줄이기 위해 볼륨 노브를 솔리드 알루미늄을 깎아 만든 점도 큰 변화다.
기본 뼈대가 변하지 않은 것은 디스크리트 구성의 MM 포노단과 클래스A 프리앰프단, 클래스AB 출력단 설계. 내부를 보면 출력단에 산켄(Sanken)의 NPN 바이폴라 트랜지스터 3519를 채널당 2개씩 바닥면에 고정시켰는데, 이처럼 NPN만으로 푸시풀 회로를 짜는 것 역시 네임의 전통이다. NPN + PNP 조합보다 소리가 더 좋다는 이유에서다.
전원부는 탈레마(Talema) 160VA 토로이달 전원트랜스와 1만uF짜리 케멧(Kemet) 파워 커패시터 2개 등으로 구성됐다. 볼륨은 ALPS 포텐셔미터.
댐핑팩터는 8옴 기준 36, 게인은 포노앰프가 40dB, 프리앰프가 16dB, 파워앰프가 29dB를 보인다. 확실히 프리앰프 게인이 높다. 헤드폰 출력은 16옴에서 1.5W. THD+N은 0.015%에 그친다. 입력 임피던스는 라인 DIN, 포노 RCA 모두 47k옴, -3dB 기준 밴드위쓰는 라인이 4Hz~45kHz, 포노가 6Hz~30kHz를 보인다.
시청
필자의 시청실에서 Nait 50을 비교적 꽤 오래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오리지널을 빼닮은 기막힌 디자인에 놀랐고, 다음에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담백하면서도 밀도감 넘치는 네임 사운드에 놀랐다. 맞다. 이 빽빽한 음수와 두툼한 중역대, 그리고 견고한 사운드스테이지는 네임 아니면 안되는 것이었다.
시청에는 스트리머로 네임의 ND5 XS2, 포노단과 헤드폰 출력 테스트를 위해 턴테이블과 오디지의 LCD-2 Classic 역시 동원했다. 스트리머와는 DIN 케이블로 연결. 스피커는 리바이벌 오디오의 아탈란테 3, 디지털 음원은 룬으로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Gil Shaham, Goran Sollscher - Serenade D957 No.4 (Schubert For Two)]
처음부터 감탄했다. 나오는 음 모두가 저마다 매끄럽고 단단하고 촘촘했던 것이다. 이 질감과 디테일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다. 특히 연주자의 숨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생생히 들린 점이 대단했는데, 이는 결국 노이즈가 거의 씨가 말랐다는 증거다.
전체적으로 극단적인 소출력 앰프이지만 어디 하나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황금알 낳는 거위 같아 그 배를 갈라보고 싶을 정도다. 두 악기에도 신경이 곤두섰는데 바이올린은 간드러질 정도로 애절하게, 피아노는 의외로 뉴트럴하게 들렸다.
[Katie Melua - Wonderful Life (Wonderful Life)]
LP로 들었던 로얄 발레와 폴 챔버스 쿼텟 연주를 이번에는 스트리밍 음원으로, 그리고 필자가 4년째 애용하고 있는 오디지 LCD-2 Classic 평판 헤드폰으로 들었다.
먼저 폴 챔버스의 Yesterdays에서는 헤드스테이지가 명확하게 잡혔고 베이스는 스피커로 들을 때보다 체감상 더 파워풀하고 더 낮은 저음을 토해냈다. 에너지감이나 온 몸으로 느끼는 음의 샤워는 LP+스피커 조합에 밀리지만, 디테일이나 질감 표현은 확실히 오디지 평판 헤드폰이 잘하는 영역이다.
이어 로얄 발레 LP에서는 마치 아침이슬을 머금은 꽃잎을 접사 촬영하듯 음 하나하나가 방울방울 터졌다. 더이상 깨끗하고 더이상 선명할 수가 없다. 무대 앞의 투명감은 LP로 들었을 때에 비해 약간 밀리지만 입자감 자체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아주 곱다. 전체적으로 정리정돈이 잘 됐다는 인상.
총평
“레전드 네임 사운드의 부활”
그러면 Nait 50의 어떤 것들이 이런 음과 무대를 선사했을까. 우선 출력단에 NPN 소자만으로 푸시풀, 그것도 채널당 단 2개 소자만으로 푸시풀을 구성, 음의 편차를 줄인 점이 유효했을 것으로 보인다. 출력단을 이렇게 심플하게 구성했음에도 전원부를 과분하게 꾸린 점은 이 앰프에 넉넉한 헤드룸을 안겼을 것이다. 피크 출력이 225W나 되는 배경이다.
클래스A로 증폭해 무려 16dB나 되는 게인을 확보한 프리앰프 스테이지도 네임 특유의 두툼한 사운드를 이끌어냈을 것이다. 패시브 타입의 프리앰프가 유행이 된 요즘, Nait 50의 이러한 독특한 게인 스트럭쳐는 결국 네임만의 사운드로 이어졌을 것이다.
끝으로 DIN 케이블의 위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네임에서는 RCA 인터케이블보다 좌우 채널을 한 개 케이블에 담은 DIN 케이블을 선호하는데, 이는 RCA 좌우 인터케이블 각각에 들어간 접지/쉴드선이 결국 전위차로 인한 그라운드 루프를 발생시킨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접지/쉴드선이 1개 뿐인 DIN 케이블에서는 이런 그라운드 루프 위험이 애초에 없다는 것.
네임에서는 또한 RCA 커넥터의 임피던스(200옴)가 케이블(50옴)보다 높아 특히 고주파 신호의 역류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비해 5핀 DIN 커넥터는 케이블과 임피던스가 비슷해 이런 위험이 없다는 것. 요약컨대 Nait 50의 적막한 무대 배경과 해상력에는 DIN 케이블과 커넥터가 의외로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몇날며칠을 네임 Nait 50에 푹 빠져 살았다. ND5 XS2와 함께 있는 Nait 50 사진을 필자의 SNS에 올렸더니 국내에 출시가 됐는지 묻거나 옛 젊은 시절을 Nait 1으로 버텼다, 이런 댓글이 많이 달렸다. Nait 50이 반가웠던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Nait 50은 한마디로 레전드 앰프와 레전드 네임 사운드의 부활이었다. 확실히 요즘 필자가 쓰고 있는 분리형 앰프 조합이나 진공관 300B 싱글 앰프와는 전혀 다른 소릿결이었다. 무엇보다 감탄한 것은 그 빽빽한 음의 밀도감이었고, 그 견고하게 펼쳐진 사운드스테이지였다. 지금도 귀에 선한 묵직하고 촘촘하며 매끄러운 음의 촉감! 애호가들의 즐거운 청음을 권해드린다.